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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호 Vol.337

가장 예술적인 상생

세계무대 | 공연예술과 박물관·미술관의 협업



‘미술관 속 클래식’이나 박물관에서 열리는 공연이 낯설지 않다. 첼리스트 피터르 비스펠베이는 2006년 태평로 로댕 갤러리 내 ‘지옥의 문’ 청동상 앞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했고,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특별 공연이 서울역사박물관 로비나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곧잘 열리곤 했다. 구(舊) 서울역 대합실을 개조한 문화역서울284에선 비상업적 전시와 공연이 함께 열린다.

이러한 행사의 프리뷰를 보면 “박물관도 구경하고 음악회도 관람하면 아이들에게 1석 2조의 선물”이라는 보도가 실재하고, 참가하는 대중의 인식도 그렇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동안 이뤄진 공연예술·전시의 협업 추이를 보면, 결국 연속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예술과 전시의 조합을 통해 공연장과 박물관·미술관이 각각 취할 핵심 이익이 무엇인지부터 치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공연장 입장에서 전시 시설과 관람객을 바라보는 시각은 양가적이다. 기본적으로 국립극장·예술의전당·세종문화회관은 각각 자체적으로 전시 시설(공연예술박물관, 한가람미술관·한가람디자인미술관·서울서예박물관, 세종미술관)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공연과 전시를 조합하는 강렬한 기획은 전례가 없다. 롯데문화재단도 롯데콘서트홀과 함께 현대미술관 성격의 롯데뮤지엄을 운영하지만 양 기관의 기획은 독립적으로 진행된다. 서울시립교향악단과 예술의전당이 고(故) 김주호·모철민 대표 시절 주로 고궁과 박물관을 찾는 해외 관광객을 상대로 한 마케팅에 관심을 보였지만, 긍정적인 결과는 없었다.

전시 기관 입장에서 공연예술은 주로 ‘교육’의 일환이다. 박물관 부속 공간에는 보통 ‘활동(activity)’이 가능한 다목적홀이 있고, 관련 이벤트가 수반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 덕수궁관에서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회를 여는 동시에, 1월 6일 서울관에서 연계 프로그램으로 복합예술극 ‘청춘의 십자로’를 상연했다. 행사의 취지는 ‘일반인 및 관련 전문가를 위한 교육’이다. 1990년대 초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의 야외음악당 공연을 추진하면서 서울의 클래식 음악 관객을 미술관에 유치하려던 마케팅과 대비된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아트센터는 지난해 12월 공간 내 1층 전시실과 TV 정원에서 화음쳄버오케스트라와 함께 ‘백남준 아트센터 미술관 음악회’를 선보였다. “백남준을 미술가로 보는 시각을 넘어 작품 속에 감춰진 백남준의 음악을 찾아보는 의도”(음악평론가 송주호)로 기획됐지만, 서울시향 ‘아르스 노바’에서 보이는 마케팅 기술을 관찰하긴 어려웠다. 전시에 방점을 둔 기관의 속성상 부수적인 활동은 소수의 관람객을 피험자로 놓고 체험을 권유하는 ‘교육’에 초점을 맞춘다.

2018년 우리의 실정에서 백화점 문화센터의 클래식 음악 강좌, 콘서트와 박물관·갤러리의 연계 공연은 어떤 질적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전시와 공연예술은 멀리 떨어진 연인처럼 서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2010년대 후반 파리와 런던은 도시 문화와 여건에 맞는 해결안을 도출했다.


클래식 음악 시장의 신진 주자

공연과 전시의 고정적 카테고리를 선도적으로 무력화한 곳은 파리 퐁피두 센터다. 이곳은 1977년 개관 이래 현대미술관과 도서관, 음악을 비롯한 공연예술을 포괄하는 복합 문화예술 공간을 표방하고 있다. 개관식 당시 주요 인사들은 일정한 관람 순서가 없는 동선 배치에 당황했지만, 이러한 관점은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관행을 거스르는 행동과 사고를 장려하고 있다.

퐁피두 센터를 미래 예술의 아지트로 만들려는 선구적 노력은 피에르 불레즈(1925~2016)의 음악·음향연구소 이르캄(IRCAM)에서 촉발됐다. 그는 ‘대중의 클래식화’나 교육을 통한 계몽이 아니라, 과학자들과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진행하면서 공간에 참여하는 다방면의 미술가·작가들이 자극받길 원했다. 연주자가 퐁피두 센터에 오르는 것이 절대적 권위가 돼서는 안 되며, 아름다운 예술을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불레즈 사후에도 공유한다.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진행된 퐁피두 센터의 공연 프로그램에도 68혁명의 자유정신이 살아 숨 쉰다. 예술가의 영감 습득 과정을 토론과 공연으로 펼친 ‘코스모폴리스 #1-집단적 지식과 지식으로서 음악(Cosmopolis #1-Collective Intelligence/Musique Comme Savoir)’, 안무가·전자음악 작곡가 듀오인 DD. 도빌리에·세바스티앵 루의 역할 게임극 ‘다수 중 오직 하나(Only One of Many)’는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퐁피두 센터는 프로덕션 제작 과정에서 빚어질 기획자·예술가 간 위계관계나 제작자 편의의 관료주의를 지속적으로 경계하고 있다. 미술관이 교육적 관점을 강요하는 대신 “문화적 의미를 찾아가는 몫은 관객”이라는 자세를 취했음에도 연평균 800만 명 이상이 퐁피두 센터를 찾았다. 업적을 남긴 클래식 음악 연주자가 프랑스 파리에서 실험을 감행한다면 피에르 불레즈의 숨결이 남은 이곳이 공연장으로 최적이다.

클래식 음악으로 한정하자면, 프랑스 파리는 특히나 시장 진입이 어려운 곳이다. 가르니에·바스티유 극장, 오페라 코미크 모두 기본적으로 오페라극장이며 과거의 살 플레옐, 현재의 파리 필하모니 역시 관현악 공연이 주를 이룬다. 살 가보와 샹젤리제 극장을 대관하기 위해서 연주자는 우선 파리 근거 프로모터의 눈에 들어야 한다. 어지간히 입지를 다진 노장들도 이 과정에서 소외되면 파리의 클래식 음악 관객들과 멀어진다.

이 틈을 노린 것이 파리 주재 미술관의 기획자들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매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 말까지 정규 공연 시즌에 맞춰 시설 내에 위치한 오디토리움 2층에서 기획공연을 연다. 2017-2018 시즌 라인업에 포함된 면면이 화려하다. 바리톤 토머스 햄프슨·소프라노 펄리시티 롯·피아니스트 필리프 카사르·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같은 역전의 노장들이 오르세 미술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소프라노 상드린 피오·메조소프라노 스테파니 두스라크같이 독창회가 갈급한 프랑스 중견 성악가에게 이곳은 소중한 플랫폼이 된다. 파리 주재 악단의 부름을 받지 못하거나 현지 프로모터와 의견이 맞지 않은 예술가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임무도 이곳 기획자의 몫이 됐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수련’ 연작 앞에 피아노를 놓고 드뷔시·라벨 피아노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파리에 거주하면서 음반을 발매한 신인들이 이 시즌에 합류하고자 애쓴다. 루브르 박물관은 파리의 전통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한 연주자들의 실내악 공연을 포용한다. 라인업에 바이올리니스트 프랑크 페터 치머만·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처럼 이름값 높은 음악가들도 보인다.

전시 담당자가 클래식 음악 시장을 정확히 읽고, 음악을 좋아하는 관람객도 미술관을 찾게 만드는 마케팅 마인드가 이렇듯 파리에 정립됐다. 각국 대사관엔 자비 부담으로 한국 방문을 타진하는 연주자가 부지기수다. 공연 비자 없이 쇼케이스를 열고 싶은 해외 연주자의 욕구가 전시 담당자의 관심과 만난다면 국내에서도 해설 음악회를 탈피한, 한결 진전된 방식의 미술관 활동을 기대해볼 수 있다.


공연장, 전시 관람객을 끌어오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관람객을 클래식 음악 공연의 잠재 고객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움직임은 영국 런던에서도 뚜렷하다. 일찌감치 관광으로 창조산업을 추동한 영국은 매년 관광명소협회(Association of Leading Visitor Attractions)를 통해 관광 명소별 방문자 수 순위를 발표하고 전시·공연 기관은 그 결과를 마케팅에 활용한다. 2016년 집계에선 대영박물관(642만 명)을 필두로 내셔널 갤러리와 테이트 모던이 상위를 차지했고,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8위·302만 명)과 매 여름 BBC 프롬스가 열리는 로열 앨버트홀(17위·166만 명)이 20위권 안에 들었다.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고정 관객 외에 해당 통계의 상위에 오른 미술관을 무료 방문한 관람객들이 야간에 코번트 가든으로 건너와 로열 오페라나 로열 발레를 접하도록 갖은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NT Live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조 맥패든을 최고기술책임자로 영입해 360도 가상현실VR·앱 기반 서비스의 완성을 단기 목표로 설정했고, 모바일 결제의 편의성을 위한 개발을 진행했다. 모바일로 로열 오페라하우스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관련 공연과 소식이 나열되고, ‘What’s On’ 카테고리 내 ‘오늘(Today)’을 누르면 당일 진행되는 관련 행사가 나열되며, 곧바로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구현했다. 현재 가장 상단에 홍보하고 있는 행사는 지난해 9월 30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 ‘오페라-열정, 권력과 정치(Opera: Passion, Power and Politics)’다.

프랑스 금융그룹 소시에테 제네랄(Societe generale)이 후원하고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이 주최하는 전시회에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협력 단체로 이름을 올렸고, 음악감독 안토니오 파파노가 전시회 주요 섹션의 오디오 가이드 성우를 맡았다. BBC 다큐멘터리에서부터 명석한 성악 해설로 호평받은 파파노의 친근한 안내가 전시회의 품격을 높였다. 몬테베르디부터 쇼스타코비치까지 오페라 역사에 중요한 7개 작품을 베니스부터 레닌그라드까지 7개 도시를 체험하며 개괄적으로 알아가도록 한 전시다. 오페라를 다룬 기존의 해설 이벤트와 비교할 때, 형태와 내용 면에서 역대 최고의 전시회다.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행사지만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자신들의 이벤트로 제대로 포장했다.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바비컨 음악 도서관에서 열린 전시회 ‘래틀’을 사이먼 래틀이 흐뭇하게 지켜보는 사진이 영국 주요 신문에 실렸다. 전시회는 단순한 연대기의 서술이 아니라 그가 거친 여러 영국 조직에서 쌓은 추억들이 재치 있게 서술됐고, 그 유머에 빙긋 웃는 장면을 포착한 사진이었다. 전시와 공연예술이 이상적으로 만날 때 관객과 예술가, 기획자가 지을 미소도 래틀과 흡사할 것이다.

글 한정호 런던 시티대학교에서 문화정책·매니지먼트 석사학위를 받았다. 월간 ‘객석’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공연기획사 빈체로에서 홍보와 기획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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