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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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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호 Vol.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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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에서 피어난 동시대 진혼곡

무대, 돌아보다 | 다시보기 6

국립창극단 <절창Ⅵ>

진흙 속에서 피어난 동시대 진혼곡


국립창극단은 판소리의 동시대적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현대적인 무대 언어로 번안하는 작업에 매진해 왔다. 

그 중심에 ‘절창絶唱’이 있다. 최호성과 김우정이 듀오로 선 <절창 VI>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으로 ‘심청가’를 해부했다.






“아이유 재능으로 건물주의 복을 주고….” 

- ‘심청 탄생’ 중

 

심봉사가 정화수 한 그릇 떠다 놓고 딸 청이의 탄생을 빌며 늘어놓는 축원 대목이다. 중국 고서에나 등장하던 위인 열전은 사라지고, 오늘의 현상과 만났다. K-컬처 시대의 ‘예술적 재능’ ‘개천의 용’ 못잖은 성공 신화,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부동산 계급 상승까지…. 연출가의 ‘동시대적 번안’이라는 특명이 날카로운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조선 후기 황주 도화촌에서 가난하게 살던 눈먼 심 생원에게 2026년 한국 사회의 욕망 구조가 스몄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1억2,000만 원, 지금으로 치면 강남 아파트 두 채 값이다. 추상적 숫자이던 ‘공양미 300석’의 요즘식 환산에 웃음이 나는 것도 잠시다. 객석은 아버지의 비루한 욕망과 허장성세가 생때같은 딸을 사지로 몰았다는 비극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잘 안다고 믿었던 ‘심청’이 오늘의 잔혹함을 입었다. 공연은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고전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았다. 원전 안에 존재하던 모순을 오늘의 언어로 드러내니, 교과서 안에 박제된 인물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으로 되살아났다.



 창극의 구조적 한계를 깬 젊은 성음의 해방구 


‘절창’ 시리즈는 국립창극단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 프로젝트다. 창극은 집단 예술이다. 수십 명의 단원이 거대한 무대를 함께 채우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선 한 사람의 소리가 충분히 드러나기 어렵다. 비중이 작은 역할일 경우, 2시간이 넘는 공연에서 이들이 소리를 하는 분량은 고작 10분 남짓에 불과하다.

‘절창’은 소리꾼으로서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웠던 창극 무대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기획됐다. 젊은 소리꾼들은 최소 20년 넘게 걸어온 자신의 소릿길을 온전히 꺼내 놓고, 창극 안에서 미처 다 풀지 못했던 소리의 갈증을 해소하는 무대다.

이 시리즈는 단순한 갈라 콘서트가 아니다. 그간 ‘절창’은 고전 실험의 용광로 역할을 해왔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동시대 감각으로 재구성하고, 연극적 서사와 현대적 무대 미학을 결합해 새로운 판소리 문법을 만들었다. <절창 VI>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출가 남인우는 ‘심청가’를 효녀 서사가 아니라 애도와 위로의 이야기로 읽었다.



 ‘효’의 자리에 들어앉은 ‘애도’ 


“꽃들도 많고 많다. 팔월 피는 군자연, 가을마당의 홍련화, 추운 겨울 달빛 소식 전턴 한매화.”


인간의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거대한 굴레 같은 흑백의 원형 구조물이 자리한 무대. 어둠 속에서 첼로와 생황, 거문고의 선율이 서서히 번진다.
공연은 ‘화초타령’으로 문을 연다. 본래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 용궁에서 어머니 곽씨 부인을 만난 뒤, 꽃을 타고 환생한 이후의 대목이다. ‘심청가’의 서사로 치면 끝부분에 해당하는 대목을 공연의 첫 장면으로 배치했다. 후일담이 아닌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메타포로 활용한 것이다. 흐드러진 꽃들은 죽음과 환생, 좌절과 회복, 애도와 희망을 동시에 품는 이미지였다. “진흙 같은 삶 속에서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졌다가 다시 꽃을 타고 피어오른 삶에 대한 이야기”, 두 소리꾼의 선언은 다시 쓰는 ‘심청가’의 비극적 서곡이었다.
‘심청가’는 ’불편한 고전’이다. 이미 창극, 무용, 발레 등 숱한 무대 위에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났다. 뼈대만 남기고 해체되길 반복했던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게 바라보는 것은 연출가나 소리꾼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무대의 시선은 사회적 약자에게로 향했다. 연출가는 심청을 추앙받는 효녀가 아닌, 피지도 못한 채 스러져 간 존재들의 상징으로 다시 읽었다.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되는 비극의 얼굴 


두 소리꾼 최호성·김우정은 전통 판소리의 문법을 유지하면서도 120분간의 공연을 ‘스탠드업 코미디’처럼 관객과 주고받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쇼츠가 대세인 시대이니 듬성듬성 들려드리겠다”며 방대한 서사에서 여덟 대목을 뽑아냈다. 전통의 ‘소리 미학’을 유지하면서 현대적 감각으로 번안하는 작업은 ‘필수’였다.

여덟 대목 속 인물들은 철저히 ‘관계의 역학’ 안에서 파헤쳐졌다. 심청과 주변인의 인물 관계도를 다시 그리며 그들의 민낯과 사회구조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 것이다. 관객은 추임새와 농담 속에서 웃다가도, 어느 순간 웃어넘긴 구조의 잔혹함을 마주하게 된다.

무대는 ‘화초타령’으로 삶과 죽음, 환생과 애도의 이미지를 먼저 제시한 뒤, 본격적으로 ‘심청가’를 변주한다. 심청의 비극이 만들어진 근원을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곽씨 부인의 서사는 상징적이다. “조선시대 산모 사망률은 13%”라며 수치화된 곽씨의 죽음은 시대적 한계에 갇힌 여성의 운명을 드러낸다. 나이 마흔에 아이를 갖기 위해 약을 쓰고 기도를 하고, 출산 후엔 경제활동까지 책임졌던 여성. 곽씨 부인의 죽음은 개인의 비극이 아닌 돌봄과 재생산 노동에 짓눌린 여성들의 집단적 얼굴로 다시 그려졌다.

공연은 효녀 심청을 상찬하는 대신 타인의 희생을 자양분 삼아 연명하는 구조적 폭력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여성들의 돌봄 위에서 생존하는 맹인 가장의 허영과 몰염치, 종교의 탐욕과 기복신앙의 폭력(화주승), 인간 생명을 거래하는 자본의 냉혹함(남경장수)을 읽어 내자, 작품은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사회구조를 폭로하는 드라마로 확장됐다.

전통적인 심청이 순종하는 딸이었다면, 이 무대의 심청은 장승상 부인의 시혜적 도움을 거절하고 “남경장수들이 곤란해진다”며 스스로 인당수행을 선택하는 자기희생적 인물이다. 공연은 “이것을 효라고 볼 수 있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그 이면엔 누군가를 위해 자기 생을 포기하는 선택을 해야 하고, 그것을 미화하는 사회는 건강하냐는 질문이 숨어 있다. 희생을 미덕으로 강요하고, 개인의 고통을 숭고하게 포장하는 문화에 대한 완고한 비판이다.

인당수로 향하는 무대 후반부는 정서적 정점이다. 길고 긴 애도의 의식이 된 행선길 대목, 아름다움과 잔혹함의 충돌이 빚은 범피중류 대목에서 두 소리꾼은 비장미를 밀도 있게 쌓아 올린다. 심청은 그 길 위에서 먼저 죽어간 혼령들을 만난다. 연출가는 이들을 중국 고사 속 원혼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시대마다 이름 없이 죽어간 존재들의 목소리로 확장했다. ‘심청가’가 동시대의 추모극이 되는 장면이었다.






 계면조와 레퀴엠의 조우, 육화 로 완성한 진혼의 굿판 


두 소리꾼은 완전히 다른 소리의 결을 지닌 혼성 듀오였다. 쇳소리처럼 차갑고 칼칼하면서도,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우렁찬 성음의 최호성은 서사를 지탱하는 기둥 구실을 하고, 따뜻하고 싱그러운 미성의 김우정은 섬세한 감정으로 의도하지 않아도 관객을 슬픔 속으로 끌어들였다. 이 둘의 만남은 그 자체로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교차점이자, 판소리 2인창의 입체적인 질감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음악 작업도 흥미롭다. 거문고의 묵직한 타격음과 고수의 북소리라는 전통적 골조 위에 첼로의 저음이 안개처럼 스민다. 루프스테이션으로 쌓아 올린 소리의 층위는 판소리의 계면조가 지닌 한恨을 서구적 비장미인 ‘레퀴엠’의 질감으로 치환, 인당수의 파도를 전 인류적 상실의 바다로 확장한다. 연주자들은 소리꾼의 호흡을 따라 즉흥적으로 선율을 얹었다. 음악이 소리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또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느껴진 이유다.
두 소리꾼은 소리를 들려준 뒤, 주석을 달 듯 해설과 만담을 덧댄다. 공양미 300석의 가치를 현재 화폐로 환산하고, 심봉사를 ‘멘탈갑’이라 냉소하며, 심청을 문제적 인간으로 규정하는 메타적 위트는 판소리의 문턱을 낮추는 영리한 가이드다. 동시에 관객 스스로 인물의 윤리와 감정을 해석할 여백을 줄인다. 하지만 그 과잉 친절마저 <절창 VI>의 동시대적 감각 중 하나다. 설명과 해석이 끊임없이 소비되는 시대, 판소리가 더는 해설 없이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감각임을 정직하게 반영한다.
소리꾼의 몸을 빌려 고된 사연을 살아낸 120분의 여정은, 진흙 같은 현실을 견디는 우리를 위한 장엄한 진혼의 굿판이었다. 이들은 소리는 단순히 노래하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고된 사연을 제 몸으로 통과”시켜 정화하는 고통스러운 ‘육화肉化’의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판소리는 오래된 예술이다. 무대는, 그러나 오래된 것이 결코 낡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동시대 언어로 다시 사고되기를 기다리는 거대한 바다임을 증명한다. <절창 VI>는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포장하는 데에 머물지 않았다. 박제된 고전의 먼지를 털어 내고, 그 안에 존재하는 폭력과 슬픔, 계급과 희생의 구조 안에 현대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첼로의 레퀴엠과 계면조의 비애가 뒤엉키고, 아이유와 건물주가 ‘심청가’ 안으로 걸어 들어온 순간, 고전은 비로소 2026년 서울의 이야기가 됐다.



. 고승희 『헤럴드경제』 기자.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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