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빠른예매 바로가기 사이트 지도 바로가기
월간미르 상세

2018년 08월호 Vol.343

소리의 아름다움을 확장하다

시즌인문학┃본질을 탐구하는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

영화음악으로 널리 알려진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는 다양한 작업으로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티스트다. 그는 일상적인 ‘소리’와 음악에 대한 생각을 세공해 앨범으로 발표하고, 설치 작업 등 다양한 실험으로 관객과 만난다.

 

 


인터넷 시대가 되고 나서, 새로운 정보와 소식을 전보다 빨리 그리고 정확히 알 수 있게 된 이점도 있지만, 몰라도 될 일을 너무 많이 알게 된 것은 새로운 골칫거리다. 10대 때부터 세계의 대중음악을 들으며 자라 이제 50대에 접어든 한 사람의 음악 팬에게 최근 몇 년의 기억은 존경하는 뮤지션들의 부고로 빼곡했다. 아마 앞으로 슬픈 소식을 더 많이 들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의 팬으로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런 것일 테니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부고도 걱정거리지만, 누군가의 사고나 투병 소식도 끊이지 않기 마련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걱정스러웠던 일 중 하나는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의 투병 소식이었다. 2014년 인두암 발병 사실을 공표하고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활동을 중단하면서 많은 이들이 그를 걱정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가 다행히도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단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완치에 가까운 상태로 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삶을 되찾고 다시 나아가다
2015년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어머니와 살면’의 음악을 맡으며 활동을 재개한 그는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alez Inarritu) 감독의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재일교포 이상일 감독의 ‘분노’(2016)에 이어 2017년에는 한국 영화 ‘남한산성’의 음악을 담당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7년 초에는 8년 만의 신작 오리지널 스튜디오 앨범 ‘에이싱크(async)’도 발표했다. 이 앨범 발표 이후 일부 수록곡은, 올해 2월에 작고 소식으로 팬들을 안타깝게 한 요한 요한슨(그 역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 ‘컨택트 Arrival’ 등의 음악을 만든 영화음악가이기도 했다)을 비롯해 평소 사카모토와 교류가 깊었던 알바 노토, 크리스티안 페네즈, 코넬리우스 등의 아티스트가 재해석해 ‘리모델’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졌으며, 앨범 ‘에이싱크-리모델스(ASYNCREMODELS)’와 몇 곡의 싱글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예전 못지않은 활동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반갑기 그지없지만, 올해 들어 한국의 사카모토 류이치 팬들에게는 몇 가지 더 반가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새 소식은 모두 2017년에 발매된 음반 ‘에이싱크’와 관련돼 있다. 먼저 앨범의 수록곡들을, 미디어 아티스트 다카타니 시로와 함께 재구성해 만든 설치 작품을 볼 수 있는 서울의 전시회 소식이 하나이고, 최근 만들어진 사카모토 류이치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이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소식이 다른 하나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 중 하나는 2012년부터 5년에 걸친 밀착 취재를 통해 그의 활동과 작업 풍경 등을 섬세하게 담아낸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Coda’(2017)다. 스티븐 노무라 시블이 감독한 이 영화는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난 반원전 시위, 그리고 반핵 운동과 관련해 전면에서 발언하던 사카모토의 활동을 시작으로 그의 일상을 기록한 것이다. 투병과 회복기를 거치며 앨범 ‘에이싱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흥미로운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다른 한 편은 ‘에이싱크’ 앨범의 발매를 기념해 2017년 4월 뉴욕 맨해튼의 파크 애비뉴 아모리(Park Avenue Armory)에서 열린 공연 실황을 기록한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async)’다. 이 콘서트는 2017년 4월 25?26일 양일간 각각 100명의 관객만을 초대한 특별한 공연이었는데, 당시 사카모토를 동행 취재하던 시블 감독이 이 공연의 영상을 기록한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난 7월에 열린 ‘2018 KT&G 상상마당 음악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상영되면서 국내에 정식 소개되었다. 두 영화 모두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특별 상영 등을 통해 국내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세상의 ‘소리’를 ‘가장 잘’ 들려주는 실험
2018년 사카모토 류이치 관련 이벤트가 풍년을 이루고 있다. 그것의 견인차 역할은 앞서 언급한 전시회 ‘Ryuichi Sakamoto: Life, Life’가 하고 있다. 지난 5월 26일부터 남산 기슭 남창동의 전시 공간 피크닉piknic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를 앞두고 준비 기간이던 5월 중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내한, 서울에 머물면서 전시 주최 측이 마련한 아티스트 토크와 미니 연주회, 영화 ‘코다’의 마스터클래스, 각종 매체의 취재 등으로 오랜만에 한국 팬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이 전시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한 번 더 앨범 ‘에이싱크’로 돌아가야겠다. 앨범 발매 직후인 2017년 4월 4일부터 두 달간 도쿄의 와타리움(Watari-um) 미술관에서는 ‘사카모토 류이치 설치음악전 에이싱크(async)’가 개최되었다. ‘양질의 환경에서 음악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목적을 둔 이 작업은, 앨범 ‘에이싱크’가 특히 ‘영상 환기력이 강한 음향 작품’이라는 점에 착안해, 5.1 서라운드 채널로 재구성된 ‘에이싱크’를, 사카모토 류이치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독일의 스피커 회사 무지크엘렉트로닉 가이타인의 스피커로 재생하는 것이었다. 이 작업은 1999년 오페라 ‘라이프(Life)’ 이후 오랫동안 그와 협업을 이어온 다카타니 시로가 맡았다. ‘에이싱크’의 수록곡을 사용해 태국의 감독 아피찻뽕 위라세타쿤이 새로 제작한 영상 작품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2인조 아트 유니트 ‘작쿠바란Zakkubalan’이 뉴욕의 스튜디오와 개인 작업실의 이미지 및 사운드를 소재로 제작한 설치 작품, 이렇게 세 작품이 와타리움 설치음악전의 주된 내용이었다. 이번 서울 전시는 ‘에이싱크’ 관련 세 작품 전부와 사카모토×다카타니 ‘워터 스테이트(water state) 1’과 ‘라이프-플루이드, 인비저블, 인오더블(LIFE-fluid, invisible, inaudible…)', 그리고 젊은 사카모토가 출연한 백남준의 ‘올 스타 비디오(All Star Video)’(1984) 등 그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는 각종 자료를 배치해, 그의 음악적 면모를 종합적으로 조명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음악적 시도야말로 그의 음악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이번 전시회와 영화들은, 그 다양한 시도의 일부를 살펴보면서 지금 그가 안고 있는 음악적 고민과,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소리에 대해 생각해볼 흔치 않은 기회다. 예전과는 달라진 현재의 음악 제작 및 유통 환경에서 팬에게 작품을 전하는 방식 또한 다양해지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5월 25일에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에서 일본어 통역을 맡아 대화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아티스트 본인이 들려준 작품 소개의 말을 옮기면서 글을 맺고 싶다.


“‘에이싱크’라는 앨범은 애초에 음악을 만들면서 공간적인 개념에서 출발한 작업입니다. 어떤 상태와 공간에서 어떤 음악이 들리는지 생각하고 만든 앨범이기 때문에, 현재 전시에서 보실 수 있는 ‘에이싱크-서라운드(async-surround)’의 공간에서 들으시는 소리가, 본래 제가 의도한 ‘에이싱크’의 소리에 더 가깝습니다. CD나 인터넷에서 음악을 들을 때는 2채널의 스피커를 거쳐서 3차원의 공간을 납작하게 만들어서 듣는 것이지만, ‘에이싱크-서라운드’의 경우 5채널의 스피커에 영상까지 함께 나오기 때문에, 소리에서만큼은 본래의 의도에 더 가깝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발걸음 소리가 날 때 사람이 실제로 옆에서 걸어준다든지, 악기 소리가 날 때는 누가 옆에서 쳐주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해주는 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상태입니다만, 그러려면 제가 10월까지 계속 연주하고 있어야 해서…(웃음)”*

 

박창학 음악 프로듀서·작사가·번역가. 지은 책으로는 ‘라틴소울’, 옮긴 책으로는 ‘영화의 맨살’ ‘나쓰메 소세키론’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등이 있다.
그림 김성경 일러스트레이터

*출처 블로그 ‘Ryuichi Sakamoto Social Project, Korea’(goo.gl/bqP1Pq)

 

사이트 지도

사이트 지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