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6월호 Vol.353 |
---|
국립극장 소극장 개관 기념공연·궁정에서의 살인
1973년은 국립극장뿐만 아니라 한국 공연계에 역사적인 해로 손꼽힌다. 일본이 지은 건물들을 전전하던 20여 년의 세월을 지나 남산 아래 우리 손으로 지은 공연장이 자리 잡게 됐기 때문이다. 유례없는 규모라는 수식은 대극장을 필두로 소극장까지 갖추었기에 더없이 어울린다고 할 만했다. 설계자 고(故) 이희태는 “대극장(현 해오름극장)에서는 연극·오페라·발레·교향악 등을 공연하고, 소극장(현 달오름극장)에서는 국악 연주(한국 고전파 소음악회)를 주로 하는 것으로 그 성격을 규정지었다”라고 각 극장의 용도를 설명하기도 했다.
화려한 수식에 걸맞게 개관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열기는 1년이 지나도록 끊이지 않았고, 국립극장의 남산 이전이 한국 공연예술의 포괄적이고 심도 있는 발전을 위함이라는 사실은 ‘국립극장 소극장 개관 기념공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공연 시기를 1974년 3월 초로 정하고 ‘3.1절 경축’이라는 부제를 붙인 점에서부터 전통문화를 지키겠다는 포부가 선명하다. 공연은 무려 5일 동안 이어졌으며, 국립국악원의 아악부터 국립창극단의 판소리, 한국민요연구회의 민요, 국립무용단의 무용 등 다채로운 무대가 구성됐다. 특히 기존에는 주로 민간 단체에서 공연하던 탈춤·남사당 등의 민속 예술도 포함돼 국립극장의 남다른 지향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국민들도 이 같은 노력에 호응해 신축 극장의 로비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공연예술박물관 소장 자료를 통해 얼마나 공연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생생히 확인해볼 수 있다. 1974년이기에 영상 기록은 불가능했으나 대신 풍부한 녹음 자료와 사진, 포스터와 안내 책자에 당시 공연의 이모저모를 담았다. 검은 바탕 위에 국악기가 어우러진 구성의 안내 책자는 표지 디자인이 고졸하면서도 세련된 맛이 있으며, 안에는 당시 공연 순서와 예술인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어 녹음 자료와 함께 감상할 만하다.
한편 동일한 기간, 국립극장이 떠나온 명동예술극장에서는 ‘궁정에서의 살인’이라는 연극을 상연하고 있었다. ‘초당’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 강용흘이 쓴 영문 극본을 이근삼이 한국어로 번역하고 민예극단이 제2회 공연으로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고려 공민왕 시대가 배경인 대하 서사극이면서도 당시 한국 젊은이를 닮은 두 남녀 주인공의 현대적인 성격이 특징이다.
이렇듯 국립극장은 1973년에 남산으로 터전을 옮겼으나, 신구(新舊) 공연장 모두에서 전통을 계승한 창작의 열정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75년 매각돼 문화계에 큰 아쉬움을 남긴 명동예술극장은 2009년에 재개관해 연극의 명맥을 재계승하고 있으며, 1973년 개관 이래 국립극장은 쉬지 않고 전통에 기반한 공연예술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리고 공연예술박물관은 난관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지는 예술혼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함으로써 그 유대가 미래로 한층 튼튼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글 이주현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
참고 유민영, ‘환갑 맞은 국립극장, 되돌아보다’(국립극장, ‘국립극장 60년사’), 2010.
3.1절 경축 국립극장 소극장 개관 기념공연 | 궁정에서의 살인
공연예술자료 이용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