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창’은 판소리의 눈대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축약하고 재구성해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여러 악기와 연출적 요소를 덧입혀 새로운 감각의 소리판을 선보인다. 새로운 서사와 새로운 음향이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하는 건 젊은 소리꾼들의 소리 내공 덕분이다.
혹자는 완창과 ‘절창’을 비교해 완창은 전막 오페라 공연에, ‘절창’은 아리아를 선별해 구성한 ‘갈라’쇼에 비유한다. 적절한 비유인 것 같으나 갈라쇼라는 말로는 ‘절창’을 정확히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절창’은 완창 판소리와도 다르지만 창극과도 다르다. 대화창 위주의 창극과 달리 판소리의 3대 요소인 소리와 아니리, 발림이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창극 공연과도 다르고, 1인 수행의 판소리 공연과도 다른 것이 ‘절창’이다.
17~19세기에 판소리가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극 장르로 정착하는 과정을 겪었다면, 20세기 판소리는 창극이란 새로운 장르가 분기한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떤 새로운 양식이 분기될까?
‘절창’에서는 두 명의 소리꾼이 노래한다. <절창Ⅰ>에서는 창극단의 대표 스타 김준수와 유태평양이 ‘수궁가’를 불렀고, <절창Ⅱ>에서는 여성 간판 단원 민은경과 이소연이 ‘적벽가’와 ‘춘향가’를 불렀다. <절창III>에서는 안이호와 이광복이 ‘수궁가’와 ‘심청가’를 불렀고, <절창 IV>에서는 조유아와 김수인이 서로 다른 제의 ‘춘향가’를 불렀다.
보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한 명이 부르는 걸 두 명이 부른다고 무슨 대단한 혁신이 나오나? 단순히 1+1의 산술적 계산에서 끝난다면 ‘절창’은 양적 측면에서 압도하는 창극 앞에 맥을 못 춘다. 판소리에서 창극이 분기되는 과정에서 2인, 3인의 분창 형태는 이미 초기에 시행된 바 있다. ‘절창’ 역시 고전적 분창 형태로 2인이 나와서 토끼와 자라, 혹은 이도령과 성춘향을 고정적으로 맡아 대화창만을 한다면 산술적 합에 그치고 말 것이다. ‘절창’의 상상력은 이러한 기계적 덧셈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둘이 고정된 배역을 나눠 부르는 기존의 상투적 방식을 전복하는 것이다. ‘적벽가’와 ‘춘향가’가 한 무대에 오르는데 갈라쇼처럼 아리아가 횡적으로 나열되지 않는다. 각각이 일정한 서사와 극성을 가지며 두 개의 극이 3차원 공간에서 재배치되어 제3의 극으로 완성되는 느낌을 갖는다.
<절창IV>는 춘향가를 부르되 서로 다른 소리제, 즉 김세종제와 동초제가 동시에 불린다. 전통 소리판에선 양립할 수 없던 두 제의 소리가 동시적으로 섞이는 새로운 사운드스케이프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떠오른다. 각각의 눈대목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나열된다면 뻔한 갈라쇼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극적 응집력을 부여해 판소리 고유의 연극성을 유지할 것인가? 느슨하면서도 강력한 극적 장치로서의 새로운 접착제는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절창’은 답을 해야 한다.
‘절창’에서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절창’에서 드라마투르기는 연출가와 대본가뿐만 아니라 소리꾼, 음악감독과도 협업한다. 누가 더 중심적 역할을 하느냐는 상관없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재구성하는 데 소리꾼의 소리를 새로운 주제, 서사와 세계관 안에 포섭하는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공연에 따라 연출가가 혹은 대본가가 드라마투르기의 중심 역할을 한다. 그 가운데 남인우의 1·2회 드라마투르기는 ‘절창’을 새로운 공연 양식으로 한 차원 올려놓는 데 전범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 연장 선상에서 이치민(<절창Ⅲ>)과 임지민(<절창Ⅳ>) 연출의 구성도 기존 창극과는 또 다른 드라마투르기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요컨대 오페라의 갈라쇼는 아무런 극적 구성력 없이 나열되는 것이지만 ‘절창’에서는 창극보다는 느슨하지만 상대적으로 응집된 극적 구성력과 세계관을 가지고 새로운 드라마투르기의 영역을 창출하고 있다.
<절창Ⅰ>(2021)을 처음 봤을 때 무척 참신했다. ‘수궁가’를 100분으로 압축, 재구성한 <절창Ⅰ>은 방대한 완창 판소리를 밀도 있게 줄인 공연이다. 눈대목만 추리고 극적으로 중요한 장면만을 모아 속도감 있게 편집한 결과 몰입감이 높아졌다. 또한 2인이 교대로 수행해 무대 위의 움직임은 입체적으로 보였다.
<절창II>는 참신함에 과감함이 더해졌다. ‘춘향가’와 ‘적벽가’를 어떻게 한 무대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연습보다 회의를 더 많이 했다”는 <절창II>에서 남인우는 ‘적벽가’의 서사를 전개하는 가운데 ‘춘향가’의 장면을 접붙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별에 집중할 때는 ‘적벽가’ 중 조조의 군사들이 설움을 늘어놓는 ‘군사설움’에, 이별의 고통을 부연할 ‘춘향가’의 ‘이별가’로 이었다. ‘불’의 장면에서는 불타는 배에서 죽어 가는 병사들이 노래하는 적벽화전에 이어 이도령과 춘향의 불같은 사랑이 연출된다.
<절창III>에서 이치민은 ‘수궁가’와 ‘심청가’를 바다라는 공간과 세계관으로 접목한다. <절창 III>의 서사는 더욱 과감하다. 이광복의 ‘심청 인당수 빠지는 대목’은 예상을 깬 시작이다. ‘심청가’의 가장 극적 순간으로 시작함으로써 서사의 클리셰를 파괴한 것이다. 음악적으로는 이 부분을 지원하기 위해 판소리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동해안별신굿이 등장한다. 바다 하면 동해안별신굿 아닌가. 고수 이준형과 타악의 황민왕은 별신굿장단 위에 구음으로 곡을 한다. 이로써 땅과 바다를 오가는 이야기가 생과 사를 오가는 이야기로 치환된다.
<절창IV> ‘춘향가’에서 임지민은 젠더의 고정적 역할을 파괴하고 현대적 젠더 담론에 기반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여성 소리꾼에 대한 상투적 타자화를 배제했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웠다. 음악적으로는 김세종제와 동초제의 소리를 대비시키며 동시에 조화롭게 전달하면서 전통적인 소리 계보에 천착하는 미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음향적으로는 ‘사랑가’를 두 개의 다른 소리제로 동시에 섞어서 부르는 장면에서 헤테로포니적 사운드가 연출되어 입체창의 새로운 실험으로 결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