〈적로 : 이슬의 노래〉는 2017년 초연된 음악극으로, 일제강점기를 살다 간 대금 명인 ‘종기’와 ‘계선’의 이야기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전기적 재현을 넘어, 현대 관객에게 예술적 성찰과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일깨우는 새로운 해석을 제공하고자 한다. 두 대금 명인의 예술적 공감과 대결을 통해 음악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며, 영혼과 육체의 교차점을 심도 있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극 중 종기와 계선의 관계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존중의 의미를 내포한다. 정영두가 연출하고 안무한 이들의 씨름 대결 장면인 ‘용호상박’은 대금 연주에서 민속악과 정악이라는 서로의 음악적 세계관을 충돌시키면서도 균형을 잡는 모습으로 상호 공존 의식을 드러낸다. 두 명인의 음악적 대결을 육체적으로 표현한 장면은 경쟁과 상생의 철학을 담고 있다. 씨름은 상대를 제압하는 것뿐만 아니라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종기와 계선의 예술적 라이벌 관계가 씨름이라는 은유로 작동할 수 있었다.
또한 배삼식이 극본을 쓴 이 작품은 ‘산월’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그리움과 연결됨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산월은 종기와 계선이 함께했던 젊은 시절의 추억을 상징하며, 과거의 산월과 현재의 산월이 교차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예술적 여정과 내면의 감정을 회상하게 한다. 산월은 단순한 과거의 화신이 아닌, 두 명인의 예술적 열정과 영감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존재로서, 예술의 영속성과 인간의 심오한 감정의 깊이를 상징한다.
작품은 두 대금 명인이 서로 다른 음악적 배경과 세계관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허를 딛고 예술적 여정의 마무리를 함께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들의 대결과 합일은 예술적 공생을 나타내며, 대립과 조화 속에서 더욱 빛나는 예술적 성취를 이룬다. 특히 이들의 대결은 경쟁이 아닌 서로가 필요한 관계로, 대립 속에서도 서로 인정하고 의존하는 상호 의존적 예술의 모습을 강조한다.
〈적로〉는 연출·안무·극작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음악극이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통해 관객에게 예술의 본질과 감동을 전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예술이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가지며, 각 예술적 요소가 상호 작용하며 만들어낸 전율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