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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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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호 Vol.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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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소리’ 찾는 여정에서 만난 MZ소리꾼의 ‘흥보가’

내다 / 스페셜 2
립창극단 <절창Ⅴ> 프리뷰
‘나만의 소리’ 찾는 여정에서 만난 MZ소리꾼의 ‘흥보가

둘이 합쳐 ‘소릿길’ 50여 년. 소리면 소리, 연기면 연기,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두 젊은 소리꾼이 만났다.




국립창극단원 왕윤정, ‘우리소리 바라지’의 김율희


수십 개의 가면을 쓴 것처럼 수시로 얼굴을 바꾼다. 고약한 놀보이겠거니 생각하면 착해 빠진 흥보였고, 재간둥이 토끼였다가 답답한 거북이었다. 단옷날의 싱그러운 춘향인 줄 알았더니 방자와 꽁냥대는 향단이었다. 신들린 ‘원맨쇼’는 기본, 작품마다 완전히 다른 옷을 입는다. 능청스럽고 뻔뻔하지만 사실은 “극I(내향형)”(김율희). 그럼에도 “닿을 듯 닿지 않는 길”(왕윤정)을 걷는 ‘30대 소리꾼’들이다.
둘이 합쳐 ‘소릿길’ 50여 년. 소리면 소리, 연기면 연기,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두 젊은 소리꾼이 만났다. 국립창극단원 왕윤정과 국악그룹 ‘우리소리 바라지’에서 활동 중인 김율희. 이들의 만남은 국립창극단이 5년째 선보이는 ‘절창’ 시리즈를 통해 성사됐다. 
요즘 이 무대가 젊은 소리꾼 사이에서 꽤나 ‘핫’하다. ‘절창’은 이른바 ‘MZ(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친 말)들의 판소리’ 무대다. 국립창극단의 젊은 소리꾼들이 긴 호흡으로 만들어 가는 판소리를 볼 수 있는 자리로 출발했다. 2021년 창극단 간판스타인 김준수·유태평양을 시작으로, 2022년 민은경·이소연, 2023년 이광복·안이호, 2024년 조유아·김수인으로 무대는 이어졌다.
‘절창’의 무대는 ‘힙’하다. ‘요즘 감각’이 더해진 미니멀한 구성, 젊은 소리꾼의 시각으로 바라본 다섯 바탕의 재해석, 창극 배우들의 연기가 만나자 단숨에 젊은 관객을 끌어들였다. 
김율희는 “또래 소리꾼 사이에서 나도 한번 서 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하는 무대가 ‘절창’ 프로젝트”라며 “섭외 전화를 받자마자 오케이 했다”고 말했다.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한번 놀아 보라며 ‘판’을 깔아 주니, “소리꾼으로서 무대를 향한 열망”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율희는 이날치의 멤버 안이호에 이어 국립창극단 ‘절창’에 입성한 두 번째 비단원 소리꾼이다.
두 사람이 함께 할 판소리는 ‘흥보가’. 2시간 30분 분량의 이야기를 적절히 매만져 소리를 보태고 쌓아 가며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이들은 “왕윤정, 김율희이라는 두 소리꾼 자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30대 소리꾼의 시선으로 동시대 관객도 유쾌하게 …최고의 판타지 ‘흥보가’



두 사람 모두 ‘흥보가’와 만난 시간이 길다. 모태 소리꾼으로 일명 ‘개비’(대를 이어 국악을 하는 음악인)로 불리는 왕윤정은 가장 처음 배운 ‘바탕소리’가 바로 ‘흥보가’였다. 그때가 고작 아홉 살. 아버지 왕기철 명창에게 박록주제 ‘흥보가’를 익혔다. 
 
“제게 ‘흥보가’는 최고의 판타지였어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부자가 된다니, 대체 제비는 어떻게 알고 흥보네 집까지 날아왔을까 상상하며 정말 당차다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왕윤정)
 
어릴 적부터 몸으로 흡수한 소리에 의문이 생긴 것은 20대에 접어들면서다. 왕윤정은 “워낙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쓰인 사설이다 보니 불편한 지점이 많았다”고 했다. 
악플러 수준의 ‘놀보의 독설’은 인신공격과 외모 비하에 특화됐고, ‘착함의 대명사’라지만 흥보는 가슴이 턱턱 막히는 전형적인 가부장 남편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놀보는 흥보에게 그의 아내를 두고 “네 계집, 미꾸라지가 용 됐다”고 ‘얼평’(얼굴평가)을 날린다. 흥보가 아내에게 하는 말도 가관이다. “여자는 의복이라 옷이야 바꿔 입으면 그만이지, 형제는 내 몸과 같다”는 대사다. “지금의 관객은 납득할 수 없는 말, 미간이 찌푸려지는 사설이 많다”고 김율희도 공감했다. 그는 2016년 한승석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교수에게 강도근제 ‘흥보가’를 배워 그해 완창에 도전했다. 
‘몸이 부서지는 고통’으로 비유되는 완창과 여러 인물 중 한 사람이 되는 창극을 통해 ‘흥보가’를 두루 만나 온 두 사람이 꺼내 놓은 이번 무대의 방향성은 “30대의 두 여성 소리꾼이 바라보는 ‘흥보가’”, “지금의 관객도 유쾌하게 볼 수 있는 ‘흥보가’”로 향했다.
고전의 불편함을 잊게 해줄 ‘한 수’는 소리와 연기다. 다만 난관은 ‘흥보가’의 난이도였다. 김율희는 “‘흥보가’는 재담이 많아 재담소리라고 불렸고, 큰 변화 없이 가져가야 하는 대목이 많다”며 “제 입장에선 소리꾼의 밑천을 보이는 바탕”이라고 했다. “2시간 30분 분량의 짧은 판소리라 스토리를 만들기 어렵고, 다섯 바탕 중 음악적 다이내믹이 가장 적기 때문”(김율희)이다.
저마다 묘안은 있다. 왕윤정은 “인물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톤의 변화와 연기”를, 김율희는 “아니리의 재미 요소를 확대해 표현”할 생각이다. 각각 배워 온 박록주제와 강도근제 ‘흥보가’의 특색이다. 이 안에서 둘은 놀보와 흥보를 번갈아 오가고, 목소리를 포개 이중창(‘제비 노정기’ ‘중타령’)을 만들기도 한다. 맑고 청아한 음색의 왕윤정이 표현할 ‘긁는 목소리’의 고약한 놀부도 관전 포인트다. 
볼거리를 채워 넣어 ‘오늘의 관객’이 “불편할 수 있는 지점은 풍자와 해학으로 접근하고, 웃음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두 사람의 해법. 재해석은 멀리 있지 않았다. ‘관점의 변화’로 이야기를 다시 직조해 현재의 관객과 공감대를 마련하겠다는 생각이다. 왕윤정은 “‘흥보가’의 판타지를 음악으로 펼쳐내고, 권선징악의 구조 안에서 오늘날의 관객에게 어쩌면 무능해 보이는 흥보의 선善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자 한다”고 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도우려는 흥보의 마음, 마음 깊은 곳에 남은 본능적인 선을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김율희도 말을 보탰다. 
 
“‘흥보의 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희망, 혹은 대리만족 등 우리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풀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대단한 메시지를 가져가지 않아도 오늘의 공연을 본 뒤 ‘참 유쾌했다. 뭔가 반짝이는 것이 여기 남은 것 같다’는 마음을 주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목표예요. (김율희) 


‘나만의 소리’ 찾는 여정에서 펼쳐낼 ‘지금의 소리’



두 사람의 인연이 길다. 전통음악계에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절대 모를 수가 없다”고 한다. 애초엔 ‘경쟁자’로 만났다. 2013년 JTBC에서 ‘국악 스타 발굴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들고 나온 <소리의 신>에서다. 지어 한 팀으로도 만났다. 본선 1차 경연에서다. 뮤지컬 <아이 러브 유>를 창극으로 옮긴 작품에서 둘은 일찌감치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했고, 단연 발군의 실력을 선보였다. “소리를 끌고 나가는 자신감이 좋다”는 칭찬과 “연기를 꼭 겸했으면 좋겠다”는 감탄 섞인 조언을 들은 무대였다. 당시 우승자는 왕윤정이었다. 꽤 긴 시간 서로를 지켜봐 온 셈이다. 그렇다고 ‘절친’은 아니다. 서로의 성격도 잘 모를 만큼 아직은 가깝지 않다. 하지만 ‘꾼’은 ‘꾼’을 알아본다. 김율희는 “(왕윤정은) 고음부터 저음까지 단단하고 알맹이가 꽉 차 있으면서도 청아한 소리를 가졌다”라며 “늘 탐구하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멋지다”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에 왕윤정도 질세라 “(김율희가) 아기자기한 이야기 전달력으로 귀에 착착 감기는 소리를 한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0여 년이 지나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소릿길을 걸으며 같은 고민을 공유한다. 맑고 청아하게 뻗어 나오는 소리로 20~30대를 보내 왔지만, “30대 중후반을 지나는 지금 어떤 목소리를 찾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크다. “자기 나이에 맞는 소리, 바탕(판소리 한 편)에 맞는 음색”(왕윤정)과 “말에 담긴 이면과 맛있는 소리”(김율희)를 찾아가는 여정은 종착지가 멀다. 
 
“늘 허공을 떠도는 기분이에요. 나의 부족함만 보이던 시절을 지나 활동이 많아진 20대엔 자신감이 붙었어요. 그러다 소리를 할수록 듣는 귀가 밝아지고, 스스로의 이상이 커지니 어느 순간 자신이 다듬어지지 않은 빈껍데기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김율희)
 
소리꾼의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높다란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는 과정이다. 아무리 올라도 닿을 것 같지 않은 곳을 향하기 때문이다. 오르고 또 올라도 제자리에 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 “어릴 땐 1년, 3년 단위로 성장의 기쁨이 있었는데, 소리를 하면 할수록 5년, 10년, 제자리걸음을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김율희)고 고백한다. ‘도제식 교육’은 어린 소리꾼에겐 지독한 그림자다. 

“따라 하고 싶고, 저렇게 되고 싶어 선생님의 말붙임과 호흡 등 모든 것을 카피하려고 하지만 사실 잘되지 않아요. 그런 다음 나의 색을 입혀야 하거든요. 잘하고 싶어 죽겠는데, 참 신기한 게 마음을 비워야 그 순간이 와요. 그래서 소리를 하며 마음공부를 하게 돼요.” (왕윤정)
 
‘절창’엔 두 가지 뜻이 있다. ‘아주 뛰어난 소리’와 ‘날카롭게 베인 상처’라는 의미다. 스스로를 상처 내 목소리를 만들고, 그 상처를 보듬어 단단히 아문 뒤에야 소리꾼은 ‘절창’에 이른다. 두 사람은 “‘나의 목’에 맞는 ‘나의 색’과 ‘나의 소리’를 찾는 것은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절창’은 ‘아주 뛰어난 소리’를 찾는 길고 고단한 여정에서 보여 주는 오늘이다.

“소리는 욕심을 부린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야말로 각자의 득음을 위해 갈고닦는 과정이죠. 고통스럽지만 존재로서의 존엄을 채워 주며 밀당(밀고 당기기)하는 소리의 마력에 헤어날 수가 없어요. 지금 이 소리는 30대의 두 소리꾼이 자기만의 소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지금 이 나이 때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소리’가 될 거예요.” (왕윤정·김율희)


글. 고승희  헤럴드경제 기자.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쓴다.
사진. rohsh 

국립창극단 <절창Ⅴ>
일정 2025-04-25 ~ 2025-04-26 | 시간 금 19:30, 토 15:00
장소 달오름극장 | 관람권 R석 4만 원, S석 3만 원 | 문의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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