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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호 Vol.347

성숙한 인간으로의 개안(開眼)

프리뷰 ㅣ 국립극장 '송년판소리'

 

12월의 끝자락에서 송년의 의미를 담아 2018년 마지막 완창판소리 무대가 관객 앞에 마련된다.

우여곡절 끝에 성숙한 인간으로 눈을 뜬 심봉사처럼, 지난 한 해 동안의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우리 모두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국립극장은 12월 27일 하늘극장에서 ‘국립극장 완창판소리’의 2018년 무술년 송년 무대로 안숙선 명창의 강산제 ‘심청가’를 올린다. 안숙선은 1987년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이래 28회나 출연한 최다 출연자일 뿐만 아니라, 국립극장에서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완창한 유일한 소리꾼이다. 2010년부터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제야판소리’를 늘 감당해왔다. 이제는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가 안숙선으로 시작해 안숙선에서 끝난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가 됐다. 이는 판소리에서 안숙선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뜻한다. 무술년을 보내고 기해년을 맞이하는 ‘송년판소리’에도 안숙선 명창이 제자 김차경·서정금·박정희·허정승과 함께 출연해 ‘심청가’를 완창한다. 해설은 전북대학교 정회천 교수가, 고수는 명고수 김청만과 조용수가 맡는다. ‘완창판소리’ 첫 출연 이래 약 3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안숙선 명창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다.

 

강산제, 목소리의 미감을 즐기는 예술
이번에 안숙선 명창과 제자 넷이 들려줄 판소리는 강산제 ‘심청가’다. ‘강산제’에서 ‘강산’은 서편제 판소리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박유전의 호다. 박유전의 소리를 들은 대원군이 “네가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제’는 ‘법제(法制)’에서 온 말일 것으로 생각된다. ‘모범이 되는 제도나 방법’ 정도의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강산제 소리’는 ‘강산 박유전의 소리를 모범으로 삼아 부르는 소리’ 정도의 의미라고 하겠다.


본래 전라북도 순창 출신인 박유전은 대원군의 사랑방에서 판소리를 하며 지내다가 대원군이 실각하자 나주로 내려왔고, 여기서 정재근이라는 소리꾼을 만나 전라남도 보성군 회천으로 갔다. 박유전은 정재근을 제자로 삼고, 그에게 자신의 소리를 전하고 세상을 떠났다. 정재근의 소리는 조카 정응민에게 이어졌는데, 정응민은 보성에만 머물며 자신의 소리를 갈고닦았다. 정응민이 시골에 묻혀 전통 판소리를 갈고닦는 동안 우리나라 판소리는 주로 창극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초에 창극단이 대부분 사라지게 됨으로써 판소리는 거의 사멸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자 창극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전통을 지켜온 정응민의 소리가 재조명받게 되어 많은 사람이 보성으로 내려가 그에게서 판소리를 배웠다. 박유전의 소리는 정응민을 통해 되살아나 현대 판소리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강산제 소리는 그야말로 ‘오래된 새로운 소리’였다.


강산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흔히 판소리를 ‘성음 놀음’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판소리는 목소리의 미감을 즐기는 예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성음의 변화를 중시한다. 음색과 조(調), 목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판소리를 엮어가려고 하는 이른바 ‘성음 중심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 강산제 소리는 방 안이나 대청에서 부르던 전통 방식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곳에서는 소리꾼과 청중의 거리가 매우 가까워 소리꾼의 모든 표현을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다. 그래서 소리의 세심한 표현이 가능했고, 또 이를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소리를 ‘극장 소리’와 비교해 ‘방 안 소리’라고 일컫기도 한다.


명고수 김명환이 말하기를, 정응민은 배우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소리를 달리 가르쳤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소리를 성우향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안숙선의 ‘심청가’는 바로 그 성우향에게 이어받은 것이다. 처음에 정권진에게 절반을 배우고, 나중에 성우향에게 뒷부분을 배웠다. 그런데 앞부분과 뒷부분이 이질감이 생겨 성우향에게 앞부분을 다시 사사해 ‘심청가’를 완성했다고 한다.


안숙선은 성우향을 사사하기 전, 이미 강도근과 김소희에게 ‘흥보가’와 ‘춘향가’를 배웠다. 특히 김소희에게는 ‘춘향가’ 한 바탕을 모두 사사해 김소희의 창법을 충실히 이어받았다. 김소희는 우아하고 정대한 창법으로 소리를 한 사람이다. 지나친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음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구사하며, 장단과 사설의 맺음과 끊음이 확실하다. 안숙선은 이러한 김소희의 창법에 자신만의 기교를 더했다. 타루(기교)나 시김새를 더 정교하고 복잡하게 구사한다. 그래서 안숙선을 가장 기교적인 소리꾼이라고 한다. 안숙선의 ‘심청가’ 역시 바로 이러한 창법이 돋보이는 소리다.


‘심청가’의 주제는 효라고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문제들도 들어 있다. 대체로 ‘심청가’는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전반부와 심봉사가 뺑덕이네를 만나 살다가 황성 맹인 잔치에 참석해 황후가 된 심청을 만나 눈을 뜨는 후반부로 나뉜다. 문제는 이 두 부분의 관련성이 적다는 것이다. 두 부분을 이어주는 심청의 환생이 너무 허황하거나 낭만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심청가’는 심청이 물에 빠져 죽는 데서 끝났다고 본다. 그러면서 ‘심청가’ 전반부는 결국 가난한 사람이 딸을 팔아먹은 이야기라고 한다. 실제로 ‘심봉사와 심황후 상봉 대목’에서는 심봉사가 “내가 딸 팔아먹은 놈”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효성스러운 딸이 그냥 죽고 말면 안 되기 때문에 심청이 환생해 황후가 된다는 낭만적인 결말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유교 국가인 조선 사회에서 효녀는 반드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심청을 되살렸다는것이다. 심청이 인당수에 투신한 이후 심봉사의 행적은 딸을 팔아먹은 죄를 씻어내고 참다운 인간이 되기 위한 속죄의 길이다. ‘심청가’의 마지막 장면은 속죄 과정을 마친 심봉사가 성숙한 인간으로서 다시 눈을 뜨는 기쁨을 보여준다.

 

강산제 ‘심청가’는 다른 ‘심청가’에 비해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을 음악적으로 아주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금 전승되는 ‘심청가’는 박동실제김소희제·김연수제 등 네 가지 정도인데, 김소희제 ‘심청가’의 절반은 강산제이며, 김연수제도 강산제가 중심이 되고 있다. 결국 박동실제 ‘심청가’ 외에는 모두 강산제 ‘심청가’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바로 강산제 ‘심청가’의 우수성에 있다고 하겠다.


올해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성숙한 인간으로 눈을 뜬 심봉사처럼, 한 해 동안의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우리 모두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올해 ‘송년판소리’를 ‘심청가’로 정한 것 역시 그런 뜻이 아니겠는가. 하늘극장에서 열리는 안숙선 명창과 제자들의 ‘심청가’ 공연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우리의 소망을 잘 대변해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동현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시인·판소리학회장·전라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국립극장 송년판소리
날짜     20181227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료  전석 3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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