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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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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국립극장

2026년 여름호 Vol.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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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히 맺히는 여름의 상

현장, 다가가다 | 극장과 공간

선명히 맺히는 여름의 상

* 국립극장과 그 주변, 그리고 파주 공연예술박물관 인근의 방문하면 좋을 공간을 소개합니다


짓누르듯 내리쬐는 햇빛, 들끓는 아스팔트. 올여름은 예년보다도 무덥다는 전망까지.

피서避暑를 향한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무더운 계절 속에서 몸과 마음을 쉬어 갈 수 있는 여름의 공간들을 따라가 본다. 

당신의 눈에 맺힐 여름은 어떤 모양과 질감, 혹은 색감을 띠게 될까.




무지개길과 쉼터, 조각공원까지




국립극장으로 들어서는 길이 꼭 정문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다. 동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남산 방향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정문에 이르기 전에 먼저 등장하는 지름길 ‘무지개길’이 나타난다.

초입에는 이름 그대로 무지개를 닮은 색색의 아치형 구조물이 오르막길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곡선 프레임 아래로 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자동차 소음이 등 뒤로 멀어져 갔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듯, 길을 오르는 동안 몇 사람이 교차해 오갔다. 비단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뿐 아니라, 남산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찾는 듯했다.

오르막길 끝에 다다르자, 동상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동상의 주인공은 춘강 박승희春江, 1901~1964 선생. 일제강점기에 극단 토월회土月會 조직을 주도하고, 연극 운동을 통한 민족 계몽을 실천한 그는, 한국 근대 연극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길은 곧장 무지개쉼터로 이어진다. 이곳의 중심은 단연 조각분수다. 시원하게 흩어지는 물줄기는 보는 것만으로 청량감이 전해진다. 그 너머 해오름극장의 늠름한 자태까지 마치 엽서 속 사진처럼 하나의 장면으로 다가왔다. 무지개쉼터는 공연 시작 전 잠시 머무르기에도, 남산 산책 도중 더위를 식히기에도 좋은 장소다. 머리 위를 가득 덮은 등나무 넝쿨 아래 벤치에 앉아 있으니, 한낮의 햇빛도 한결 부드럽게 걸러지고, 남산 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기역 자로 꺾어지는 넝쿨 그늘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조각공원으로 이어진다. 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조형물과 조각상들이 자리 잡고 있어 마치 작은 야외 미술관을 산책하는 기분이 든다.

무지개길에서 시작해 조각공원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뜨거운 햇빛을 피해 잠시 숨 고르기 좋은 오아시스가 돼 준다. 여름날 국립극장을 찾을 또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국립극장 무지개길~조각공원




서울특별시교육청남산도서관



 

한여름의 남산은 의외로 서늘하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도심의 열기는 한 겹 옅어진다. 그런 남산 자락에 기대어 오랜 시간을 품은 이곳. 서울특별시교육청남산도서관(이하 남산도서관)은 1922년 경성부립도서관으로 출발한 서울 최초의 공립도서관이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요로 가득한 공기의 밀도가 느껴진다. 빼곡한 서가 사이로 오래된 종이 냄새가 흘러나왔다. 이따금 정적을 깨는 책장 넘기는 소리, 신중하게 움직이는 발소리가 자장가를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남산도서관은 현재 약 50만 권의 장서와 다양한 비도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문학자료관’과 고문헌 수장고 ‘목멱관’은 남산도서관의 오랜 역사와 정체성을 보여 주는 공간이다. 한국문학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하며, 기록문화유산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남산도서관은 오래된 공간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최근 조성된 ‘디지털라운지’는 남산도서관의 또 다른 얼굴이다. 밝은 햇살이 스며드는 공간 안에는 디지털노마드존과 미디어창작실, K-컬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구역이 함께 마련되어 있다. 노트북을 펼쳐 작업하는 사람들, 자료를 열람하는 사람들, 잠시 소파에 기대어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전통적인 도서관의 정적 위에 오늘날의 라이프스타일을 포개어 놓은 듯한 풍경이다.




이곳에서 여름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장소는 ‘남산하늘뜰’이다. 남산의 녹음을 배경으로 삼은 야외 휴식 공간으로, 탁 트인 하늘과 N서울타워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앙의 테이블 위에 책을 쌓아 두고 느린 오후를 보내는 상상을 해본다. 햇볕에 얼굴이 그을리는 것마저 즐길 수 있을 만큼 머물고 싶어지는 공간이었다.

남산도서관은 여름의 하루를 천천히 식혀 주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과 책, 햇빛과 바람이 머무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계절을 보내고 있었다.




지혜의숲




낮게 흐르는 강과 갈대밭 사이로 붉은빛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십 개의 출판사와 문화공간이 모여 있는 파주 출판도시. 그 한가운데 공동 서재인 지혜의숲이 자리하고 있다. 책을 주제로 하는 복합문화공간이지만, 막상 이곳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공간 자체의 압도적인 규모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천장까지 이어진 거대한 서가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짙은 월넛빛 서가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야 비로소 한눈에 담길 정도다. 약 15만 권의 책이 사방을 메우고 있는 풍경은 ‘지혜의숲’이라는 이름을 단번에 이해하게 만든다. 이곳의 책들은 모두 학자와 연구자, 출판사와 박물관 등이 기증한 것들이다. 누군가 평생 읽고 곁에 두었던 책들이 다시 이 공간으로 모여들어 또 다른 독자를 기다리는 셈이다.




지혜의숲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1관에는 학자와 지식인, 연구소에서 기증한 책들이 자리한다. 문학과 철학, 역사와 예술 등 기증자의 연구 주제와 삶의 흔적이 서가를 따라 이어진다. 2관은 출판사들이 기증한 책들로 채워져 있다. 일반적인 도서관처럼 분야별 분류가 아니라 출판사별로 책이 정리돼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넓은 테이블과 창가 좌석이 마련돼 있어, 책 여러 권을 펼쳐 두고 천천히 읽기 좋다. 큰 창 너머로는 갈대와 샛강이 보인다. 쾌적한 실내에서 바라보는 창밖의 초록 풍경은 바깥의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한다.

세 번째 공간인 ‘문발살롱’은 조금 더 느긋한 분위기다. 라이브러리 스테이 ‘지지향’의 로비와 연결된 이곳에는 푹신한 의자와 낮은 조명이 놓여 있다. 책을 읽다 잠시 기대어 쉬거나, 창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기에도 좋다. 지혜의숲은 단순히 책을 읽는 장소라기보다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 가깝다. 누구도 오래 머무는 사람을 재촉하지 않는다.

지혜의숲이 자리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의 건축 또한 인상적이다. 붉은 강판과 노출 콘크리트, 목재가 어우러진 건물은 자연 풍경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건물 뒤편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나면, 이곳을 왜 ‘책과 건축의 융합’이라고 하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한여름 무더위는 우리를 급히 실내로 밀어 넣지만, 지혜의숲에서는 그 시간이 오히려 느긋한 쉼이 된다. 책에 둘러싸여 조용히 머물거나, 책을 펼쳐 두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는 일. 지혜의숲은 그렇게 도심의 속도에서도, 열기에서도 벗어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공간은 계절에 힘입어 선명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듣는 분수 소리, 녹음에 둘러싸여 넘기는 책장, 

서가 사이로 스미는 햇살 속을 천천히 걷던 시간은 한 편의 공연처럼 긴 여운을 남긴다.

당장의 더위를 피하러 왔을 뿐이래도 어떤가. 어떤 공간은 기대치 않은 조우로 더 아름답게 기억된다.





서울특별시교육청남산도서관

@namsan_library


주소 서울 용산구 소월로 109

운영시간 자료실 평일 09:00~20:00 | 주말 09:00~17:00  /  남산하늘뜰 매일 09:00~18:00

문의 02-754-7338

홈페이지 nslib.sen.go.kr



 

 

지혜의숲

@pajubookcity


주소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145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운영시간 매일 10:00~20:00

문의 0507-1335-0144

홈페이지 www.pajubookcity.org



 

글. 강예슬 계간 국립극장 편집부

사진. 김성재  |  자료제공. 서울특별시교육청남산도서관, 출판도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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