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4월호 Vol.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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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성음과 강인한 통성에 완벽한 연기력으로 소리판을 이끌던 최진숙이 아버지와 함께 30년 전 감동의 무대를 소환하다.
벌써 30년은 됐을 것이다. 군산에 판소리 실태를 조사하러 갔는데, 하필 그날이 군산국악원 회원들의 곗날이었다. 1960~70년대 판소리가 몰락했을 때, 마지막 남은 호남의 판소리 애호가들은 국악원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모여 계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곗날에는 회원들이 소리꾼을 여럿 초청해서 판소리를 들으며 북도 치고, 음식도 먹곤 했다. 거기서 어리고 예쁜 소녀가 나이 든 남자의 북장단에 맞춰 소리하는 특별한 광경을 보았다. 영화 ‘서편제’에서 아버지 유봉이 북을 치고, 딸 송화가 소리하는 장면과 똑같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때는 영화 ‘서편제’가 나오기 전이었으니까 그들이 영화의 장면을 모방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가 당시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장면을 재현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때 본 남자와 소녀가 바로 아버지 최영길 명창과 딸 최진숙이다.
최진숙은 소리하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최영길 명창이고, 고모할머니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이던 최난수 명창이다. 그러니 최진숙은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소리를 듣고 자란 셈이다. 그런 그녀가 소리의 길로 들어선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아버지가 소리꾼이었지만 아버지에게 직접 소리를 배우지는 않았다. 그냥 어깨너머로 소리하는 것을 듣고 배우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김영자 명창에게 ‘수궁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김영자 명창이 너무 바쁜 탓에 가르칠 여력이 없다며 성우향 명창에게 보냈다.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현 국립전통예술학교) 재학 때였다. 1987년경이었는데 알다시피 이때는 서울올림픽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할 때였다. 한강의 기적이란 말이 유행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최진숙은 성우향 명창으로부터 1995년까지 ‘춘향가’와 ‘심청가’를 배웠다. 최진숙은 그렇게 배운 소리로 1988년 11월 18일 제6회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 판소리 장원을 차지했다. 열아홉 살 때였다. 전주대사습놀이 학생부에서 장원을 하면서 최진숙은 우리나라 판소리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명창감으로 촉망받는 소리꾼이 됐다.
이번 ‘완창판소리’ 공연에서 부를 소리는 성우향 명창으로부터 이어받은 김세종제 ‘춘향가’다. 김세종은 전라북도 순창 출신으로 ‘후기 8명창’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신재효가 고창에서 판소리 소리꾼을 모아 교육할 때 소리 선생으로 판소리를 지도했다고 하며, 진채선을 데리고 상경해 경회루 낙성연에서 소리를 하게 한 사람이기도 하다. 김세종의 ‘춘향가’는 김찬업·정응민을 거쳐 성우향에게 전승됐는데, 1960년대 초 판소리가 절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전통 판소리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하여 재발견된 소리다. 이때 정응민으로부터 ‘춘향가’를 이어받은 사람이 정권진·성우향·조상현·성창순이다.
글 최동현 군산대학교 국문과 교수·시인·판소리학회장. 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최진숙의 춘향가-김세종제’
날짜 2019년 4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