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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Vol.347

창극의 최전선

리뷰 ㅣ 국립창극단 '우주소리'

 

창극의 미래가 우주 틈에서 발견됐다. 연출가 김태형이 국립창극단과 손잡고 선보인 ‘우주소리’다.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달오름극장에서 올린 이 공연은 창극이 유기물임을 증명한다.

2018년 10월 21~28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창극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다. 국립창극단은 여기에 새로운 인격을 부여했다. ‘우주소리’는 연극·뮤지컬 장르를 불문하고 ‘모범생들’ ‘카포네 트릴로지’ ‘벙커 트릴로지’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을 잇따라 히트시키며 블루칩 연출가로 떠오른 김태형의 첫 창극으로 주목받았다. 게다가 과학고와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이색 이력을 지닌 그가 SF문학의 거장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단편선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을 원작으로 삼았으니 공연계가 떠들썩할 만했다.


SF 창극, ‘신세계로 부를 만한 멋진 장르’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SF소설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88년 일본 세이운상(星雲賞)을 받고, 1986년 휴고·네뷸러상에 수상 후보로 오른 작품이다.


부모로부터 우주선을 생일 선물로 받은 뒤 과감히 광활한 우주로 모험을 떠나는 소녀 ‘코아티’의 경쾌한 우주 탐험기다. 외계 생명체 ‘실료빈’에 감염돼 뇌를 침투당하지만, 오히려 자신의 뇌에 자리 잡은 외계 생명체와 아름다운 우정을 키워 자신이 ‘할 만한 멋진 일’을 선택한다.
우리 전통을 기반으로 한 창극과 공상과학소설을 이르는 SF는 언뜻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에 대해 김 연출은 항변한다. “어차피 ‘수궁가’나 ‘심청가’에 나오는 용궁이나 ‘흥보가’에서 박을 깨고 나오는 도깨비가 은하계를 다루는 SF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하고 말이다.


미지의 공간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인간의 다른 매력에 매료될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기도 하다. 천체물리학과 수학 등을 기반으로 한 낯선 언어는 오히려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김 연출의 표현을 빌리자면 특히 SF가 매력적인 이유는 “실험군과 대조군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 실험 중 새로운 조건은 통제하고, 한두 가지만 조건을 다르게 해서 그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있다. 김 연출은 SF를 이에 비유했다. “다른 설정의 세계관 속에서 벌어지는 사람의 이야기로 하여금 들여다보고자 하는 것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SF에서 사이보그를 다뤄도 결국 인간을 바라보게 된다”라는 얘기다.


이로써 우리는 평소 발화되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에 대해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다. ‘우주소리’는 여느 장르의 일반적인 작품에서 ‘그깟 계집아이’로 취급받는 열여섯 살 소녀의 숭고한 희생을 보여준다. 자신의 이익과 편견에 매몰된 세상의 꼰대들에게 날리는 멋진 한 방!

 

진부한 영웅 서사가 아닌 여성 중심의 서사
이처럼 ‘우주소리’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한 능동적인 존재가 작고 어린 소녀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소녀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는 진취적인 세계관이다.


사실 김성녀 예술감독 체제의 국립창극단은 여성 중심 서사를 꾸준히 선보여왔다. 특히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고선웅 연출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가 본보기다. 원작 ‘변강쇠타령’에서 변강쇠가 아닌 옹녀에 방점을 찍은 이 작품은 호색남녀 이야기라는 원전의 편견을 깨트리고, 박복하지만 당찬 여인 옹녀를 중심으로 한국 여성들이 가진 삶의 에너지를 보여줬다.


올해 초 국립창극단이 ‘신(新)창극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으로 2월 28일부터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선보인 ‘소녀가’ 역시 여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소리꾼 이자람과 이소연이 연출과 배우로 만나 주목받은 이 작품은 ‘빨간 망토’를 원전으로 삼았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샤를 페로가 엮은 책 버전(1697)이 아니다. 이후 100년이 지나 사냥꾼이 등장해 할머니와 빨간 망토를 구하는 독일 그림 형제의 순화된 버전도 아니다. 이자람이 우연히 읽은 장 자크 프디다의 ‘빨간 망토 혹은 양철캔을 쓴 소녀’가 근간이 됐다. 소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막아서는 일종의 사회적 금기를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우주소리’ 속 코아티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의 열여섯 번째 생일. 아빠는 선물로 드레스, 메이크업 박스, 그리고 명품 브랜드 향수를 주지만 코아티는 심드렁하다. 암묵적으로 횡행하는 사회의 ‘여자 되기 요구’를 뿌리친 것이다. 그녀는 대신 우주선을 선물로 받고 당당히 자신만의 모험을 떠난다.


 

극의 마지막 코아티의 인간애적인 희생에 우주정거장 직원이 ‘훌륭한 여성’이라고 칭송하자 다른 여자 직원이 이를 정정한다. ‘훌륭한 사람’으로. 극의 클라이맥스까지 끊임없이 대상화되는 여성에 대한 세밀화로 볼 수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활극 시리즈 ‘스타워즈’와 ‘스타트렉’ 등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를 제외하고, 최근 우주를 배경으로 한 대형 SF영화의 대부분은 고립·외로움을 얘기하다 결국 가족으로 귀결되는 다소 보수적인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장르는 다르지만, ‘우주소리’는 어쩌면 가장 보수적일 수 있는 흐름 안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높이 살 만하다. 코아티와 실료빈은 안전장치인 가족이 아닌 우정을 넘어서는 관계와 인류애 실천을 택한다. 생물학적 차이로 인한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그 과정은 대단히 성스러운 이야기다. 굉장한 로맨스로도 읽힌다. 김 연출은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사의 찬미’,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로 두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결말을 보여준 ‘델마와 루이스’를 언급했다.

 

뮤지컬에 가까운 음악, 창극·소리꾼의 유연성

‘우주소리’의 음악은 관객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창극과 거리가 멀다. 오프닝 음악부터 이 작품은 평범한 창극이 아님을 선포한다. 국악기와 기타 등 밴드 편성의 악기가 어우러지면서 영화 ‘스타워즈’의 그 유명한 주제가를 편곡해서 들려준다.
이후 ‘오, 당신이 잠든 사이’ ‘김종욱 찾기’ 등 창작 뮤지컬계 ‘미다스의 손’ 김혜성 작곡가가 만든 뮤지컬 넘버스러운 곡들이 중심이 돼 극이 흘러간다. 보통의 창극을 기대한 일부 창극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아쉬운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음악이 완전히 뮤지컬에 치우친 것은 아니다. 국악을 공부한 김혜성 작곡가는 뮤지컬 넘버의 멜로디컬한 면을 살리면서 국립창극단원들의 소리와 유연하게 맞물리는 구성을 취했다. 여기에 국립창극단원들이 캐릭터 분석을 바탕으로 직접 작창을 맡아 연습 과정부터 공동 창작으로 참여한 까닭에 이들이 맡은 소리 부분도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코아티 역에 조유아, 실료빈 역에 장서윤 등 소리꾼들의 유연함이다. 이들은 소리뿐 아니라, 노래를 잘했다. 소리꾼이라고 모든 노래를 구성지게 부른다고 생각하면 오산. 멜로디가 유연한 노래에서 이들의 목소리와 호흡도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진다.
이런 점은 창극의 확장 가능성을 엿보게 만든다. 용어·언어·기호·지명·연산자 등을 소리로 표현한 부분을 찾아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우리 소리의 특징 중 하나는 갖은 표현력으로 청자를 상상하게 하는 데 있다. SF에 창극이 최적화된 장르라는 공식이 이렇게 성립된다. 소리의 여백이 주는 공간감 사이에는 다양한 장르, 선율의 감성이 채워질 수 있다. 우주의 신비로움이 빚어내는 외로움과 두려움, 그리고 아득해서 발휘되는 결연한 의지가 음악으로 생겨난다.

부채를 중심으로 판소리에서 창자가 온몸을 움직이며 감정을 표현하는 발림도 역동적이고 흥미로웠다. 무대 디자이너 김미경과 조명 디자이너 구윤영이 빚어낸 무대도 흥미로웠다. 원 형태의 중심 무대로 광활한 우주가 표현됐고, 푸르스름한 조명은 신비로움을 더했다.

 

 

연출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창극에는 위대한 도약
2014년 처음 연출한 오페라인 베르디의 초기 걸작 ‘나부코’를 스팀펑크 장르로 풀어내는 등 김태형 연출은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때마다 과감한 시도를 해왔다. 그는 장르에 오래 몸담은 이들을 따라갈 수 없어 잔꾀를 내는 것이라고 에둘러 말하며 겸손해했는데, 이런 점은 해당 장르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한다. 해당 장르 마니아에게는 예상 밖의 신선함, 해당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는 기대 이상의 흥미로움을 제공한다.

이번에 창극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얼마나 다양한 말이 오갔으며 얼마나 많은 연극·뮤지컬 팬이 창극을 관람하기 위해 국립극장을 처음 찾았는지 따져보면 될 일이다.

거창할 수 있지만 달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말을 빌려온다. “이것은 김태형 연출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창극 세계에서는 위대한 도약이다.”


과정이나 결과물에서 일부 아쉬운 목소리를 내는 이들도 있겠으나 김성녀 예술감독과 국립창극단, 김태형 연출의 기지가 아니었으면 개척하지 못했을 SF 창극 영역이다. 주지하다시피 공연 장르 중에서 소리를 무기로 삼은 창극은 특히 상상에 빚진 장르이기도 하다. 상상력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힘이다. 창극이여, ‘우주소리’ 찍고 갈 때까지 가보자. 창극의 맥박이 이곳저곳에서 뛰고 있다. 코아티가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말을 되돌려준다. ‘그것이 할 만한 멋진 일이여.’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공연음악 담당 기자. 2008년 11월 뉴시스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문화부에 있다. 무대에 오르는 건 뭐든지 듣고 보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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