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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호 Vol.359

낯설어도 새롭게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I 3분 관현악

평균 나이 33세의 젊은 작곡가 10명이 5분 내의 국악 관현악곡을 만드는 도전을 마쳤다. 쉽지 않은 것을 쉽게 전하려는 노력. ‘3분 관현악’이 눈에 띄는 실험이었음은 분명하다.
2019년 10월 24~25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설렜다. 공연 시작 전부터. 그리고 약간의 걱정도 앞섰다. ‘웬만한 가요나 팝송 정도밖에 안 되는 길이에 도대체 어떤 관현악을 얼마나 담아내겠다는 것인가.’
이 공연의 취지에 따르면 각각의 곡은 대체로 악동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4분 50초)보다도 짧아야 한다. 앤 마리의 ‘2002’(3분 7초) 정도면 무난히 합격인 셈이다. 지난 7월, 젊은 국악 작곡가 10인은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별난 작곡 의뢰를 받았다. 국악 관현악곡이되 3분 내외의 짧은 길이로 어떤 경우에도 곡 길이가 5분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단서가 붙었다. 주제는 자유. 상상의 한계는 없되 시간적 한계는 칼 같은 이 상황에 평균연령 33세의 젊은 작곡가들도 처음엔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파격 실험, ‘3분 관현악’은 이렇게 작곡가에게도, 연주자에게도, 관객에게도 첫인상부터 느낌표보다 물음표로 다가왔다.

 

‘3분 관현악’이란 실험이 남긴 것
10월 24일 저녁, 달오름극장에는 공연 전부터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3분 관현악’이란 강렬한 제목에 일단 사로잡힌 관객에게서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표정을 읽었다.
첫 곡이자 서곡은 ‘조율’(작곡 최덕렬). 뒤에 이어질 ‘어느 예술가의 초상’ ‘어느 예술가들의 순환’ 모음곡을 염두에 둔다면 이것은 서사의 산뜻한 출발로 손색없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처럼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시작한 악곡은 여유로운 해금 솔로를 거쳐 역동적 볼레로풍의 리듬까지 대담하게 나아갔다. 짝수 박(6박)에서 홀수 박(5박)으로 이행하며 마치 뒤에 이어질 곡의 극적 묘사에 복선이 돼주는 듯했다.
1부의 중심이 된 4개의 협주곡은 목구멍을 넘어가는 도톰한 캡슐처럼 고막으로 쳐들어왔다. 총 10분여의 짧은 길이 안에 세 젊은 작곡가의 역량과 모험심을 압축해 담아낸 것이다.
‘어느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대제 아래 1악장 생황 협주곡 ‘신기루와 폐허’, 2악장 거문고 협주곡 ‘그 안의 불꽃’(작곡 김현섭·협연 오경자), 3악장 해금 협주곡 ‘끝없이 하늘 끝으로’(작곡 김영상·협연 변아영)가 이어졌다. 한편으로는 약속한 시간의 한계가 버거워 보이기도 했다. 할 이야기가 많았다. 젊은 음악가가 국악에 대해 느낀 환상, 국악계에서 실제로 부딪친 환멸, 자아 안에서 일어난 고뇌와 열정, 극복과 승화의 이야기까지 모두 담기에 시간은 길지 않았다. 협연자 교체와 박수 시간도 필요해 서사의 호흡이 끊긴 점은 아쉬웠다.
1부의 대단원은 ‘어느 예술가들의 순환’이라는 대제로 생황·거문고·해금의 3중 협주곡 ‘정화’가 장식했다. 세 명의 작곡가가 함께 만든 협업 방식부터 신선했다. 관현악·타악·협주 부분을 제각각 만들어 합쳐 완성한 것. 여러 악기와 아이디어가 충돌하는 흥미로운 작업인 만큼 짧은 러닝타임이 아쉽기도 했다.
1부는 사실상 서곡과 4악장으로 이어지는 20분여의 긴 곡처럼 짜여 있었다. ‘3분 관현악’이라는 상징적 형식에 맞춰 잘려 있었지만 시리즈 형식임을 감안하면 심리적 호흡이 길어 관객이 다소 지루해할 수 있는 구조다. 다만, 젊은 작곡가들의 거두절미, 단도직입의 미학과 거침없고 과감한 협주 악기, 악기군의 활용이 공연 이후 벌어질 여러 가지 화학작용과 새로운 창작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하기도 했다.
인터미션 때 관객 반응은 양가적이었다. 먼저 다가온 것은 설렘이 친숙함으로 변한 안도감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국악이란, 관현악이란, 국악 관현악이란 쉽지 않다’는 체념 비슷한 것 역시 느껴졌다. ‘3분’이란 제목이 주는 인상이 강력한 홍보 포인트이자 선입견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부의 출발은 3악장 구조의 ‘목멱산’(작곡 장석진)이 수놓았다. 정주와 트라이앵글, 바라를 차례로 활용하며 운해雲海의 잔물결처럼 리듬을 생성했으며, 태평소·대금·박·편경 등 관악기와 타악기를 폭넓게 활용한 점이 눈에 띄었다. 2악장 ‘산에 오르다’에서 서정적이고 느린 템포로 영화음악의 느낌을 풍기더니 3악장 ‘목멱산’은 거칠게 질주했다. 잘게 자른 리듬 위로 새타령의 선율 일부를 반복 구절로 잘라 활용해 친숙함과 긴박감을 섞어냈다. 태평소의 음색을 색소폰처럼 활용하며 일견 독일 음반사 ECM 레코드풍의 재즈를 연상케 한 점이 이채로웠다.
‘3분 관현악’이란 타이틀의 관점에서 보자면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2부의 후반부터였다. 모음곡이 아닌, 짧은 단일 곡들이 각자 개성을 발하면서 폭발하고 명멸하며 사라졌기 때문이다. 포문을 연 ‘윤슬’(작곡 최지운)은 제목처럼 다양한 악기군을 폭넓게 사용해 너울거리는 듯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끌어냈다.

 


이날 공연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곡은 ‘판타스마Fantasma’(작곡 양승환)였다. 가야금·글로켄슈필·비브라폰의 몽환적인 분산화음을 바탕으로 제목에 걸맞게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를 연상시킬 정도로 이국적인 곡이면서도 음색·선율·구성 등 다방면에서 대중에게 가장 정서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만한 악곡이었다.
‘백일몽’(작곡 정수연)의 이어진 배치는 강한 이국적 인상의 ‘판타스마Fantasma’를 국악적 정서와 이어주는 가교 구실을 하도록 한 묘수였다. 서구 리듬과 우리 장단을 절묘하게 교차해냈다.
이어진 ‘마지막 3분, 무당의 춤’(작곡 이고운)은 ‘판타스마Fantasma’와 함께 이날 저녁 매우 강렬한 잔상을 남긴 곡이다. 무당의 광기 어린 몸짓을 벽력같은 도입부부터 강렬하게 묘사했다. 타악기군이 활개 치며 무당의 기개를 마치 영화 속 ‘조커’처럼 거친 필체로 그려갔다. 중반부 아쟁을 필두로 한 불길한 음계의 색까지, 규모와 스펙트럼에서 할리우드 영화 사운드트랙을 연상시켰다. 후반부의 짧은 장구 솔로와 수미쌍관식의 피날레까지 거친 흐름이 부드럽게 이어졌다.
마지막 곡인 ‘취(吹)하고 타(打)하다’(작곡 김창환)는 그 유장미를 통해 마치 앙코르처럼 기능하며 공연 전체에 포진한 다채로운 분위기와 스펙트럼을 넉넉하게 품어냈다. 초반부에 가야금과 아쟁이 주도한 느린 태동과 같은 리듬은 시나브로 점차 취타로 발전하더니 끝내 후반부, 선봉에 선 꽹과리의 신명 나는 흥으로 승화해 대단원을 장식했다. 결과적으로 짧은 곡들의 대결과도 같은 2부 후반부는 전체적인 악곡 배치와 흐름에서 자연스러웠다.
‘3분 관현악’은 실험이었다. 실험은 늘 미완이다. 오히려 예술적 실험의 의미는 완성태가 아닌 것에 상당 부분 도사린다. 실험과 파격은 늘 인간의 예술에서 시대를 바꾸고 나눠왔다.
‘3분 관현악’은 끝난 뒤에도 느낌표보다 더 큰 물음표를 남겼다. 수십 명이 긴 호흡으로 연주하는 국악 관현악에서 3분이란 시간은 얼마나 짧으며 긴 시간인가. 국악 관현악의 주제는 얼마나 다양화할 수 있을 것인가. 기획의 변처럼 흥·한·어우러짐 같은 추상적 주제를 넘어 명료한 캐릭터와 세부 주제를 그려내는 데 ‘3분 관현악’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3분 관현악’은 ‘30분 관현악’을 위한 맛보기에 그칠 것인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형태로서 발전해나갈 것인가.
박수는 끝났고 예술가들의 생은 계속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도 이어질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때로 진리는 관념이란 구획 안에 갇히기 쉽다. ‘3분 관현악’은 거대한 느낌표를 향한 짧은 물음표로서 역할을 충분히 했다. 내년에도 ‘3분 관현악’이 이어지기를 은근히 기대해본다.


임희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매주 라디오에 출연해 랩을, 격주로 포니정홀에서 임희윤의 ‘팝학다식’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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