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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2월호 Vol.337

새로운 창극 실험

SPECIAL | ‘소녀가’ 공연 미리보기



국립창극단이 동시대 관객과 소통하려는 새로운 실험을 선보인 것은 2011년 아힘 프라이어 연출 ‘수궁가’로부터였다.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를 초빙해 우리 전통인 창극을 새로운 양식으로 관객들과 만나게 했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나뉘었지만, 이전과 다른 창극이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후 스릴러 형식을 가미한 ‘장화홍련’(2012), 그리스비극에 오페라 양식을 더한 ‘메디아’(2013), 18금 코미디 요소로 풀어낸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를 선보였고, 동시대성을 덧입은 창극은 지금의 관객에게도 공감을 일으키며 인기 레퍼토리로 재탄생했다. 국립창극단의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올해부터 동시대의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신창극시리즈’를 시작한다. 그 테이프를 끊는 첫 번째 예술가는 이자람이다.

동시대의 고민을 소리에 녹여내다
이제 와서 이자람을 설명하기 위해 예솔이를 거론하는 것은 면구스럽다. 그녀는 스무 살 때 최연소로 ‘춘향가’를 완창해 기네스북에 올랐으며, 이후 브레히트의 희곡을 1인 판소리극으로 만든 ‘억척가’ ‘사천가’로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판소리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국악뮤지컬집단 타루를 만들었고, 인디밴드 ‘아마도 이자람 밴드’의 보컬로도 활동했다. 뮤지컬 ‘서편제’에서는 작창과 송화 역을 맡아 출연했으며, 최근 국립창극단 ‘흥보씨’의 작창과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이자람의 활동은 어느 한 장르나 양식으로 규정하기 어려우나 또 한편으로는 판소리와 무관한 일에 뛰어들지도 않았다. 그녀는 판소리를 그저 전통의 한 분야가 아닌 예술 양식으로 파악하고, 동시대 관객과 끊임없이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 면에서 신창극시리즈의 첫 예술가로 이자람을 소환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정이다.

이자람이 올해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를 통해 선보이는 작품은 ‘소녀가’다. 프랑스 동화 ‘빨간 망토’를 원작으로, 연출·극본·작창·작곡·음악감독까지 1인 5역을 맡아 현대적인 창극으로 각색해낸다. 그녀를 좀 더 대중적인 예술가로 부상시킨 ‘사천가’ ‘억척가’가 이미 현대적으로 각색한 판소리 양식을 띠고 있다. 브레히트의 희곡을 토대로 한 두 작품은 현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학벌주의·무한 경쟁 등을 풍자하며 동시대의 고민을 우리 소리에 녹여냈다. 이자람이 인식하는 판소리는 당대의 의식을 소리로 담아내는 양식이지만, 현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는 전통 판소리는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전해진 소리만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자람이 해온 그간의 작업은 본래 판소리가 지닌 정신을 현시대의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려는 것이다.

신창극시리즈로 선보이는 ‘소녀가’ 역시 그런 작업의 연장선에 위치한다. 각각 2007년과 2011년에 초연한 ‘사천가’와 ‘억척가’는 사회적 메시지가 강한 풍자 정신을 전면으로 피력했다. 2014년 선보인 판소리 단편선 ‘추물/살인’은 인간 내면의 상처와 풍경을 우리 소리로 담아냈다. 이자람은 주요섭의 단편 소설 ‘추물’과 ‘살인’을 토대로 삼아 태어날 때부터 흉측한 추물로 첫날밤에 소박맞은 한 여인의 이야기와, 꽃다운 나이에 창부가 되어 사랑을 모르던 여자가 우연히 한 청년을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 가련하고 상처 입은 여인의 내면 풍경을 서사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우리 소리로 다양하게 풀어내는 방식을 실험한 이 작품은 판소리에 내재한 동시대적 연극으로서의 매력을 확인해준 바 있다. 이번 ‘소녀가’에는 ‘추물/살인’과 ‘이방인의 노래’에서 호흡을 맞춘 양손프로젝트의 박지혜가 드라마투르기로 합류해 작업을 확장시킨다.


이자람이 특정한 인물이 아닌 동화 ‘빨간 망토’의 주인공을 이번 작품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전작 ‘사천가’ ‘억척가’는 자본주의 사회, 좁게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비판적인 시선을 토대로 했다. ‘추물/살인’은 창작자의 시선이 개인의 내면으로 향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외모지상주의라든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과정이 존재한다. 그러나 ‘소녀가’의 주인공은 보다 근원적인 시점, 소녀가 터부시되는 일종의 사회적 규율을 깨고 성장하게 되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원형을 건드린다. 이자람의 관심이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소녀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동화 ‘빨간 망토’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이자람은 프랑스 출판사 디디에 죄네스(Didier Jeunesse)에서 출간한 한 권의 책에서 이 작품의 구상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이 책은 샤를 페로의 원전을 장 자크 프디다(Jean-Jacques Fdida)가 새롭게 쓴 버전으로, ‘빨간 망토 혹은 양철캔을 쓴 소녀’라는 제목으로 재탄생했다.

여기서는 무시무시한 늑대도 소녀의 손안에서 놀아나는 존재일 뿐이고, 사냥꾼의 도움도 없다. 오히려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 빨간 망토가 맞닥뜨린 위험 앞에서 기지를 발휘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자람은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소녀의 성장담을 다양한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우리 소리로 풀어내려고 한다. 소리의 미세한 결들이 소녀의 모험과 만나 어떤 형태로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번 작품에는 한 사람의 배우가 무대에 올라 신시사이저·타악·베이스 등 풍성한 사운드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낸다. 2013년 국립창극단 입단 후 주요 배역을 휩쓸고 있는 이소연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뮤지컬 ‘서편제’와 ‘아리랑’에 출연하며 연기의 폭을 넓혔으며, 청순한 외모와 곱고 맑은 성음으로 창극의 새로운 매력을 전해왔다. 소녀에서 숙녀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성장하는 빨간 망토로 분해 새로운 창극 실험에 동참한다.

동화 ‘빨간 망토’ 들여다보기

동화 ‘빨간 망토’의 시작은 1697년 샤를 페로가 옛이야기를 엮어 만든 책에서 비롯한 것으로 본다. 물론 그가 동화를 정리할 당시에는 이미 유사한 원형의 이야기가 존재했다. 페로의 동화 내용은 이렇다.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아프신 할머니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빨간 망토는 숲을 지나간다. 늑대는 빨간 망토에게 숲의 아름다움을 즐기라 하고서는 먼저 할머니 댁으로 가 할머니를 잡아먹고는 빨간 망토를 기다린다. 숲에서 노느라 할머니 댁에 늦게 도착한 빨간 망토는 할머니로 변장한 늑대에게 속아 침대로 들어간다. 달라진 할머니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던 빨간 망토는 결국 늑대에게 잡아먹힌다.

이처럼 페로의 동화는 빨간 망토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페로는 책 마지막에 이 이야기의 교훈을 직접적으로 적어놓았다.

“잘 자란 어린 소녀가 길에서 늑대와 같이 수상한 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의 먹잇감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을 배울 수 있다.”

‘빨간 망토’는 사교 문화가 활발하던 시절 젊은 여성들에게 그럴듯한 말로 유혹하는 남성들을 경계하라는 목적을 띤 교훈적인 동화였다. 그러나 이 동화가 지금도 사랑받는 이유는 샤를 페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좀 더 근원적인 의미를 품은 데 있다.

심리학자인 브루노 베텔하임은 ‘빨간 망토’가 취학기 소녀가 무의식 속에서 오이디푸스적 집착에 빠져 있을 때 풀어야 할 결정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봤다. 어머니의 심부름이라는 현실 원리와 신비로운 숲에서의 놀이라는 쾌락 원리가 갈등할 때 빨간 망토는 후자를 선택한다. 쾌락 원리는 성적인 상징과 은유로 가득하다. 이는 어린 소녀가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성적 통과의례를 상징하며, 또한 브루노 베텔하임의 견해대로 아버지에 대한 오이디푸스적 집착의 고리를 끊어내는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페로의 동화는 100년이 지나 그림 형제에 의해 순화된 버전으로 새롭게 등장한다. 이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빨간 망토’ 이야기에 더 가깝다. 그림 형제는 빨간 망토를 죽음으로 남겨두지 않고 사냥꾼을 등장시켜 늑대의 배를 가르고 할머니와 빨간 망토를 구해낸다. 그러고는 배 속에 돌을 가득 담아두어 늑대가 쫓아오지 못하고 죽게 만든다. 그림 형제는 이기적이고 난폭한 본능을 가진 늑대 유형을 제거하기 위해 이타적이고 사회성이 있으며 보호자의 성향을 지닌 사냥꾼을 등장시켜 빨간 망토를 구한 것이다. 그림 형제는 유혹의 위험을 경험하게 한 후 더 성숙해진 빨간 망토를 보여준다.

‘소녀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샤를 페로의 ‘빨간 망토’와 그림 형제 버전의 ‘빨간 망토’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샤를 페로의 버전처럼 충동적인 본능과 쾌락 원리를 경험한 빨간 망토가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 형제의 이야기처럼 또 다른 아버지 유형의 사냥꾼에게 빨간 망토의 부활을 맡겨두지도 않는다.

이 작품은 장 자크 프디다가 새롭게 쓴 버전의 ‘빨간 망토’에 기초한다. 프랑스 출판사 디디에 죄네스에서 2010년 출간한 책의 제목은 ‘빨간 망토 혹은 양철캔을 쓴 소녀’. 저자는 “샤를 페로의 원전과는 거리가 멀지만 독특하고 흥미진진한 빨간 망토 이야기”라고 이야기하며, 어린 소녀에게 입혀진 ‘옷’에 집중해 새롭게 이야기를 썼다. 이 책에서 소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막아서는 일종의 사회적 금기를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글 박병성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극학을 공부, 월간 ‘더 뮤지컬’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뮤지컬 관련 플랫폼 및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1 ‘소녀가’
날짜    2018년 2월 28일~3월 4일
장소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관람료 지정석 3만 원, 자유석 2만 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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