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네비게이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빠른예매 바로가기 사이트 지도 바로가기
월간미르 상세

2018년 08월호 Vol.343

대박과 쪽박, 텅텅박과 독박

리뷰┃국립창극단 흥보씨

새로운 장소에서 변화된 이야기를 풀어낸, ‘꾼’들의 만남. 우주적 기운으로 들썩이던 그 현장을 돌아보다.
2018년 7월 13~22일 | 명동예술극장

 


국립창극단 창극 ‘흥보씨’가 다시 무대에 올랐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로 포복절도의 웃음과 통쾌함을 관객에게 안겨준 고선웅 연출가의 두 번째 창극이다. 국립창극단은 아힘 프라이어 연출의 ‘수궁가’(2012),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2014), 이소영 연출의 ‘적벽가’(2015), 고선웅 연출의 ‘흥보씨’(2017), 손진책 연출의 ‘심청가’(2018)까지 현재 기록으로 전하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현대 창극으로 올렸다. 2012년 김성녀 예술감독 취임 이후 창극이 대중에게 부쩍 가깝고 새롭게 다가가고 있다. 고선웅 연출은 ‘푸르른 날에’(2011),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2014),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 ‘홍도’(2015)에 이어 현재 절정의 감각을 보여주고 있다. 국립창극단이 새롭게 시작하는 신창극시리즈의 첫 번째, ‘소녀가’를 연출한 이자람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김성녀 예술감독이 자부하는 ‘꾼들의 만남’이다.

 

대박과 쪽박, 흥보는 기가 막히고 놀보는 놀라 자빠진다
대박과 쪽박, 대박 난 집과 쪽박 찬 집. 지금도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우스갯소리다. “대박 나세요!” 창업하는 사람에게, 공연을 새로 올리거나 영화를 개봉하는 사람들에게도 곧잘 하는 말이다. 흥보와 놀보의 대박과 쪽박은 현대판 로또에 가깝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극히 현실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절실하기 때문이다.


“마담 옹”, 옹녀의 파격에 이어 “미스터 흥보”, 고선웅 연출의 흥보 이야기도 파격의 연속이다. 초연 당시 “너무 바뀐 창극 ‘흥보씨’, 흥보가 기가 막혀”(‘노컷뉴스’ 2017년 4월 9일 자)라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너무 과감하게 각색해서 원작의 흥보가 기가 막힐 정도라는 것이다. 고선웅의 ‘흥보씨’에는 외계인이 등장한다. 외계인은 마치 갓처럼 UFO 비행선을 머리에 썼다. 찔레가시꽃밭에서 주워온 흥보는 인생이 내내 가시밭길이더니 놀보 대신 매품 팔기 위해 십자가 모양 곤장을 짊어지며 “골로 가는 언덕을 넘겠구나” 너스레를 떤다. 굶기를 밥 먹듯 하다가 명상을 통해 “비워야 하리 텅텅텅, 그때서야 울리리 텅텅텅”을 읊조리는 ‘텅텅교’를 창시한 사이비 교주와 같은 흥보는 십자가를 지고 골로 언덕을 넘는 모습을 시니컬하게 보여준다. 그야말로 “흥보가 기가 막히고” “놀랄 놀자” 놀람의 연속이다.


무대는 비어 있다. 병풍처럼 쪽이 나뉜 배경 막에는 ‘일월오봉도’ 그림을 배경으로 박씨 물고 오는 제비도 보여주고, 외계인이 타고 오는 UFO 비행선 그림도 영상으로 보여준다. 민화처럼 색채를 단순화한 영상 병풍이다. ‘일월오봉도’에 해와 달이 내려와서 UFO 음악에 맞춰 흔들흔들 춤을 추기도 한다. 소품은 모두 부채로 대체했다. 부채를 활짝 펴서 등장인물을 소개하기도 하고, 농사를 지을 때는 쟁기가 되었다가, 흥보네 식구들이 놀보 집에서 쫓겨날 땐 이고지고 떠나는 짐이 되기도 한다. 가장 해학적인 장면인 줄줄이 딸린 흥보네 가족들 이야기는 장면이 끝날 때까지 모두 건들건들 춤을 추고 있어 흡사 꼭두각시놀음의 인형들처럼 보인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변강쇠 점 찍고 옹녀’ ‘흥보씨’에 이르기까지 고선웅의 동양 고전 연출 방법론은 더더욱 확실하고 과감해지고 있다. 고전 판소리의 민중 해학이 현대 대중문화의 B급 상상력과 만나 전 우주를 ‘들었다 놨다’ 하는 우주적 기운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텅텅박과 독박, 언재무궁이나 더질더질
그런데 초연의 아쉬움이 컸던 것일까. 고선웅 연출은 이번 재공연에서 2부 몇몇 장면을 대폭 수정했다. 고을 원님 동헌 장면에서 흥보와 놀보의 목에 칼을 들이밀던 무시무시한 망나니는 사라졌다. 놀보가 욕심부리며 혼자 다 먹은 박(죽)은 독이 든 ‘독박’이고, 석 달 열흘 동안 설사만 하다가 드디어 “비우니까 속이 편쿠나”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되어 형제와 화해하는 결말로 바뀌었다. 초연하던 지난해 4월은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선고되고 깊은 바닷속에서 세월호가 올라오던 때였다. ‘흥보씨’의 “우주의 기운”, 고을 원님 동헌 장면에 나란히 형틀 의자에 앉은 흥보와 놀보에게 원님이 내뱉던 일성 “너희 둘은 국정을 농단한 대역죄를 지었다”는 실시간으로 관객과 공감을 나누는 화력이 센 말들이었다. 흥보와 놀보의 출생의 비밀과 “통일 대박”을 외치다 쪽박 차고 감옥에 들어간 누군가의 상황도 그저 평범한 대박과 쪽박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착하게 살면 누구 말마따나 우주도 감복한다”는 결말의 말은 단지 평범한 해피엔딩이 아니라 강력한 풍자 효과를 가지는 패러디였다.


이번 공연에서 2부가 대폭 수정됐다. 고선웅은 작가로서 고민이 많았나 보다. 흥보를 때리던 “곤장도 너무 많이 때렸다” 반성하고, 놀보를 혼내는 “독박도 슬쩍 넣고” “좀 더 설득력 있게 상황을 순화”(프로그램북 연출의 글에서)시켰다고 설명이 구구절절하다. 결말은 순화되었다. 결론적으로 흥보에게는 ‘텅텅박’이 남고, 놀보에게는 ‘독박’만 남았다. 대박 신화도 없고, 쪽박 경고도 없다. 한 시대의 초상으로 남았을 뻔했던 흥보의 촌철살인 비수 하나를 잃는 순간이다. 대박과 쪽박 세상사에 대한 B급 상상력의 호쾌한 질타는 사라지고, 흥보와 놀보 개인의 수련과 종교적 판타지로 끝낸 텅텅 빈 결말만 남아 아쉽다. “언재무궁이나 더질더질”이다.

 

김옥란 연극평론가이자 드라마투르그. 연극을 만들고, 비평하고, 연구하고, 멋진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한국현대연극사 기술을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 중이다.

사이트 지도

사이트 지도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