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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호 Vol.357

애환을 담아 널리 보내는 노래

삶과 노래 사이┃제주 여성의 ‘제주민요’

제주 여성은 힘겨운 노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음악으로 서로의 마음을 위로했다. 굳센 의지로 생을 일군 그들의 솔직담백한 소리에 귀 기울여본다.

 

 


제주에서는 ‘노래’를 ‘놀래’라고 불렀다. 놀 시간이 없어 노동밖에 모르는 여성이 일하며 부르는 노래를 ‘놀래’라고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통 노래가 들리던 공간은 여기저기 솟아 있는 오름이거나 작업 공간인 바다이기 때문에, 제주 여성은 자신의 노래가 산과 물을 넘어 널리 전해지길 바랐다. 삶에서 우러나는 탄식을 몸 안에서 삭이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통해 밖으로 울려 퍼져나가기를 원한 것이다.

 

시처럼 엮어 삶의 애환을 그리다
해녀들이 바다에서 물질 작업을 하며 부르던 ‘해녀노래’나 아낙들이 맷돌을 갈고 방아를 찧으며 노래하던 ‘맷돌노래’ ‘방아노래’의 가락에는 삶의 고난과 노동의 고통을 이겨내는 여성의 눈물이 스며 있다. 그녀들은 자신의 정서를 마치 시인처럼 엮어 노래했다. ‘동계집桐溪集’에는 “섬 여자들은 방아를 포함해 맷돌 작업을 새벽까지 하면서 슬프게 노래한다. 통역하지 않으면 의미는 해석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슬픈 곡조는 저절로 나그네를 슬픔에 잠기도록 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근대기에 일본은 조선을 강점하면서 민족 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 중 하나로, 우리가 부르는 민요와 즐기는 민속을 조사해 본토 연구의 모델로 삼고자 했다. 그중 다카하시 도루高橋亨 교수는 제주 민요를 중국의 사서삼경 중 하나인 ‘시경詩經’의 ‘국풍國風’과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엽집萬葉集’에 비견하기도 했다. 그것은 제주 사람들의 생활상이나 역사, 당시의 세태들이 노래 속에 잘 반영돼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 여성의 노래에 대한 철학은 ‘모자람’ 혹은 ‘부족함’이 바탕이 된다. 언제나 근면하고 검소하게 사는 그녀들은 명주 한 통이 모자라 제주가 육지가 되지 못했다는 설화 ‘설문대할망’과 같이 자신에게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늘 되새기곤 했다. 그래서 제주 여성은 강인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힘든 노동으로 점철된 삶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는 원동력에는 노래가 있었는데, 이는 풍류가 담긴 놀래가 아닌 우염(울음)이었다.
“부르거든 놀래말라 부르거든 풍류말라 나에게는 우염이라라 우염좋다고 우염당지으난 어디우염 좋아니다(부르거든 노래라 말고 부르거든 풍류라 하지 마라 나에게는 울음이라 우는 것이 좋다고 울음으로 된 집堂을 지으니 어찌 울음이 좋았는가 한다).”
-‘맷돌·방아노래’ 중에서-
문헌 기록상 제주민요의 자취는 고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기 학자 이제현이 펴낸 문집 ‘익재난고益齋亂藁’ ‘소악부小樂府’에서 제주민요의 잔영을 찾을 수 있다. 이제현은 당시 유행하던 제주민요 가사를 한문체의 악부시로 번안해 ‘수정사水精寺’와 ‘탐라요耽羅謠’를 실었다. 수정사는 법화사와 원당사와 더불어 제주의 3대 고찰 중 하나다. ‘수정사’는 사찰을 관리하는 사주寺主와 기방 여인과의 은밀한 애정행각 행태를 풍자하고 비판한 작품이고, ‘탐라요’는 밭농사를 위주로 하는 제주의 보리농사 정경을 그려 시대상을 담은 작품이다. ‘탐라요’가 지어질 당시 제주에서 보리농사와 삼을 재배하는 일은 주요 생업이었다. 보리 이삭이 패기 전에 미리 밭이랑을 정비해야 했고, 삼베의 주재료인 삼나무의 곁가지도 쳐내야 했다. 이처럼 바쁜 와중에도 제주 아낙들은 육지에서 청자와 백미를 갖고 건너오는 님을 기다렸다.

從敎壟麥倒離披 보리밭 이랑은 엎어졌건 말건
亦任丘麻生兩岐 곁가지 생긴 삼麻도 내팽겨쳤네.
滿載靑瓷兼白米 오로지 청자와 백미를 가득 싣고서
北風船子望來時 하늬바람 따라 오는 배만 기다리누나.

‘탐라요’는 전승 과정을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제주민요로 남아 전하는 ‘맷돌·방아노래’는 앞서 말했듯 제주 여성이 맷돌을 돌리거나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이 곡에서 느껴지는 정서와 시상이 ‘탐라요’와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이는 ‘탐라요’의 오랜 전통이 ‘맷돌·방아노래’에 담겨 그 맥이 이어져왔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나아가 제주민요의 끈질긴 생명력을 증명한다.

 

 

굳세게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며
제주 여성의 노래에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담겨 있다. 그 그리움의 대상은 사랑하는 연인뿐만이 아니라, 어머니 혹은 딸이 되기도 한다. 모녀는 세대를 이어 사는 여성들로서, 어머니가 살아온 삶이 딸에게 자연스레 전해진다. 특히 과거 제주 여성은 결혼하면 바로 시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당분간 친정을 오가면서 생활하다 자식이 생기면 시집 식구의 한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대우받았다.
시집살이하는 딸이 어머니를 향해 부르는 제주민요의 ‘시집살이 노래’에서 시집가는 길을 “가시나무가 엉켜 있고, 띠가 무성하게 자라난 길”로 묘사한다. 나아가 그 당시 여성이라면 대부분 시집을 가고 시집살이를 겪지만, 자신이 가는 길은 유독 험난하다고 표현한다.
“남도가는 길이언마는 우리어멍 날보낸 길은 가시짓고 띠짓어서라(남도 가는 길이지만 우리 어머니 나를 보낸 길은 가시가 무성하고 띠가 무성하더라).”
하늘에 떠 있는 연이 대추나무에 걸려 얽혀 있는 것처럼 시집 식구와의 관계도 복잡하고, 천륜인 부모자식 간의 인연은 쉽게 끊을 수 없다. 끊임없이 밭 노동과 바다 일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이 실제로 감당해야 할 짐은 헤아릴 수 없이 무겁기만 하다. 그래서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지게의 짐은 어머니가 물려준 운명이라고 여긴다.

“돌도지는 지게여마는 낭도지는 지게여마는 우리어멍 날지운지겐 놈이버린 뒤지겔러라(돌도 짊어질 수 있는 지게인데, 나무도 짊어질 수 있는 지게인데, 우리 어머니 나를 지운 지게는 남이 버린 지게다).”

곁에서 자신을 돌봐주시던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느끼는 그리움의 마음 또한 지극하다.
“가랑비도 부뮈넉시여 은비도 나부뮈넉시여 문게산 지드렴서라 귀에 쟁쟁 열리염서라(가랑비도 부모의 넋이여 굵은 비도 내 부모의 넋이여 문에 서서 기다리더라 귀에 총총 들리는 듯하다).”
반면 해녀들이 뱃물질로 노를 저으며 바다로 나갈 때 부르는 ‘노 젓는 소리’의 한 구절은 밝은 기운이 깃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여이여 이여도사나 짱으로 집을삼앙 눗고개랑 어멍을삼앙 요바당에 날살아시민 어느바당 거릴웨시랴(모자반 덩이를 집을 삼고 놀 고개랑 어머니를 삼아 이 바다에서 내가 살았으면 어느 바다라고 걸릴 바가 있으랴).”
모자반 덩어리 같은 해초를 집처럼 여기고, 파도의 고개는 어머니 삼아 이 바다에서 살아왔으니, 다른 지역의 바다 작업도 거뜬하다고 노래한다. 노동하는 공간에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대상을 가장 친근한 것에 비유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보여준다. 노래 속엔 제주 여성의 힘찬 저력과 거친 파도를 넘어 노 젓는 기상이 담겨 있다.
이러한 제주민요들이 오래도록 전승될 것이라고 마냥 낙관할 수는 없다. 가창이 가능한 이들은 고령이기 때문에 어쩌면 먼 훗날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옅어져 노래들도 서서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 강해지고 절대 쓰러지지 않는 제주 여성의 삶과 지혜는 영원히 남아 빛이 될 거라 믿는다.

  
좌혜경 제주학연구센터 전문연구위원
그림 정수지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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