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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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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호 Vol.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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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무대, 돌아보다 | 다시보기 8

국립극장 기획 <당신 좋을 대로>

웃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정신없이 웃으며 배우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무장애’라는 구분마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결국 객석에 남은 것은 공연의 완성도와 배우들의 매력이었다.






연극 공연이 너무 많다. 신기한 일이다. OTT와 쇼트폼 동영상의 시대가 진행될수록 연극 시장도 덩달아 뜨거워지고 있다. 2026년 1분기 공연 시장 티켓 판매 현황만 봐도 연극 부문의 티켓 예매율이 전년 대비 41.5%, 티켓 판매액이 194.3%나 성장하며 전체 시장을 견인했음을 알 수 있다. 블록버스터급 규모의 해외 유명 연극이 수입되고, TV에서나 보던 유명 연예인들의 연극 출연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고전과 창작극이 양쪽 다 활발해지고, ‘바냐 대전’처럼 흥미진진한 승부가 펼쳐지기도 한다.

핫해진 연극 시장에 ‘무장애 공연’ 트렌드도 빼놓을 수 없다. 무장애 공연이란 장애인을 객석뿐 아니라 무대로 끌어들이는 공연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 차원에서 극장 문턱을 낮추는 배리어프리 개념이 공연계의 화두였다면, 어딘지 언급하기 불편했던 장애인의 삶 자체를 이야기하는 무대에 장애 당사자가 올라가 직접 배우로 활약하는 무장애 공연이 부쩍 주목받고 있다.

얼마 전 열린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도 연극상을 무장애 공연 <젤리피쉬>가 받았을 정도다. ‘국내 1호 다운증후군 배우’가 장애인 당사자의 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은 작품. 다운증후군 배우 발굴부터 민간 프로덕션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난한 개발 과정이 있었지만, 지난해 연극의 성전과도 같은 명동예술극장에 입성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제 무장애 공연이 당당히 공연계 메인스트림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만하다.


이 흐름의 중심에 국립극장이 있다. 2023년부터 <합★체> <틴에이지 딕> <맥베스> <헌치백> <공생,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의 무장애 공연을 꾸준히 제작해 오며 진화를 이끌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연극계 블루칩 신유청이 연출한 <헌치백>이 인상적이었다. ‘장애에 대한 배려’를 전시하는 1차원적 무장애 공연 연출법을 탈피해 비장애 관객도 직관적인 재미를 느낄 만한 매력적인 무대였다.

지난 5월 말 공연된 신작 <당신 좋을 대로>는 또 다른 의미에서 무장애 공연의 진일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국립극장 무장애 공연 최초로 코미디로 스펙트럼을 확장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극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를 각색한 배꼽 빠지는 코미디. 무장애 공연이 통상 장애나 장애인의 삶 자체를 화두로 올려 장애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진지한 무대이기에 과감한 도전이었다. 과거엔 장애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면서 웃음의 도구로 삼는 개그도 흔했지만,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진 시대에 장애 배우들이 연기하는 코미디가 어떤 웃음을 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통상 정신없는 소동극이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 변장했다고 바로 옆에 있는데도 전혀 못 알아보는 설정에서 웃음이 시작된다. 따지고 보면 죽은 아내가 점 하나 찍고 나타나 다른 여자라고 주장하는 막장 드라마의 기원이 셰익스피어인 것이다.

<좋으실 대로>도 형의 구박을 피해 집을 떠난 올랜도가 공작의 딸 로잘린드와 사랑에 빠지고, 이후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장을 한 로잘린드를 알아보지 못해 각종 해프닝이 벌어지는 이야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우여곡절 끝에 무려 네 커플이 합동결혼식을 올리며 사회의 질서 회복과 화해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국립극장 버전은 이 이야기를 전하는 유랑극단 콘셉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인 7명의 배우가 20여 명의 등장인물을 멀티로 소화하며 변장과 빠른 역할전환으로 웃음을 유발해야 하는 고난도 미션이라 우려도 있었다. 장애 배우와 비장애 배우의 러브라인도 수월할 것 같진 않았다. 장애 배우 최초로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한 뇌병변장애 배우 하지성이 올랜도 역을 맡고, 청각장애 부모로 인해 수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장혜진 배우가 로잘린드 역을 맡아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

이 도전은 미니멀리즘 연극으로 유명한 양손프로젝트의 연출가 박지혜에게서 시작됐다. 그는 “무장애 공연 연출을 제안받고 작품을 고민하다 사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모두가 공감하는 고전을 저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고 싶었다”라면서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나는 네가 필요해’ ‘내가 너를 도울게’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의 상태다. 장애와 비장애 배우들이 가진 고유의 리듬과 에너지가 무대에서 각자 빛나는 것을 넘어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함께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을 찾고 싶다”라고 했다.


뚜껑을 열고 보니, 무대는 그의 말 그대로였다. 20여 명의 인물로 구성된 이야기를 각자 다른 신체 특성을 가진 7명의 배우가 멀티로 풀어내고, 4명의 수어통역사까지 함께하는 무대가 얼마나 전달력이 있을지, 과연 얼마나 웃을 수 있을지 의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조화롭게 어떤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장애 배우 5명과 비장애 배우 2명이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무대를 열 때만 해도 무장애 공연 특유의 형식으로 보였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장애와 비장애의 구별을 잊게 하는 연출의 예술성과 완성도, 배우들의 연기력이 모두 놀랄 만했다.

대부분의 배우가 1인 다역을 연기한다면 일반적인 연극 무대라도 헷갈릴 법한데, 적재적소에서 역할과 배우 자신을 넘나들게 만든 깔끔한 연출과 재기발랄한 해설자의 존재가 굳건하게 무대를 지탱했다. 해설자와 터치스톤, 옛날 공작을 연기한 저신장 배우 김범진의 재발견이라 할 만하다. 또렷한 발성과 매력적인 화법으로 극의 전개를 이끌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를 보며 2022년 국립극장의 무장애 음악극 <합★체> 공연 당시 인터뷰가 떠올랐다. “멜로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사랑의 감정이 궁금하거든요. 많은 관객이 기억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네 커플 중 하나인 ‘터치스톤’이 되어 멜로 연기까지 했으니, 꿈을 확실히 이룬 셈이다.

뇌병변장애를 가진 배우가 휠체어에 앉아 로맨틱 코미디 스타일의 연기를 한다는 것이 어색하리라 짐작한 것도 편견이었다. 배우 하지성은 과연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랑스럽고 진정성 가득한 연기로 객석을 몰입시켰다. 눈빛이 조금 남다른 시각장애 배우 이성수, 팔이 짧고 손가락이 4개인 지체장애 배우 임지윤 등도 ‘무장애’ 무대에 갇힐 이유가 없어 보였다. 4인의 수어통역사까지 각자 존재감을 얻도록 역할을 부여한 연출도 섬세해 보였다.

미니멀하지만 아름다운 동화나라처럼 꾸며진 무대도 완성도가 높았다. 로잘린드를 향한 올랜도의 불타는 사랑, 그 마음속을 보여 주는 소품과 시각효과는 웃음과 재미를 보장하면서 예술적인 무대를 완성했고, 커튼콜 때 소품을 나눠 주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함으로써 이 사랑스러운 세계관으로 객석을 한층 가까이 끌어들였다.

배우들은 자신의 핸디캡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비장애 배우와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코미디는 코미디일 뿐이라는 것을. 이런 무장애 공연이라면 더 많아져도 좋겠다. 아니, 무장애 공연의 바깥에서 이 배우들을 만나는 것이 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 같다.



. 유주현 중앙SUNDAY』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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