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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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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호 Vol.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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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의 무덤에서 핀 꽃

내다 / 스페셜 1
역대 ‘절창’ 시리즈에 관하여
클리셰의 무덤에서 핀 꽃

‘절창絶唱’은 아주 뛰어난 소리를 뜻한다. 국립창극단이 창‘극’이 아닌, ‘창’극에 주목했다.
그것도 ‘젊은’ 소리다. 다루는 내용은 뜻밖이다. 창작 판소리가 아닌 고전 다섯 바탕의 
소리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일회성으로 끝나나 했는데 많은 관심과 호평 속에 5회째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국립창극단의 브랜드화는 물론이고 새로운 공연 양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절창Ⅰ> 김준수·유태평양


‘절창’은 판소리의 눈대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축약하고 재구성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여러 악기와 연출적 요소를 덧입혀 새로운 감각의 소리판을 선보인다. 새로운 서사와 새로운 음향이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하는 건 젊은 소리꾼들의 소리 내공 덕분이다.
혹자는 완창과 ‘절창’을 비교해 완창은 전막 오페라 공연에, ‘절창’은 아리아를 선별해 구성한 ‘갈라’쇼에 비유한다. 적절한 비유인 것 같으나 갈라쇼라는 말로는 ‘절창’을 정확히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절창’은 완창 판소리와도 다르지만 창극과도 다르다. 대화창 위주의 창극과 달리 판소리의 3대 요소인 소리와 아니리, 발림이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창극 공연과도 다르고, 1인 수행의 판소리 공연과도 다른 것이 ‘절창’이다.
17~19세기에 판소리가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극 장르로 정착하는 과정을 겪었다면, 20세기 판소리는 창극이란 새로운 장르가 분기한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떤 새로운 양식이 분기될까?


두 명의 소리꾼이 창조하는 새로운 소리극

절창’에서는 두 명의 소리꾼이 노래한다. <절창Ⅰ>에서는 창극단의 대표 스타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수궁가’를 불렀고, <절창Ⅱ>에서는 여성 간판 단원 민은경과 이소연이 ‘적벽가’와 ‘춘향가’를 불렀다. <절창III>에서는 안이호와 이광복이 ‘수궁가’와 ‘심청가’를 불렀고, <절창 IV>에서는 조유아와 김수인이 서로 다른 제의 ‘춘향가’를 불렀다.  
보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한 명이 부르는 걸 두 명이 부른다고 무슨 대단한 혁신이 나오나? 단순히 1+1의 산술적 계산에서 끝난다면 ‘절창’은 양적 측면에서 압도하는 창극 앞에 맥을 못 춘다. 판소리에서 창극이 분기되는 과정에서 2인, 3인의 분창 형태는 이미 초기에 시행된 바 있다. ‘절창’ 역시 고전적 분창 형태로 2인이 나와서 토끼와 자라, 혹은 이도령과 성춘향을 고정적으로 맡아 대화창만을 한다면 산술적 합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절창’의 상상력은 이러한 기계적 덧셈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둘이 고정된 배역을 나눠 부르는 기존의 상투적 방식을 전복하는 것이다. ‘적벽가’와 ‘춘향가’가 한 무대에 오르는데 갈라쇼처럼 아리아가 횡적으로 나열되지 않는다. 각각이 일정한 서사와 극성을 가지며 두 개의 극이 3차원 공간에서 재배치되어 제3의 극으로 완성되는 느낌을 갖는다. 
<절창IV>는 춘향가를 부르되 서로 다른 소리제, 즉 김세종제와 동초제가 동시에 불린다. 전통 소리판에선 양립할 수 없던 두 제의 소리가 동시적으로 섞이는 새로운 사운드스케이프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떠오른다. 각각의 눈대목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나열된다면 뻔한 갈라쇼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극적 응집력을 부여해 판소리 고유의 연극성을 유지할 것인가? 느슨하면서도 강력한 극적 장치로서의 새로운 접착제는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절창’은 답을 해야 한다. 
‘절창’에서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절창’에서 드라마투르기는 연출가와 대본가뿐만 아니라 소리꾼, 음악감독과도 협업한다. 누가 더 중심적 역할을 하느냐는 상관없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재구성하는 데 소리꾼의 소리를 새로운 주제, 서사와 세계관 안에 포섭하는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공연에 따라 연출가가 혹은 대본가가 드라마투르기의 중심 역할을 한다. 그 가운데 남인우의 1·2회 드라마투르기는 ‘절창’을 새로운 공연 양식으로 한 차원 올려놓는 데 전범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연장 선상에서 이치민(<절창Ⅲ>)과 임지민(<절창Ⅳ>) 연출의 구성도 기존 창극과는 또 다른 드라마투르기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요컨대 오페라의 갈라쇼는 아무런 극적 구성력 없이 나열되는 것이지만 ‘절창’에서는 창극보다는 느슨하지만 상대적으로 응집된 극적 구성력과 세계관을 가지고 새로운 드라마투르기의 영역을 창출하고 있다. 


<절창Ⅱ> 이소연·민은경



새로운 실험과 발전으로 거듭나는 ‘절창’

<절창Ⅰ>(2021)을 처음 봤을 때 무척 참신했다. ‘수궁가’를 100분으로 압축, 재구성한 <절창Ⅰ>은 방대한 완창 판소리를 밀도 있게 줄인 공연이다. 눈대목만 추리고 극적으로 중요한 장면만을 모아 속도감 있게 편집한 결과 몰입감이 높아졌다. 또한 2인이 교대로 수행해 무대 위의 움직임은 입체적으로 보였다. 
<절창II>는 참신함에 과감함이 더해졌다. ‘춘향가’와 ‘적벽가’를 어떻게 한 무대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연습보다 회의를 더 많이 했다”는 <절창II>에서 남인우는 ‘적벽가’의 서사를 전개하는 가운데 ‘춘향가’의 장면을 접붙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별에 집중할 때는 ‘적벽가’ 중 조조의 군사들이 설움을 늘어놓는 ‘군사설움’에, 이별의 고통을 부연할 ‘춘향가’의 ‘이별가’로 이었다. ‘불’의 장면에서는 불타는 배에서 죽어 가는 병사들이 노래하는 적벽화전에 이어 이도령과 춘향의 불같은 사랑이 연출된다. 
<절창III>에서 이치민은 ‘수궁가’와 ‘심청가’를 바다라는 공간과 세계관으로 접목한다. <절창 III>의 서사는 더욱 과감하다. 이광복의 ‘심청 인당수 빠지는 대목’은 예상을 깬 시작이다. ‘심청가’의 가장 극적 순간으로 시작함으로써 서사의 클리셰를 파괴한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이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판소리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동해안별신굿이 등장한다. 바다 하면 동해안별신굿 아닌가. 고수 이준형과 타악의 황민왕은 별신굿장단 위에 구음으로 곡을 한다. 이로써 땅과 바다를 오가는 이야기가 생과 사를 오가는 이야기로 치환된다. 
<절창IV> ‘춘향가’에서 임지민은 젠더의 고정적 역할을 파괴하고 현대적 젠더 담론에 기반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여성 소리꾼에 대한 상투적 타자화를 배제했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웠다. 음악적으로는 김세종제와 동초제의 소리를 대비시키며 동시에 조화롭게 전달하면서 전통적인 소리 계보에 천착하는 미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음향적으로는 ‘사랑가’를 두 개의 다른 소리제로 동시에 섞어서 부르는 장면에서 헤테로포니적 사운드가 연출되어 입체창의 새로운 실험으로 결과되었다. 



<절창Ⅲ> 이광복·안이호


그 자체로 ‘힙’한 독자적 장르의 가능성

이렇듯 전통 소리의 본질은 지키되,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판소리가 그 자체로 ‘힙’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은 ‘절창’의 큰 덕목이다. 여기에는 무대연출이 큰 몫을 한다. 중요한 것은 무대연출의 지향점이 소리에 있는 것이다. 이는 연극적 요소가 소리 효과를 압도하는 창극적 태도와 일정한 거리 두기로 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창극에서는 일정 배역을 담당하는 배우가 중요했다. 그러나 ‘절창’은 다시 소리꾼의 복권을 꿈꾼다. 다만 변증법의 정반합처럼 절창의 소리꾼은 창극 이전의 판소리꾼과 같을 리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미학적 태도가 <절창Ⅰ>에서 <절창IV>에 이르기까지 연출자와 음악감독이 바뀜에도 일관되게 견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관됨은 판소리 및 창극과 독립되는 별개의 양식화를 가늠케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처럼 ‘절창’은 판소리와 창극 공연의 교집합이 만들어 낸 장점을 두루 살릴 뿐만 아니라 이 둘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적 요소를 창출함으로써 독자적 장르로서 가능성을 보여 준다. ‘2인 소리꾼+기악 앙상블+드라마투르기’라는 삼각형 조합이 만들어 내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소리극 양식이다. 이는 단순히 더하기 빼기로 판소리와 창극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절창’ 시리즈는 기존 판소리 및 창극이라는 ‘클리셰의 무덤에서 핀 꽃’1) 이라 할 수 있다. 창극에서 잃어버린 ‘판’을 다시 회복하고 판소리의 모노드라마를 폴리Poly드라마로 전환시켜 현대적 세계관을 덧입혔다. 창극도 아니고 판소리도 아닌 ‘절창’이 우리 시대의 대안적 소리극 양식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절창Ⅳ> 조유아·김수인


글. 이소영  음악평론가



1) 작곡가 최우정이 “K-클래식 긴급 토론”(2025.1.17.)에서 한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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