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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호 Vol.359

헝가리인의 아픔과 불안을 치유하다

헝가리 부쇼야라시

평소 침착하고 차분한 헝가리인들은 매년 겨울 부쇼야라시가 열리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무서운 표정의 가면과 양털 코트로 무장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부쇼야라시를 둘러싼 갖가지 기원
얼마 전 헝가리 남부의 두나(다뉴브) 강변에 자리 잡은, 인구 2만 명이 채 못 되는 작은 도시 모하치Mohacs에 다녀왔다. 모하치 인근의 도시 페치Pecs에서 공부하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모하치는 내가 헝가리에 가면 꼭 들르는 곳이다. 1526년, 오스만 터키가 헝가리에 침입했을 당시 모하치는 접전의 최전선에 위치했다. 결국 헝가리 왕 러요시 2세Lajos II가 전사하면서 패배한 이후, 헝가리는 150년간 치욕스럽게도 이민족의 통치를 받았다. 이때 일은 헝가리인에게 국가적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삶의 어려운 고비를 겪을 때마다 헝가리인들은 “모하치 패배보다 더하랴?”라는 말로 스스로 위로하곤 한단다.
부쇼야라시Busojaras는 모하치에서 매년 겨울에 열리는 문화 행사로 모하치의 치욕과 관련해 생겨난 것이라 전해진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야기는 이러하다. 오스만 터키의 군대가 헝가리를 지배하자 모하치 주민들은 압제를 피해 늪지대나 숲으로 숨어들었다. 숨어든 주민들이 밤에 불을 피우고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데, 하루는 어떤 노인이 나타나 말을 건넸다. 마치 우리 옛이야기의 산신령 같은 노인이었다.
“놀라지 마라. 너희들은 이 어려운 삶에서 벗어나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전투를 준비해라. 여러 종류의 무기를 만들고, 무섭게 생긴 가면도 준비해라. 그리고 가면을 쓴 기사가 나타날 어느 비 내리는 밤을 기다려라.”
노인은 이 말을 하고 사라졌다. 며칠 뒤, 정말 가면을 쓴 기사가 나타나 주민들에게 모하치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가능한 대로 큰 소리를 내라고 지시했다. 오스만 터키군은 폭풍이 몰아치는 어둠 속에서 소음과 흉측한 모양의 가면에 놀라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 악령의 공격이라 생각한 그들은 해가 뜨기도 전에 모하치를 떠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부쇼야라시의 기원을 추운 겨울을 몰아내는 데서 찾는 견해도 있다. 겨울철에 열리는 축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즈음 헝가리에 가면 거리에 눈이 쌓여 있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두나강에서는 습기가 많은 바람이 불어오면서 냉기를 더한다. 본래 부쇼야라시 축제는 퍼르셩Farsang이라 하는 사육제가 끝나는 2월 중하순에 시작해 사순절 전날에 막을 내리지만, 올해는 3월 2일부터 이틀간 열렸다.

 

가면 쓴 부쇼들의 시끌벅적한 가두행진
축제가 열리는 중앙광장에 들어선 관람객을 먼저 맞이하는 것은 나무로 만든 악기가 내는 시끌벅적한 소리다. 이름은 알지 못하지만 그 악기 안에 있는 톱니바퀴의 마찰음이 나무통을 울리면서 마치 기관총을 쏘는 듯한 소리가 난다. 그 외에 소뿔로 만든 악기며, 여러 가지 현악기와 타악기도 등장해 큰 소리를 낸다. 마치 자신들의 선조가 그랬듯 말이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들어가 보면 도시 중심부의 자유의 길Szabadsag u.을 따라 가지각색의 먹을거리며, 기념품이나 소품들을 파는 노점상이 늘어서 있다. 조금 더 걸으면 모하치 세체니 광장Mohacs Szecheny ter이 나온다. 여기가 축제의 중심이다. 거리와 광장은 온통 무섭게 생긴 가면을 쓴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은 부쇼Buso라 불리는데, 목조가면과 커다란 양털 코트로 무장한 사람들(전통적으로 남성이 맡는다)을 일컫는다. 소나 양의 뿔을 붙인 가면에도 코트처럼 털이 붙어 있어서 괴상망측한 표정이 여실히 살아 있다. 축제라는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면 “에구머니나!” 하고 도망칠 만하다.
부쇼야라시는 두나강에서 배를 타고 온 부쇼들이 상륙하는 장면을 재현하는 것으로 축제의 막을 올린다. 습지에 숨어 있던 당시 선조들이 오스만 터키군을 내쫓으며 고향에 돌아오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리라. 강변에서는 갈대와 나무관 같은 것을 태우는데, 이 역시 오스만 터키군을 혼란스럽게 하려 했던 당시 전술을 재현하는 모습이다. 남성들은 가면과 함께 양가죽을 뒤집어쓰고, 여자들은 헝가리 전통 복장을 입은 채 얼굴을 반쯤 가린 가면을 쓰고 함께 걷는다. 어린이들 역시 기괴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변장을 하고 어른을 따라 행진에 참여한다. 자유의 길을 지나 축제 참가자들이 도착한 세체니 광장에서는 여러 가지 행사가 벌어진다. 광대가 등장하고, 전통무용 공연이 열리며, 곡예도 볼 수 있다.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부쇼야라시
사람들은 가면을 통해 또 하나의 페르소나를 드러낸다. 그 페르소나를 빌려 자신의 생각과 뜻을 마음껏 펼친다. 우리나라의 가면극에서 천민계급의 광대가 탈을 쓰고 양반 중심의 전통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했던 것처럼, 부쇼야라시에서 모하치 주민들은 가면을 쓰고 ‘그날 승리의 주인공’이 된다.
페치와 모하치에서 겪어본 헝가리인은 부쇼야라시 때가 아니면 대부분 침착하고 차분했다. 도수가 높은 헝가리 전통주 팔린커Palinkar(순도 높은 주정을 얻기 위해 1차 발효된 양조주를 증류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증류주 스피릿의 한 종류)를 즐기지만 술에 취해서 거리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을 본 적은 없다. 페치나 모하치가 헝가리 남부 도시로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을 존중하는 분위기라 더 그렇기도 하다.
반면 부쇼야라시에서는 헝가리인의 새로운 페르소나를 볼 수 있다. 그들은 특히 장난스럽게 행진하며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술 취한 사람처럼 익살스럽게 비틀거리면서 행진하는 이들도 있으며, 서슴없이 행인을 껴안는 등 즉흥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물론 축제 때에는 그 모든 것이 웃음으로 용인되는데,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헝가리는 이민족의 지배라는 씁쓸한 기억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국토의 3분의 2를 잃어버린 아픔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해 영어조차 배우지 못하는 압제를 받았으며, 근래에도 경제가 어려워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에 놓인 헝가리인들에게 부쇼야라시 축제는 해방구나 마찬가지다. 가면을 쓴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일종의 사회적·집단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부쇼야라시에는 아픈 과거와 상처, 심리적 불안과 정서적 불균형을 청산하려는 간절함이 담겨 있는 셈이다.
유네스코는 헝가리 작은 도시의 이 오래된 축제에 주목했다. 유네스코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역사보다는 자연적인 기원이었다. 즉 겨울이 끝나는, 겨울을 물리치는 축제라는 의의에 주목한 것이다. 더불어 탈을 깎고 만드는 전통, 축제 관습이 모하치에서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에도 가치를 뒀다. 그리고 모하치 사람들이 이 축제를 통해 소통하고 결속을 다진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2009년 유네스코는 아부다비 회의에서 부쇼야라시 축제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로 했다.
단순한 사회적 행사 이상의 의미를 넘어 도시·사회적 집단·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표현하는 축제로 자리 잡은 부쇼야라시의 예술은 다양한 문화 배경을 지닌 부쇼 그룹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되며 보존되고 있다. 개인에게는 스스로를 표현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를 안정화시키는 중요한 역할도 수행한다. 가면 조각 기술과 축하 의식에 대한 지식을 젊은 세대에게 전수하며 부쇼야라시의 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진다.


·사진 김병선 헝가리 페치대학교에서 객원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4년 ‘헝가리에서 보물찾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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