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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호 Vol.349

푸른 새벽, 세 별을 찾아 그리움 임을 위해 비나이다

삶과 노래 사이┃여창 가곡 계면조 평롱

 날이 새는 것이 안타까워 별에게 새벽이 오지 않게 해달라 비는 옛 노래가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오랜 시간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

 

북두칠성(北斗七星),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섯 여섯 일곱 분꺼이
민망(憫忙)한 발괄소지(白活所志)한 장 아뢰나이다.
그리던 임을 만나 정엣 말삼 차이 못허여 날이
수이 사이니 글로 민망
밤중만 삼태성(三台星) 차사(差使) 놓아 사잇별 없이 하소서

 


여창 가곡 계면조 평롱(平弄)은 그리운 사람을 만나 정을 나누면서 하룻밤이 짧음을 아쉬워하는 가곡이다. 가사 내용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북두칠성,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별님에게 안타까운 마음에 소원 하나 말씀드립니다. 그리워하던 임을 만났지만 정다운 말을 채 나누지도 못했는데 날이 새려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어, 오늘 밤만 삼태성에 명을 내려 샛별을 거두어주십시오.’ 이 노래의 화자는 왜 북두칠성에게 소원을 빌고 있을까?


국가나 집안 제사가 남성의 영역이었다면 물을 떠놓고 별에게 소원을 비는 것은 여성의 영역이었다.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소원을 빌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대상은 달이기도, 북쪽 하늘의 북두칠성이기도 했다. 선조들은 태양과 달, 그리고 북두칠성을 합해 삼신(三辰)이라고 불렀다.


북두칠성은 일곱 개의 밝은 별자리다. 북쪽 하늘에 뜬 두(斗) 모양의 일곱 별을 의미한다. 여기서 두斗는 술을 퍼 담는 그릇, 즉 국자를 뜻한다. 가곡에서 북두칠성을 하나?둘?셋 등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순서가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데, 별의 순서는 국자의 바가지에서 손잡이 순으로 진행된다. 그 손잡이는 계절과 삭월朔月을 알려주는 하늘의 시곗바늘 구실을 한다. 음력 달력의 육십갑자 역시 북두칠성의 자루가 지시하는 방향과 관계 있다. 선조들은 북두칠성이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었고, 인간의 생기·복·화·형벌·권력 등을 주관한다고 생각했다. 각각의 별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물론 어디서 유래했느냐에 따라 이름과 의미가 무척 다양하다. 계절과 생활에 밀접한 별자리면서 수명과 길흉화복을 주관하니 오랫동안 선조들에게는 해와 달만큼이나 친근하고 중요한 별자리였다.


1세기경 쓰인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천관서(天官書)에는 북두칠성의 일곱 별에 부여된 이름과 권능이 설명돼 있다. 첫째 별은 하늘의 지도리(중심축)로 양(陽)덕을 주관하고, 둘째와 셋째 별은 각자 하늘을 회전하는 옥(玉)으로 음(陰)과 법을 주관하며 화와 재난을 관장한다. 넷째 별은 하늘 저울의 중심으로 하늘의 이치에 따라 무도함을 벌하며, 다섯째 별은 양팔저울처럼 움직이는 조준 통으로 중앙에서 사방을 돕고 벌을 응징한다. 여섯째 별은 창고와 오곡을 주관하고, 일곱째 별은 군대를 주관한다.


이 중 여섯째 별 옆에는 작은 별이 하나 더 있는데, 이 별은 보(輔)라고 한다. 보는 여섯째 별은 물론 북두 전체를 보좌한다. 옛사람들은 북두칠성의 첫째와 둘째 별이 황제와 황후이고, 보가 승상이라고 생각했다. 늘 같은 자리에 뜨는 까닭에 하늘에서 북쪽을 찾는 길잡이 역할을 해온 북두칠성은 천계의 왕궁이자 정부였던 셈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북두칠성을 발견할 수 있다. 벽화 속 북두칠성은 남두육성과 함께 대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남두육성은 궁수자리에 속하는 여섯 개의 별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한편 북두칠성은 자신의 영역에 또 다른 세 별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삼태성이다. 북두칠성과 삼태성은 오늘날 모두 큰곰자리로 불리는데, 북두칠성이 곰의 등과 꼬리라고 하면 삼태성은 곰의 발에 해당한다. 조선 건국 초 흑요암에 새겨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면, 북두칠성의 남동쪽에 여섯 개의 별이 짝을 지어 계단 모양으로 나열돼 있다. 삼태성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을 따라 순서대로 상태上台?중태中台?하태下台로 구분해 부른다. 글자의 의미를 풀어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연상하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 별을 읽으며 소원을 빌다 앞서 언급했듯이, 선조들은 북두칠성이 황제와 황후라 보고, 삼태성은 상대적으로 신하의 위치로 생각했다. 천상 세계도 인간 세상과 같이 황제 아래 가장 높은 세 개의 직위가 있는데 이를 삼태(三台)라 한다. 2세기경 삼태의 역할은 천문 관측, 사계절의 변화 관찰, 새?짐승?물고기 관할로 나뉜다. 그러다 7세기경에는 삼태성의 상태가 인간의 생명을 관장하고, 중태는 인간의 정사를 관장하며, 하태는 인간의 부와 빈곤을 관장한다고 여겼다. 즉 삼태성이 덕을 열고 자연의 도리를 펼치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곡 계면조 평롱에서 여성 화자가 북두칠성에 소원을 빌며 삼태성에 명령해달라고 부탁하는 이유는 이 두 별자리의 관계가 임금과 신하라고 생각한 데 있다. 특히 삼태성의 상태가 생명을 관장하기 때문인지, 민간신앙에서 삼태성이 더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이 가곡의 마지막에 화자가 요구한 사항은 ‘오늘 밤에 사잇별을 없게 해달라’는 것이다. ‘사잇별’은 곧 ‘샛별’을 말하는 것이리라. 샛별은 금성(金星)을 말한다. 그것도 새벽에 보이는 금성이다. 금성은 지구에서 밤하늘을 볼 때마다 가장 밝게 빛나는 행성으로 가장 밝을 때는 북두칠성의 첫 번째 별 보다 약 300배 밝게 보인다. 금성이 지구 궤도보다 태양에 더 가까운 내행성이기 때문에, 언제나 태양 주변에 있다. 금성은 해가 진 후 서쪽 하늘이나 해가 뜨기 전 동쪽 하늘에서 볼 수 있다. 동쪽 하늘에 샛별이 뜨면 곧 아침이 되고, 그리운 임이 떠나게 되니, 밤하늘에서 샛별을 지우고, 여명이 밝아오지 못하게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반복되는 천문 현상을 멈춰서라도 소망을 성취하고픈 간절함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


전통 가곡을 들을 때면, 온화하다가도 격렬하고 격정적이다가 여려지는, 긴 숨이 느껴진다. 빠른 속도의 현대 가요에 익숙한 사람에게 전통 가곡의 느림은 낯설게 다가온다. 하지만 한 번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오랜 시간 천천히 생각하고 사유하며 살았을 선조들의 노래를 들으며, 우리 마음속 소망을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민병희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경희대학교 우주과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와 충북대학교에서 천문우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천문을 담은 그릇’ ‘조선시대 천문의기’ 등을 공동 저술했다.
그림 레모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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