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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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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호 Vol.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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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잠을 책임지는 고막 애인

맺다 / 괴짜의 역사를 찾아서
수면 음악의 탄생
당신의 잠을 책임지는 
고막 애인

현대인은 늘 잠에 쫓긴다. 스마트폰에, SNS에, 경쟁 사회에 지쳐 우울하고 불안한 탓일까.
옛 조상들께 자장가가 있었다면, 현대인에겐 그에 맞는 새로운 처방이 필요하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이것은 어쩌면 우리 잠재의식에 각인된 첫 번째 노래. 머리와 마음과 귀를 채우며 흐르고 있는 우리 모든 노래의 첫 번째 악상이 샘솟은 곳이다. 자장가. 우리는 아홉 달을 고이 자다 시끄러운 세상 밖이 서러워 울며 일어났고, 우리네 부모님은 우리를 다시 재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장가를 불렀다.
그런데 왜 노래일까. 왜 음악일까. 미술·기술·화술 따위가 아니고. 우리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노래한다. 생일에, 신께 빌 때, 가장 신이 날 때, 수많은 군중이 절체절명으로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 때로 장례에…. 더욱이 아기는 말을 잘 못 알아듣지 않나. 어른의 화술로는 어렵다. 그래서 자장가의 역사는 깊다. 음악의 역사, 인류의 역사와 겹칠 정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발견된 점토판과 쐐기문자에서 이미 성가·애가·무곡 등과 함께 자장가의 기록 흔적이 나타난다.
서양 고전음악도 그렇다. 독일어 ‘Wiegenlied’, 프랑스어 ‘Berceuse’, 영어 ‘Lullabye’ 등의 이름을 단 수많은 작품이 브람스·리스트·슈베르트·포레·쇼팽 등 다채로운 작곡가의 손끝에서 나왔다. 존 필드와 쇼팽의 야상곡은 여전히 남녀노소의 인기 수면 음악이다. 격무를 마치고 달려간 콘서트장에서 수많은 교향곡의 제2악장은 안단테나 아다지오의 템포로 야속하게 수면을 재촉하기도 한다.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The Light of the Home> Harry Herman Roseland(C.1867~1950)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걸작 중 하나인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본디 수면 음악이라는 설이 강하다. 당시 라이프치히에 머물던 러시아 외교관인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심각한 불면증을 앓았다고 한다. 외교관의 특권인지 그는 골드베르크라는 젊은 하프시코드 연주자를 고용해서 옆방에서 밤마다 잔잔한 음악을 연주하도록 했다. 그래도 불면의 밤이 계속되자 결국 백작은 알고 지내던 바흐에게 잠 잘 오는 특효약, 아니 특효의 곡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바흐는 백작의 부탁에 정성을 다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화가 잔뜩 났는지 모르겠으나 1번 곡 ‘아리아’를 30번 변주하고 다시 ‘아리아 다 카포’로 돌아오는 32곡짜리 변주곡 선물 세트를 전달한다. (클래식을 잘 모를 때, 연주회에 갔다가 제2번 곡이 흐를 무렵 푹 잠들어 제32번 곡이 끝난 뒤 박수 소리에 깨어난 적 있다. 바흐를 향해 다시 한번 지극히 개인적인 기립박수를…. 앙코르!!)
그러나 고금의 천재들이 기울인 수많은 노력도 모두 물거품. 올해 2월 한 글로벌 가구/생활용품 기업이 57개국 5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수면 관련 보고서에서,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27분으로 조사 국가 중 네 번째로 짧았다. 스스로 평가하는 수면의 질은 가장 낮았다. 대한수면연구학회가 3월 4일 발표한 ‘2024년 한국인의 수면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수면의 질이나 양에 만족하는 비율은 글로벌 평균의 약 75% 수준에 머물렀다. 매일 숙면을 취한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고작 7%. 글로벌 평균(13%)의 절반이다. 수면 장애나 불면증으로 진료받는 환자는 2010년 약 27만8000명에서 최근 약 67만8000명으로 140%나 증가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현대인은 늘 잠에 쫓긴다. 스마트폰에, SNS에, 경쟁 사회에 지쳐 우울하고 불안한 탓일까. 옛 조상들께 자장가가 있었다면, 현대인에겐 그에 맞는 새로운 처방이 필요하다. 현대 과학에 기반한 수면 음악 처방. 그걸 2015년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가 해낸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과 아예 창작 단계부터 함께 기획했다. 이름하여 「Sleep」 앨범인데 재생 시간도 8시간 24분 21초에 달한다. 이 앨범을 통째로 못 듣고 자면 성공인 셈인가.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수억 회의 재생을 기록하며 어쨌든 창작자 리히터는 성공했다. CD 판매량은 미미했다. 하긴 8장의 CD를 자다 일어나 차례로 갈아 끼워야 한다면 그건 수면이 아니라 밤샘 노동일 것이다. 음반사에서는 8장의 CD에 1장의 블루레이를 동봉했다.
“수면 중 CD 교환의 번거로움은 보너스로 추가된 블루레이 오디오 1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
이것이 실제로 온라인 음반 매장의 앨범 소개 글에 실린 문구다.
이건 콘서트가 진짜다. 공연장에는 좌석 대신 수백 개의 침대가 깔린다. 관객들은 앉는 대신 누워서 꼬박 8시간 동안 연주를 감상하게 된다. 세계를 돌며 진행된 콘서트 <Sleep>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현지의 각 언론에도 침대가 늘어선 사진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된다.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앨범 「Sleep」


리히터가 선도한 네오클래시컬, 또는 포스트미니멀리즘 장르의 선풍은 클래식계의 풍경을 바꿨다. 닐스 프람, 존 홉킨스, 요한 요한손, 올라푸르 아르날즈 같은 비슷한 느낌의 작곡가들은 이제 20세기의 뉴에이지 음악, 그러니까 유키 구라모토나 앙드레 가뇽 등을 밀어내고 스트리밍 플랫폼의 ‘밤의 강자’로 올라섰다. 스테판 모치오, 페데리코 알바네제, 후앙 리우메이 같은 젊은 네오클래시컬 작곡가들의 사각거리는 피아노 연주집이 바흐·헨델·쇼팽·브람스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클래식 음악 차트 상위권에서 각축한다. 이들은 마이크를 피아노 안팎의 곳곳에 배치하고 음향을 조절해서 페달 밟는 소리를 비롯한 각종 잡음을 함께 녹음한다. 섬세한 전자 음향을 덧붙여 꿈의 세계를 건축해 낸다.
몇 년 전, ASMR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뽁뽁이’라 불리는 완충재 터뜨리는 소리부터 다람쥐가 딸기 씹어 먹는 소리까지 다양한 잡음이 화이트 노이즈라는 이름의 음악인 듯 음악 아닌 음악 같은 뭔가로 전 국민의 고막과 ‘썸’을 탔다.




좌측부터 스테판 모치오(Stephan Moccio)  |  페데리코 알바네제(Federico Albanese)


잠자리에서 단순한 노래를 불러 줄 엄마나 친구, 절대 침묵이 내려앉는 순수한 밤은 없어졌다. 하지만 현대인은 이제 너무 많은 걸 가졌다. LP판을 뒤집거나 CD를 바꿔 넣을 필요도 없이 죽을 때까지 뭔가를 재생해 줄 스트리밍 플랫폼, 블루투스 스피커 등등. 완전한 평온을 원할 때마저 무언가를 ‘재생’해야 직성이 풀린다. 불과 10년,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온갖 플랫폼과 서비스는 수천 년을 이어 온 인간 예술의 생김새를, 음악의 모양새를 뒤바꿨다. 앞으로 5년 뒤, 10년 뒤에는 어떤 서비스가, 어떤 음악이, 어떤 음향이 각광받을까. 우리 머리맡에서 누가(또는 무엇이) 자장 노래를 들려줄까. 우리의 콘서트장은 또 어떻게 바뀔까.


글. 임희윤  
기자·평론가. 국악·대중음악·클래식·영화 음악을 두루 다룬다. 현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한국힙합어워즈 선정위원,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몸속에 꿈틀대는 바이킹과 도깨비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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