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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호 Vol.345

성실함으로 쌓아 올린 소리

프리뷰4┃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정미정의 춘향가-만정제'

스승의 소리를 체득해 아로새기고 성실함으로 자신만의 소리 공력을 꾸준히 쌓아 올린 소리꾼 정미정을 만나다.

 

 


1917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나 20세기 판소리계에 크고 깊은 족적을 남긴 만정(晩汀) 김소희(1917~1995). 어수선한 시대의 아픔을 소리로 풀어낸 김소희 명창은 타고난 목으로 청아하고 미려한 소리를 지녔단 평을 받았는데, 절제된 감정선 안에서 섬세하면서도 유장한 소리가 특장이다. 훗날 여성국악동호회와 서울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학교) 설립에도 참여하는 등 박록주·박초월과 함께 현대 판소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손꼽힌다.


이러한 김소희 명창의 무릎제자로 알려진 이가 소리꾼 정미정이다. 목포가 고향인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해에 목포시립국악원에서 가야금으로 국악에 입문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14세)이 되자 본격적으로 소리 공부를 시작한다. 그때 첫 소리 길을 닦아준 이는 보성의 소리꾼 정권진(1927~1986) 명창이다. 정권진은 정응민 명창의 아들이자 1970년 ‘심청가’로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가 된 인물이다.

 

스승의 소리를 아로새기다
정미정은 정권진 명창의 집에서 숙식하며 소리를 체득했다. 당대 내로라하는 명창들의 북 반주를 도맡아 하던 김명환(1913~1989) 고수가 쓰던 공간을 물려받아 2년간 머무르며 공부했다. 그때 일을 물으니, 정미정은 한농선·박봉술 등 당대 걸출한 소리꾼들이 사랑방에 찾아와 소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막걸리를 반주 삼아 부르던 박봉술 명창의 소리를 떠올리는 정미정의 눈빛이 반짝인다. 이때 그녀가 소리를 체득한 방법은 지금 세대의 소리 공부 방식과 달랐다. 1년에 한두 번 산공부(합숙 훈련과 같이 한 장소에 스승과 제자들이 모여 일정 기간 공부하는 것)나 가야 소리를 듣고 부르며 하루를 온전히 소리 공부에 매진하는 지금의 공부 방식보단 과거 세습 예인들이 한집에서 머물며 소리를 배우던 방식에 가깝다. 공부 시간을 정해놓고 한 자락씩 배우기보다는 집을 방문하는 소리꾼들의 소리나 스승의 소리를 귀동냥으로 듣고 수학했다고 회고하기도 한다. 더디지만 온몸에 스승의 소리를 아로새길 수 있는 길이었다.

 

이정표와 같은 스승의 지침
그렇게 정미정은 정권진 명창에게 소리를 사사하며 준비한 끝에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해 서울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그녀의 소리 인생에 또 하나의 방향을 일러준 김소희 명창을 만난다. 정미정은 김소희 명창의 권유로 한양대학교에 진학해 소리 공부를 이어나갔다. 대학 졸업반이던 때, 졸업 연주를 마친 그녀에게 국립창극단 입단 시험에 응해보라고 권한 이도 김소희 명창이었다. 그녀는 스승의 권유로 졸업 연주회를 마친 그해 바로 시험을 치렀고, 이듬해 1월에 입단했다(1989년 1월 9일). 대학교 4학년 때 교생실습을 앞두고 결핵 판정을 받아 9개월간 치료에만 전념하며 낙담하던 그녀가 스승의 권유로 시험을 준비하며 기적처럼 목이 트였으니, 국립창극단과의 만남은 마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창극단에 입단하고 2년쯤 지나자 김소희 명창은 그녀에게 또다시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바로 안숙선 명창과 만나게 해준 것이다. 그때 정미정의 나이 25세. 어느덧 20대 중반에 접어든 그때, 정미정은 안숙선 명창의 집으로 들어가 결혼 직전까지 머무르며 4년간 소리를 사사했고 지금껏 스승과 제자의 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때 그녀는 어느 때보다 깊은 사색의 시간을 보냈다. 매일 묵묵히 성실하게 연습에 매진하는 안숙선 명창을 바라보며 소리만큼이나 소리를 대하는 태도에도 진중함이 더해졌다. 어느새 ‘매일 조금씩 성실하게 쌓아 올리는 것’이 그녀 자신의 소리 기조가 되었다.

 

40년 소리길을 되돌아보며
12년 전 소리꾼 정미정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소리꾼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성대를 다친 것이다. 목소리가 뜻대로 나오질 않았다. 생각지 못한 위기 앞에서 낙담하기를 수십 번. 하지만 성실하게 소리 공력을 쌓아 올리던 안숙선 명창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 또한 성실한 소리꾼으로 자신의 소리 길을 다듬어가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 결과 2016년에는 제20회 송만갑판소리·고수대회에 나가 판소리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명 대통령상이라 불리는 이 상은 소리꾼에게 명창의 격을 인정해주는 것이었다. 후일담이지만 대회가 열린 날, 정미정은 지리산 자락에서 잘 내려오지 않는 야생 곰을 마주해 좋은 기운을 얻었다고. 이제 국창이란 칭호를 내려주는 이도 없으니 대통령상까지 수상한 소리꾼에게 더 이상의 도전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정미정은 소리꾼으로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소리 공부를 시작한 지 40년 만에 첫 완창판소리 무대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미정은 1989년 입단 이래 국립창극단원으로 창극 ‘배비장전’(1996)의 주인공 애랑 역부터 최근 유럽 관객을 매료시킨 ‘트로이의 여인들’까지 크고 작은 배역을 가리지 않고 무대에 서서 자신의 역량을 성실하게 발휘해왔다. 그런 그녀가 또 한 번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무대를 완성하고자 신영희 명창에게도 가르침을 받으며 10월의 ‘완창판소리’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스승의 소리를 체득해 아로새기고 자신만의 소리 공력을 성실하게 꾸준히 쌓아 올린 소리꾼이 무대에 오른다. 이제 한 사람의 소리꾼으로 자신의 소리를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정미정의 무대가 기대되는 이유다.

 

김보나 국립극장 홍보팀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정미정의 춘향가-만정제’
날짜 2018년 10월 27일
장소 국립극장 하늘극장
관람료 전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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