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캠퍼스를 가로질러 오르면 남산공원 8번 입구가 나타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겠지만, 이 길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특권 같은 곳이다. 마치 비밀 통로를 통해 호그와트로 가는 느낌이랄까. 번잡한 도심 한가운데서 몇 걸음만 옮기면 남산으로 바로 향하는 길이 열린다. 남산공원 8번 입구. 서울에서 이런 마법 같은 전환이 가능한 곳이 얼마나 될까?
남산과 맞닿은 캠퍼스, 동국대학교. 주말의 교정은 평일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강의실은 깜깜했고, 불이 켜진 몇몇 건물에만 학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널찍한 운동장에서는 축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적당한 소음이 교정을 울리고 있었다. 캠퍼스를 둘러싼 담벼락 너머로는 남산의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느슨한 주말의 공기가 교정을 가득 둘러싸고 있었다.
학교 중앙에 자리한 정각원正覺院에서 걸음을 멈췄다. 원래 경희궁의 정전正殿이었던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왕의 즉위식이나 외국 귀빈을 접대하던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오래된 목조건물이 현대적 건물 사이에 떡하니 있는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시간이 층층이 쌓인 공간 같았다. 기와지붕 위로 아침 햇살이 천천히 내려앉고, 바람이 한옥 마루를 스친다. 바람이 차가운 듯 따뜻하다. 정각원 앞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동국대학교 운동장을 왼쪽에 끼고 다시 걸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타종을 하는 종각이 보였다.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활기 넘치는 캠퍼스의 기운을 받아 남산공원 8번 입구로 들어섰다. 완만한 흙길과 나무 계단이 이어졌다. 이 구간에는 잘 닦인 벤치가 여럿 있었다. 살랑 부는 봄바람이 너무 좋아서 털썩 앉았다. 배낭에 챙겨 온 간식을 주섬주섬 꺼냈다. ‘아, 맞다! 커피를 두고 왔다.’ 순간적으로 탄식이 터져 나왔지만, 곧 별일 아니라는 듯 넘겼다.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남산 북측순환로와 맞닿는다. 산책하거나 달리는 사람들, 또 남산을 향해 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각자의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왁자지껄 모여 있다. 여느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남산에서는 그 느낌이 조금 다르다. 사부작사부작 남녀노소 누구나 가볍게 걷기 좋은 길이다. 점심을 먹고 나와 흙길을 걸으며 한껏 늘어지는 기분도, 강의가 끝난 후 남산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여유도 좋다.
잊고 온 커피 한 모금이 절실했다. 저 앞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페보다는 남산의 공기와 바람을 한껏 들이마시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커피는 나중에 마셔도 되지만, 이 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