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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호 Vol.359

또 한바탕 놀아보시게나!

지금, ‘춘풍이 온다’가 있기까지

다시 ‘춘풍이 온다’가 온다! 1980년대부터 오늘까지 ‘지금, 여기’를 신랄하게 비틀며 박수 치고 싶은 관객, 놀고 싶은 관객을 주인공으로 모신 그 마당놀이다. ‘춘풍이 온다’를 기다리며 시대를 풍미한 장르, ‘마당놀이’를 이야기해본다.

 

 


떠들썩한 길놀이와 고사, 본놀이를 거쳐 배우와 관객이 한데 어우러져 흥성거리는 뒤풀이로 이어진다. 아마도 몸속 DNA에 탑재돼 있을 전통음악과 춤사위가 되살아나며 관객은 풍자와 해학의 난장 속에서 한바탕 스트레스를 풀고 돌아간다. 이것이 1980년대 이래 한국 공연계에서 중요한 방점을 하나 찍은 장르, 마당놀이다.

 

1981년 최초의 마당놀이 ‘허생전’
물론 전통예술에 맥이 닿아 있지만, 마당놀이의 효시는 1981년 연출가 손진책이 처음 막을 올린 ‘허생전’이다. MBC 창사 20주년 기념 공연으로 문화체육관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연기와 재담, 전통 창唱과 춤사위가 한데 어우러진 ‘한국형 뮤지컬 놀이극’이라 정의할 수 있었다. 당시 극작가 김지일이 표재순 전 MBC 부국장에게 ‘마당극’ ‘마당놀이’ ‘모듬놀이’라는 이름을 제안해 표 부국장이 ‘마당놀이’를 골랐다고 한다.
같은 해 큰 규모로 여의도에서 치러진 ‘국풍 81’처럼, 마당놀이도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진희 전 MBC 사장(이후 문화공보부 장관)의 지시로 방송이 편성되면서 전국적인 인기를 끈 연중 사업으로 자리 잡게 된다. 연출가 손진책은 이렇게 회고한다. “이 사장은 절대 웃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공연 중에 힐끗 보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웃고 있었다. ‘아, 이거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MBC는 이듬해인 1982년 손진책이 소속된 극단 민예에게 제작을 맡기며 마당놀이를 계속했다.

 

명절 필수 방송, 관객은 인산인해
극단 민예의 뒤를 이어 1987년 연출가 손진책이 새로 창단한 극단 미추가 마당놀이를 이어받았고, 극단 미추 단원인 윤문식·김성녀·김종엽은 ‘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고까지 불리며 스타 자리에 올라 전국을 휘어잡았다. ‘심청전’ ‘춘향전’ ‘흥부전’ ‘놀부전’ ‘홍길동전’ ‘토선생전’ ‘변강쇠전’ 등을 비롯한 숱한 마당놀이 공연이 이어졌고, 전성기엔 해마다 20만~30만 명이 봤다. 2010년까지 30년 동안 마당놀이의 총 관객은 2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명절만 되면 텔레비전에선 당연히 마당놀이를 방송했고, 공연장 앞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차를 탄 배우들이 들어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손진책의 회고에 따르면 “마당놀이에서 사회 풍자를 하도 많이 하니까 나중에 방송에서 자체 검열을 할 정도였다”라고 한다. 그는 제5공화국 시절 ‘별주부전’에서 ‘독재를 일삼는 문어 대왕’을 등장시키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말부터 극단 미추와 MBC는 마당놀이에 대한 견해차로 갈라설 조짐을 보이다, 2001년 상표권 소송을 벌이며 결별했다. MBC는 1994년 이미 상표권 등록을 했기 때문에 미추 측이 ‘마당놀이’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그 명칭이 ‘마당에서 하는 놀이’라는 보통명사이자 예술 장르라는 미추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양쪽이 모두 마당놀이를 무대에 올렸으나 ‘정통’은 역시 윤문식·김성녀·김종엽이 출연한 미추 쪽에 있었다.

 

 

 

 

4년 공백기와 국립극장에서의 부활
그러나 마당놀이는 2010년 30주년 기념 공연인 ‘마당놀이전’을 끝으로 중단된다. 손진책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30년을 하고 나니 매너리즘에 빠진 게 느껴졌다. 그래서 스스로 문을 닫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공연 장르 자체를 없앤 건 아니고, 이제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 않으면 의미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마당놀이 스타 3인’의 존재가 너무나 강렬해 세대교체 자체가 어려워진 역설적인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4년 동안은 마당놀이 역사의 공백기였다. 2014년 마당놀이는 ‘국립극장 마당놀이’로 되살아났다.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이 기획공연으로 마당놀이를 극장 안으로 끌어들였는데, 손진책의 아내이자 왕년의 마당놀이 스타인 김성녀가 이때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으로 있었다. 손진책이 다시 연출, 김성녀가 연희감독을 맡고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등 국립극장 소속의 국내 최고 기량의 단체들이 가세했다.
지나친 관제官製 기획 아닐까? 남산 중턱 높이만큼이나 일반인에겐 생소한 국립극장이 마당놀이의 새 무대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손진책은 “국립극장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대와 객석이 혼연일체 되는 공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잖은가”라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개막작 ‘심청이 온다’(2014·2017)부터 ‘춘향이 온다’(2015) ‘놀보가 온다’(2016) ‘춘풍이 온다’(2018·2019)까지, 새로운 국립극장 마당놀이는 99퍼센트에 가까운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연말연시 ‘필견必見’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여기’의 날 선 풍자가 ‘존재 이유’

성공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작곡가 박범훈·안무가 국수호·극작가 배삼식 같은 국내 최고 제작진의 실력도 물론 출중하지만, 아무래도 앞서 제5공화국 때 문어 대왕을 등장시킨 것 같은 ‘풍자’의 날이 여전히 날카로웠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이것은 ‘2019년에도 여전히 마당놀이가 유효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의 대답과도 통한다.

30여 년 동안 마당놀이의 인기는 그저 고전의 스토리를 맛깔나게 풀어내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라 현실을 ‘풍자諷刺’한다는 데 있었다. 풍자란 무엇인가. ‘무엇에 빗대어諷 정곡을 찌른다刺’는 뜻이다. 따라서 그 ‘찌르는 날’이 얼마나 날카로우냐가 대중의 호응도를 결판 짓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손진책은 이 대목에서 중요한 말을 한다. “마당놀이의 ‘마당’이라는 것은 단순히 ‘멍석을 깔아놓는다’라는 뜻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두 발을 딛고 있다는 의미다. 그럼 ‘놀이’란 무엇인가? ‘즐겁게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것’ ‘인간다운 가치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당연히 작품 속에 사회문제들이 함축돼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형식에서는 전통, 내용에서는 현재를 표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지점, ‘지금, 여기’를 신랄하게 비트는 대목이야말로 옛 관객과 새로운 관객이 모두 열광한 부분이었다. ‘심청이 온다’에서는 심봉사가 “청아, 땅콩은 접시에 담아 왔느냐?”라며 개막 직전에 일어난 ‘땅콩 회항 사건’을 풍자했고, ‘소녀 가장 알바생’으로 등장한 심청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캐안습, 개짜증, 대-박”이라고 외쳤다. ‘놀보가 온다’에선 놀보가 탄 박에서 난데없이 ‘최순실’이 등장해 관객의 배꼽을 뺐다. 필자는 실제로 이 대목에서 글자 그대로 객석 밑으로 넘어져 ‘데굴데굴 구르는’ 관객을 목격한 적이 있다.
하지만 ‘국립극장표 마당놀이’가 옛 명성을 완전히 되찾을 정도로 소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공연의 질은 확보됐지만, 문제는 옛 마당놀이 시절의 야성野性이다. 아무리 마당놀이에 맞춘 가설무대와 객석을 설치한다고 해도, 아직 힘 빼고 모든 걸 내려놓은 뒤 즐겁게 춤출 수 있는 ‘마당’이란 공간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스타 시스템’의 부재와 종종 풍자의 날이 다소 방향을 잃는 현상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마당놀이 신작, ‘춘풍이 온다’ 시즌2
12월 12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서 두 번째로 개막하는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는, 우선 지난해 첫 시즌에서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던 풍자의 질이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기대를 키우고 있다. 한 해 동안 한국 사회에서 부쩍 늘어난 풍자의 소재들을 새롭게 극 곳곳에 배치하리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번 재공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단연 캐스팅이다. 춘풍 역에 지난 시즌 호평받은 김준수와 더불어 유태평양이 더블캐스트로 무대에 오른다. 김준수가 미끄러지듯 유려한 풍류남아 춘풍이라면, 유태평양은 끈적끈적 능글맞은 허랑방탕 춘풍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해학 넘치는 연기라면 따라갈 자가 없는 서정금이 다시 오목이 역을 연기하고, 마당놀이 전설의 삼인방과 30년 고별무대에도 섰던 민은경이 오목이 역으로 합류하는 것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연희계에서 잔뼈가 굵기로 유명한 정준태는 ‘꼭두쇠’ 역으로 이 작품에 새롭게 합류한다. 대세 트로트 가수 송가인도 한때 단원으로 있었던 ‘광대놀음 떼이루’의 대표를 맡은 인물이 바로 정준태다. 이 밖에 관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국립창극단의 김미진, 객원배우 홍승희를 포함해 34명의 배우와 20명의 연주자가 회심의 새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 ‘춘풍이 온다’가 공연된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해도 마당놀이가 오른다. 무대 위에 설치한 가설 객석 덕에 출연진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은 마당놀이 전용 극장을 하나 만드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유석재 1990년대 초부터 공연 마니아로서 대학로를 들락거렸고,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2014년부터 3년 동안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다시 초야의 관객으로 돌아와 종종 공연장에 출몰하고 있다.

 

국립극장 마당놀이 ‘춘풍이 온다’
날짜 2019년 12월 12일~2020년 1월 26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관람료 전석 5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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