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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호 Vol.367

국립무용단 전정아

예술가의 초상

‘천생 무용수’랄까. 전정아는 그저 춤추는 게 좋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부상이 유난히 많았어요. 대강 치료하고 무작정 몸을 던지니 자꾸만 고장이 나더군요.”
좀 뜻밖이었다. 전정아가 국립무용단의 거의 모든 공연에 출연해 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부상을 끌어안고도 무대에서 버텼다는 말이다. 
“한국무용이 워낙 무릎을 많이 써야 하기도 하고, 저는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동작을 좋아하는데 왜 그런지 강하고 역동적인 점프를 해야 할 일이 많았어요. 그런 간극 때문인가 봐요.”
역시 ‘왜’인지는 모르겠다고 했지만, 9월 중순 공연 예정인 신작 ‘다섯 오’에서도 화려한 독무를 춰야 한다. 국립무용단의 간판 무용수 박혜지와 더블 캐스팅된 것이다. 
“‘다섯 오’는 동양의 음양오행을 춤으로 풀어내는 작품이에요. ‘화·수·목·금·토’ 중에 저는 ‘화’ 장면에서 솔로를 추게 됐죠. 아직 감독님께서 콘셉트만 주신 상태인데, 불을 표현하는 춤이니 화려하고 완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동작은 글쎄요, ‘화’ 장면을 함께 구성하는 승무와 대조적으로 가야 하니 현대적인 동작이 되겠죠. 어쩌면 현대무용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공연까지 두 달도 더 남았지만, 올해 초 부임한 손인영 예술감독이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라 일찌감치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1월 ‘설·바람’ 공연 이후 국립무용단은 개점휴업에 가까운 상태다. ‘산조’ ‘제의’ 등 큰 공연을 한창 준비하다 코로나19로 인해 막판에 취소되는 사태가 반복되며 단원들도 맥이 빠졌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전정아는 입단 이래 최초로 예술감독이 안무하는 대작의 솔로를 추게 된 것이다. 
“늘 연습하고 있지만, 공연까지 해야 끝나는 건데 계속 막판에 취소되니 안타까움이 컸어요. 솔로요? 부담이 크죠. 솔직히 고민이 더 많아요. 처음엔 어리둥절하기도 했죠. 안무가마다 각자 스타일이 있는데, 손 감독님은 무용수의 장점을 연결해서 채워가는 걸 추구하시는 것 같아요. 박혜지 씨와 더블 캐스팅이니 서로 동작을 맞추면서 저만의 스타일도 드러내야겠죠. 요즘은 또 군무 연습하느라 바쁘네요. 혜지 씨가 솔로를 추는 날엔 저는 군무를 춰야 해서요.” 
‘천생 무용수’랄까. 전정아는 그저 춤추는 게 좋은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꾸밈이라곤 1퍼센트도 없이 순수했다. 그간 국립무용단이 주목받았던 ‘대단한’ 작품들 얘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신 단원들끼리 만든 작은 작품에 애정을 드러냈다. 
“장현수 선배의 ‘팜므파탈’은 꼭 한 번 다시 했으면 싶어요. 선배 춤을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선배만의 색깔이 있거든요. 2부에 핏물 맞는 장면이 지금도 생생해요. 핏물이 떨어지는 강렬한 이미지 속에서 섬세하게 움직이는 그 느낌이 좋았어요. 저는 단원들이 안무한 게 더 좋더라고요. 단원들이 합심해서 서로 믿고 맡겨주고, 그러니 더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 같아요.” 
수많은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인 작업도 친구가 안무한 작품이란다. 2009년 ‘바리바리 촘촘 디딤새’라는 공연 중 박기량 단원의 ‘축제’다. 
“‘축제’는 아픔에 대한 이야기인데, 당시 기량 씨나 저나 아버지를 잃은 아픔이 있었어요. 둘 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풀지 못한 한이 있었는데, 그걸 공감대로 작품을 만든 거라 애착이 다를 수밖에요.”
안무에 도전한 적도 있다. 2014년 우리춤협회의 ‘무용을 위한 칸타타’ 공연에서 안무와 출연을 겸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안무를 하면서 벽에 부딪혔고, 난 역시 춤추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라면서 웃는다. 
“어느 날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께 연락이 왔어요. 좋은 기회가 있으니 안무를 해보라고 권하시는 거예요. 그때도 기량 씨가 도와줘서 같이 했어요. 친구랑 여자의 인생 이야기를 해보고 싶더군요. ‘그림자 떼어주기’라는 작품이었는데, 엄마의 길을 딸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있잖아요. 그런 걸 담아봤어요. 음악까지 새로 작곡해서 라이브 연주와 함께하는 공연이었는데, 작곡가에게 다 맡기고 딱 3번 맞춰보고 공연하니 스릴 넘치고 좋더군요.(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 박기량 단원과는 거의 30년 지기다. 목포에서 중학교 무용반 시절 만났고, 서로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가 대학 입시 때 다시 만났다. 국립무용단 입단 후에는 둘 다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됐다. 진도 씻김굿 대가인 고故 박병천 선생의 딸인 박기량에게 라이벌 의식은 없었을까. 
“라이벌? 질투? 그런 것 없어요.(웃음) 기량 씨는 안무 욕심도 있고, 집안 자체가 악기를 다뤘으니 장단을 아주 섬세하게 안다는 것도 장점이죠. 내가 못 가진 것에 대한 부러움은 있겠죠. 근데 같이 힘들어하던 일이 많아 공감대가 커요. 둘 다 연습하다 다쳐서 무릎 수술,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았거든요. 처음에 다쳤을 때 재활을 잘했어야 하는데, 정보가 없으니 무조건 빨리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을 던졌죠. 뒤늦게 알고 같이 힘들게 재활하면서 부둥켜안고 울기도 하고, 같이 으쌰으쌰 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15년 만에 받는 ‘화려한 조명’
무용에 입문한 건 일곱 살 때다. 목포 출신 예술가들이 흔히 국악 집안 핏줄인 것과 달리, 맞벌이하던 엄마가 방과 후 시간을 보내라며 등록해 준 학원이 한국무용 학원이었다. 
“발레나 현대무용으로 바꿔볼까 고민도 했었는데, 한국무용이 좋더군요. 일단 토슈즈를 안 신어도 되잖아요.(웃음) 버선의 매력도 있죠. 하다 보니까 버선이 예뻐요. 한국춤의 매력이란 게 섬세함인데, 섬세한 발동작이 다소곳한 버선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일곱 살 때부터 혼자 버스 타고 씩씩하게 무용학원에 다니는 그를 집에서 말리지는 않았지만 예술의 길을 걷는다는 건 경제적으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콩쿠르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작품비·의상비 등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 드는 콩쿠르 출전은 부담이었다. 
“사춘기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콩쿠르도 못 나가는데 뭘 위해 매일 같은 것만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고. 중학교 2학년 때 1년을 쉬었죠. 쉬니까 다시 움직이고 싶더군요.(웃음)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때 처음 콩쿠르에 나가 입상했어요. 대학교 때는 못 나갔는데, 대학원 때 선배에게 부탁해서 받은 작품 ‘천상루’로 동아콩쿠르 금상을 탔죠. 둘러보니 참가자 중 제 나이가 제일 많더라고요.(웃음)” 
국립무용단 입단의 행운도 “우연찮게” 찾아왔다. 
“뭘 해야 하나 고민이 많던 시절이었는데, 국립무용단에서 총무로 일하던 친구가 원서 접수 마지막 날 연락해 줬어요. 그 전해에 도전했다가 안 된 곳이라 당연히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합격했더라고요. 막상 들어와서도 적응하느라 힘들었어요. 선배들한테 하도 혼이 나서, 첫 무대 때는 실수하지 않으려 바짝 긴장해 어떤 작품이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네요. 그렇게 어렵던 선배들이 이제는 가족 같아졌지만요.” 
입단 당시 예술감독이자 대학 은사이던 김현자 선생에게는 “만날 혼이 났었다”라면서 추억에 젖는다.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는데, 제자라 그런지 저만 그렇게 혼을 내시더라고요.(웃음) 선생님 작품엔 특유의 여성적인 색깔이 있거든요. 저도 그런 색깔이 좋은데 저한테는 유독 힘 있는 동작을 많이 주셨어요. 너한테는 그런 게 잘 어울린다면서.(웃음) 그런 이미지가 제게 있나 봐요. 이번 ‘다섯 오’에서도 파워풀한 면을 보고 솔로를 시키신 것 같아요.”  
현대적이고 힘 있는 동작이 잘 어울리는 데는 무용을 시작한 이후로 줄곧 창작무용 위주로 활동해 온 탓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요즘 들어 부쩍 전통을 진득하게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라며 전통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살풀이 같은 걸 해보고 싶어요. 절제미 때문에요. 한을 다 풀어야 될 것 같은데도 절제해야 하는 미묘한 긴장감이 있거든요. 특히 살풀이는 라이브 음악과 함께할 때 매력적이죠. 장단 변화가 있어서, 고수와 악사가 구음과 추임새를 넣어주면서 무용수와 호흡을 맞춰줄 때 느끼는 짜릿함이 참 좋더라고요.” 
9월 공연될 ‘다섯 오’는 어쩌면 입단 15년 만에 가장 짜릿한 무대가 아닐까 싶다. 평생 다른 취미도 없이 무용 한길만을 걸어온 그가 잠시나마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으니 말이다. 15년간 묵묵히 국립무용단의 모든 공연을 지탱해 온 전정아의 내공이 ‘화려한 조명’ 속에 어떻게 드러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예술가의 초상’을 국립극장 유튜브에서도 만나보세요.
youtube.com/ntong2

유주현 ‘중앙SUNDAY’ 공연 담당 기자.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다카라즈카 가극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 황필주 Studio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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