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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호 Vol. 427
목차 열기<하루 예술> ‘움직임·정가×전통차’
온몸에 깃든 편안한 자유
눈을 감고 정가의 음률에 온전히 몸을 맡기니, 심신을 옭아매던 일상의 사슬이 하나둘 헐거워졌다.
자유와 평안이 공존하는 시간을 만끽한 뒤 머금은 전통차와 다식은 기분 좋은 여운에 깊이감을 더했다.

“성격이 내향적이어서 ‘내가 과연 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국립극장에 왔는데요.
직접 와서 해 보니 괜한 걱정을 했다 싶을 만큼 즐겁고 행복했어요.”
전통예술과 타 장르의 이색적 조합에 다과를 곁들이는 <하루 예술>은 수강생들에게 언제나 참신한 예술 치유 경험을 선사해 왔다. 그렇기에 ‘움직임·정가×전통차’ 수업이 열리는 별별예술마루로 향하는 수강생들의 걸음걸음에는 부푼 기대감과 함께 곧 미지의 무언가와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문 앞에 짐과 신발을 내려놓은 뒤 강의실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공기가 달라졌다. 번잡한 일상의 침범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연회색 벽과 바닥이 사방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고, 까만 천장에는 조명만이 별처럼 빛났다. 이 공간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서서히 힐링이 찾아왔다. 손바닥을 촉촉하게 만들었던 긴장감이 사그라들었고, 고요가 선사하는 편안함이 오감에 깃들었다. 저절로 감긴 까만 눈꺼풀 위에 곧 펼쳐질 <하루 예술>에 대한 즐거운 상상이 영화처럼 스쳤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반가움 담긴 인사말에 눈을 뜨니 움직임을 담당할 안무가와 정가正歌를 부를 가객으로 구성된 강사진이 수강생들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이들의 안내에 따라 둥그렇게 둘러앉은 수강생들은 이어진 수업 소개에 귀 기울였다. 정가 소리와 우리 몸으로 가볍게 놀아 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수업에 임해 주면 좋겠다는 강사진의 당부에 수강생들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예술가가 직접 불러 주는 정가를 바로 옆에서 들으니 소름이 돋을 정도로 환상적이었어요.
정가와 우리나라 전통예술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죠.”
정가는 판소리, 민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 성악으로, 3장 4음보 형식의 시조시를 가사 삼아 노래하지만 음악적 구성과 연주 방식이 서로 다른 가곡歌曲과 시조時調, 형식이 정해져 있지 않은 시를 노랫말 삼아 민요적 정취를 풍기는 가사歌詞로 나뉜다.
정가의 개요를 설명한 가객은 가곡 ‘평롱’, 가사 ‘매화가’, 시조 ‘월정명’을 연이어 시연함으로써 수강생들에게 각각의 음악적 특색을 직관적으로 전달했다. 진성과 가성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가객의 청아한 목소리와 정가 특유의 섬세한 음률이 공간을 가득 메우며 감동을 선사하자, 청중의 박수가 절로 터져 나왔다.
뒤이어 가객은 정가 각 장르의 매력이 묻어나는 세 가지 소리를 들려준 뒤 수강생들과 함께 불렀는데, 정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소리 내는 포인트를 세심하게 알려 준 덕분에 모두가 단번에 선율을 따라 했다. 이 세 가지 소리를 움직임에 접목할 거라는 말에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소리를 복습했다. 이들이 이날의 <하루 예술>과 정가에 흠뻑 빠져들었음을 알 수 있었던 상징적 장면이었다.

“몸과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던 ‘현대인의 족쇄’와 함께, 노래와 움직임에 대한 고정관념이 유쾌하게 깨졌어요.
덕분에 예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한결 넓어진 것 같아요.”
본격적인 움직임에 앞서 굳어 있는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푸는 시간이 마련됐다. 자연스럽게 눈이 감기는 명상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심호흡과 스트레칭이 이어졌는데, 단순히 근육을 늘이는 동작을 넘어 내 몸의 움직임을 자각하며 서서히 가동 범위를 넓히는 과정이 진행됐다.
머리에서 시작해 어깨·팔꿈치·손끝 순으로 움직임을 확장하자, 동작에서 수강생 개개인의 개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체에 머물던 움직임은 어느새 하체로 이어졌고, 위아래를 오갔으며, 정면을 넘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쑥스러워하며 움직이기를 주저하던 수강생들도 어느새 주변의 흐름과 안무가의 격려 어린 칭찬에 몸을 맡긴 채 원하는 동작을 마음껏 그려 나갔다. 스트레칭을 마친 안무가가 “지금까지 쌓은 자유로운 움직임을 바탕 삼아 수업을 이어 나가면 된다”고 말하자 수강생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는 정가와 움직임을 결합할 차례였다. 먼저 수강생들이 움직이면 가객이 그 움직임에 맞춰 정가 소리를 내 보겠다는 강사진의 안내가 전해지자, 순간 수강생들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다들 정가 소리에 따라 몸을 움직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반대로 자신들의 몸동작에 정가 소리가 따라붙을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안무가와 가객이 시범에 나섰다. 소리가 움직임을 바지런히 따라가는 생경한 풍경을 목격한 수강생들은 용기 내어 차례로 나만의 동작을 선보였는데, 갈수록 자신감 있게 정가 소리를 이끄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반대로 정가 소리에 움직임을 얹는 시간도 마련됐다. 일전에 배운 세 가지 정가 소리가 이때 등장했으며, 수강생들은 가객의 노래에 따라 각자가 느낀 바를 움직임으로 승화시켰다. 잠들어 있던 몸과 마음의 자유가 활짝 날개를 펴자, 수강생들은 눈을 감은 채 마음껏 몸을 놀리며 이 순간을 즐겼다.

“어렸을 때처럼 별다른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고 정가를 즐기다 보니 어느새 심신에 편안한 자유로움이 찾아왔어요.
<하루 예술> 수강생들만 경험할 수 있는 일종의 ‘예술적 특권’이죠.”
잠깐의 휴식 후 다시 둘러앉은 수강생들의 귀에 다채로운 배경음악과 정가 소리가 들려왔다. 한껏 드높인 자유의지를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발현시킬 차례였다. 눈을 감고 노래를 감상하던 수강생들은 하나둘 중앙 무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대로 음악을 해석하고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가운데, 주변의 수강생들과 동작을 맞춰 움직이는 모습도 종종 포착됐다. 10여 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강생들은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심신의 자유를 만끽했다. 자연스럽게 예술적 치유가 온몸에 깃들었음은 물론이다.
자유의 공연을 마무리한 수강생들은 마지막으로 청량한 산미가 매력적인 제주 황귤차, 정가의 긴 호흡처럼 씹을수록 깊은 풍미가 퍼지는 찰보리흑마늘빵, 은은한 단맛이 돋보이는 수제 캐러멜을 즐기며 몸과 마음에 남은 감격스러운 여운을 마저 누렸다. 아울러 두 시간 가까이 함께한 다른 수강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날의 특별한 경험을 차분하게 정리했다. 강사진은 “예술은 ‘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예술을 통해 자신을 온전히 살펴보고 회복하는 시간을 늘려 나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진심 담긴 박수로 이날의 <하루 예술>을 마무리한 수강생들은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힘찬 발걸음으로 별별예술마루를 나섰다.

“3년 전 우연히 수강한 뒤로 매년 <하루 예술>을 찾고 있는데요.
이번 수업에서 정말 큰 감명을 받아서, 올해는 하반기에도 <하루 예술>과 함께할 생각이에요.”
올 상반기 ‘대금×커피’ ‘움직임·정가×전통차’ ‘타악·명상×전통차’ 등 3개 수업을 8차례 진행한 <하루 예술>은 전통예술과 예술 치유를 함께 누리고 싶어 하는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하반기에도 해금·요가·아쟁·베이스·움직임 등을 유기적으로 조합한 다채로운 수업을 10~11월에 걸쳐 8차례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