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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3월호 Vol.362

시조로 현재를 그리다

깊이보기 넷 | 고시조 산책

※국립극장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국립극장 및 전속단체 등의 3월 공연을 잠정 연기합니다.

 

옛사람 역시 노래로 심신을 수양하고 시름을 풀었으며, 인연과 자식 됨을 이야기했다. 우리 선조들이 향유하던 시조를 통해 과거와 교감하고 변치 않는 정신을 노래한다

 

문학인 동시에 음악인 시조
시조는 노래다. 시조는 지금도 여전히 악기 반주를 수반해 노래로 불린다. 하지만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는 시조를 노래로 접해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조를 노래가 아닌 문학 작품으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조를 노래하는 방식은 가곡창과 시조창 두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곡歌曲’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조가 노래이자 음악이기도 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감상해야 한다.
시조는 고려 말엽에 창작되기 시작해, 조선 시대 내내 유행한 양식이다. 처음에는 작품을 기록할 수단이 없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었으나,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비로소 문자로 기록될 수 있었다. 일부 문인들은 시조를 ‘시여詩餘’라고 지칭했는데, 이는 한시만이 ‘시’이고 시조와 같은 우리말 노래는 ‘시의 나머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황은 한시가 “읊조릴 수는 있지만 노래할 수는 없다”라고 하면서, 시조의 가치가 노래로 부르는 데 있음을 분명히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정형시로서 시조는 네 개의 음보가 하나의 행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세 번 중첩돼 한 수를 이루는 ‘4음보격 3행시’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3행 즉 종장에서 첫 음보는 대체로 3음절로 이뤄진 감탄사를 배치해 정서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둘째 음보는 5음절 이상이 주어짐으로써 작품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집약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종장의 마지막 음보도 주로 감탄형이나 의지형 어미로 마무리해, 시적 주체의 정서적 환기를 불러일으키면서 작품을 마무리한다. 이 때문에 시조는 안정된 호흡과 세련된 시상 전개 방식을 동시에 갖춘 고도로 정형화된 시가 양식인 것이다.


절개의 상징, 대나무를 노래하다
시조에서는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적지 않은데, 조선 시대 지식인들에게 자연은 속세를 벗어난 정신 수양의 공간이었다. 때로는 자연물을 소재로 해 인간 세상의 다양한 면모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대나무는 각 식물 특유의 장점을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에 비유하는 사군자 중 하나다. 선비들의 ‘절개’를 상징하는 대상이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굽을 절이면 눈 속에 푸를쏘냐
아마도 세한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 원천석


이 작품의 작자인 원천석(1330~?)은 고려 말 혼란한 정치 상황을 개탄해, 치악산에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한 인물이다. 조선이 건국된 뒤 정치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고려 왕조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끝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한 그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겨울철에 많은 눈이 내리면, 눈이 나무에 쌓여서 때로는 대나무가 휘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쌓인 눈이 녹으면 대나무는 다시 꼿꼿하게 일어선다.
이 작품은 대나무를 보면서, 눈에 굽어지거나 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더욱이 대나무는 눈보라 속에서도 특유의 푸름을 간직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절개’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종장에서 대나무의 이러한 정신을 일컬어 ‘세한고절歲寒孤節’이라 칭하면서 그의 절개를 높이 평가하는 구절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세한고절’은 한겨울의 심한 추위에도 굽히지 않는 굳은 절개라는 의미인데, 바로 대나무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아마도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는 인간의 태도를 비판하는 의미에서 겨울철 많은 눈에도 휘어지지 않고 사계절 푸른빛으로 변함없는 대나무의 절개를 떠올렸을 것이다.

 

사랑, 알 수 없는 그 실체를 상상하다
사랑이 어떻더니 둥글더냐 모나더냐
길더냐 자르더냐 밟고 남아 자힐러냐
하 그리 긴 줄은 모르되 끝 간 데를 몰라라  - 이명한 

 

조선 전기 문인인 이명한(1595~1645)의 작품으로 사랑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있다.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일 따름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한다. 사랑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존재해야 생기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상대도 나를 사랑할까 하는 궁금증을 항상 품고 있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초장에서는 먼저 그 형상이 ‘둥글더냐 모나더냐’라고 묻는다. 중장에서는 질문의 내용을 한결 구체화해, 그것이 길거나 혹은 짧아서 길이를 잴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자 한다. 마침내 종장에서는 사랑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리 긴 줄은 모르되 끝 간 데를’ 모르겠다고 한다. 사랑의 실체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저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스스로 답하고 있다. 사랑이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란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은 아니지만,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어차피 눈으로 확인할 수 없기에, 차라리 그것을 알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자세가 내포돼 있는 것이다.


효도,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
“너도 네 자식 낳아봐라!”
젊은 시절 속을 썩일 때마다 부모님이 자식들에게 즐겨 하던 말이다. 자식을 낳고 부모가 돼서야 이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됐다. 교훈적인 내용을 다룬 작품을 ‘훈민시조訓民時調’라고 일컫는데, 그 가운데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 어버이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내용이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부모님 아니시면 내 몸이 없으리라
이 덕을 갚으려 하니 하늘 끝이 없도다 - 주세붕


‘오륜가’는 민간에게 오륜의 규범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지은 시조로, 인간의 일상적인 삶을 생동감 있게 비유해 표현한 작품이다. 전체 6수로구성된 주세붕(1495~1554)의 ‘오륜가’ 가운데 하나다. 초장은 ‘사자소학四字小學’에 나오는 구절인 ‘부생모육父生母育’이라는 구절을 그대로 번역해 옮겼다. 누구든지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세상에 태어날 수 없다. 중장은 그러한 부모님의 은덕을 갚기 위해서는 하늘 끝이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부모의 은혜를 일컬어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표현하는데, ‘하늘이 끝이 없다’는 뜻으로 이에 견줘 어버이의 은혜가 넓고 커서 다함이 없다는 의미다.
‘시조 칸타타’는 시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합창하는 작품이다. 전통 방식과는 다르게 새로운 형식으로 불리겠지만, 이 역시 시조가 노래임을 염두에 둔 기획이다. 시조를 전공하는 연구자로서 이 무대가 어떻게 꾸며질지 무척 기대된다. 무대에 올리는 작품 중 몇 편을 골라 그 의미를 따져보는 것으로, 관객이 공연을 좀 더 깊게 감상하는 데 조그만 보탬이 되길 바란다.

 

김용찬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옛 노래의 숲을 거닐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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