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빠른예매 바로가기 사이트 지도 바로가기
월간미르 상세

2020년 11월호 Vol.370

“희한하게 국악이 늘 곁에 있었다”

미리보기 넷 ② | 지휘자 정치용 인터뷰

 

한국의 리듬과 소리를 자연스레 곁에 두어온
그가 보여줄 최상의 음악적 조합


1978년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첫 공연을 한 곳은 서울 종로구의 소극장 ‘공간사랑’이었다. 김덕수가 “무대에서 숨을 못 쉴 정도로 좁았다”고 기억하는 작은 극장이었다. 창단 공연을 위해 사물놀이패가 연습할 때 지휘자 정치용도 거기에 있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청년 정치용은 “사물놀이패가 10개월을 연습했는데 그중 절반 정도를 지켜봤다”고 했다.


기억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네 명이 앉아서 이상한 악기를 두드린다. 거기에서 오는,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흥’이라고 표현하기엔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처음에는 리듬을 맞추면서 시작하지만 점점 빨라진다. 네 명이 완전히 일치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때는 희한하게도 리듬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고 음향만 남는다. 그때 김덕수 명인이 소리를 막 지르는데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학교에서 공부하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이 세계에 매혹돼 학교보다 더 자주 소극장에 들렀다. “이상하게 국악이 늘 가까이 있었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리듬에서 출발하는 감성을 발견했다. 지금 본 건 나에게 평생을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음악계에서 정치용의 무게는 묵직하다. 현재 코리안심포니 예술감독인 그는 국내의 신생 오케스트라, 수십 년 된 교향악단, 지방 악단을 이끌어왔다. 1997년 원주시향 수석지휘자로 시작해 1999년 서울시향 단장, 2008년 창원시향, 2015년 인천시향의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하지만 그는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는 잡식성 지휘자”라고 본인을 소개한다. “오스트리아 유학 생활을 끝내고 귀국했을 때 첫 연주가 KBS홀 개관 공연이었는데 팝스 콘서트였다.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가수 노사연의 ‘만남’과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반주했다.”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고 해서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고 했다. “나는 서양 오케스트라, 그중에서도 클래식 음악 지휘자다 이런 걸 보여주는 게 아니라 주어진 연주를 얼마나 잘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태극기 휘날리며’ ‘은행나무 침대’ 같은 영화음악과 뮤지컬 음악, 편곡된 가극까지 다양한 음악을 그는 마다하지 않고 지휘했다. “그러고 나서 서양음악으로 돌아가면, 도움이 안 될까? 당연히 도움이 된다. 악보를 해석하는 스펙트럼이 달라진다.”

 

무성한 자연 속에서 거닐만한 길을 내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
따라서 그에게 국악 지휘는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창작음악회였다. “처음에는 좀 두려웠다. 국악기도 모르고 국악을 공부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마다하지 않고 지휘를 맡은 그는 소리의 조합을 만들어나간다는 점에서 국악 또한 서양음악과 근본적으로 같다는 점을 깨달았다. “용기를 얻었다”라고 했다. 서양음악 지휘자의 소리에 대한 추구를 알아본 국악관현악단과 함께하는 무대는 계속됐다. 2003년 ‘3인 음악회’에 이어 2011년엔 ‘파트 오브 네이처’ 지휘를 맡았다.


수십 년 동안 서양 오케스트라를 조율해 온 그가 국악의 현대화에서 맡은 역할 또한 일종의 조율이었다. 2017년 국립국악원의 창작악단 연주를 맡았을 때의 일이었다. “해금과 합주할 때면 악기마다 음높이가 각각 다르다. 국악에서는 그게 당연한데 그 오차를 최대한 줄이는 게 현대 지휘자들의 일이다. 국악에서 조율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비판도 많았던 걸 안다. 하지만 합주를 하고 나서는 깨끗하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근본적인 사운드를 통일한 후에 국악이 본래의 색대로 표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양 오케스트라가 잘 정돈된 정원이라면 국악 합주는 야생에서 자라는 풀과 같다. 물론 약간의 정돈이 필요하지만 원시림처럼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성한 자연 속에서 거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내주는 것, 정치용은 그 일이 국악 지휘자의 역할이라고 본다. “국악 악보를 볼 때, 이 악보가 어디로 가려 하는지 찾는다. 조금씩 정리해 가면서 원시림을 완전히 조각해 버리지 않으려 조심한다.”


그는 국악관현악단을 서양 교향악단에 준해 파악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악 합주에서는 연주자 하나하나가 명인이고 악기와 한 몸이다. 오케스트라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본다.” 국악 지휘에서 단원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다. “국악관현악단 연주자들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 국악관현악단 지휘는 함께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최상의 음악적 조합을 찾아갈 수 있게 서로 유도한다.”


11월 25일 ‘2020 마스터피스 : 정치용’은 2011년 이후 9년 만에 정치용이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하는 무대다. 초연 후 재연되지 못한 곡 중 연주할 작품을 그가 직접 골랐다. “현대음악은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 시대의 예술적 상황을 보여주는 거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 또 예술가들의 태도를 남겨놓는 수단이다.” 국악의 미래를 내다보며 21세기에 작곡된 음악을 다시 한번 소개하면서 그는 인간과 예술의 의미를 둘러본다. “역사에서 인간이 남길 수 있는 흔적이 예술과 철학이다. 의식적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대상이다.”


이번처럼 창작 작품이 재연될 기회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역사적 작곡가들의 작품 중 한 번에 완성된 것은 드물다. 수많은 개작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 재연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지 알 수 있다.”


스무 살 적 예감처럼, 사물놀이의 격정적인 리듬은 그에게 평생 남았다. “국악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하지만 기회가 올 때, 마다한 적도 없다.” 한국인의 리듬과 소리를 자연스럽게 곁에 두던 그는 이제 국악관현악단을 지휘할 수 있는 일순위의 서양음악 지휘자로 자리 잡았다.

 

김호정 ‘중앙일보’ 문화팀에서 음악·공연 등을 담당하고 있다. JTBC 음악 프로그램 ‘고전적 하루’, 유튜브 ‘유못쇼’ 진행자다

사이트 지도

사이트 지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