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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호 Vol. 427
목차 열기국립무용단 <귀향(歸鄕)>
시적 사모곡思母曲의 미학적 만개
한 예술가의 내밀한 그리움은 어떻게 시詩를 만나고,
세월을 지나 국립무용단의 공적 미학으로 승화되는가.

국립무용단 신작 <귀향(歸鄕)>이 지난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랐다. 시인 김성옥의 동명 시를 모티프로 삼은 이 작품은 인생의 끝자락에 선 어머니의 현재에서 출발해, 어머니를 떠나 일상을 살아가던 아들이 그간 묵혀 둔 회한의 시간과 마주하며 화해와 치유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1장 ‘저무는 꽃잎’을 시작으로, 아들이 내면에 간직한 기억을 그리는 2장 ‘귀향’, 과거를 회상하는 3장 ‘꿈이런가’까지, 한국춤의 호흡에 연극적 서사구조를 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특히 이번 무대는 김종덕 예술감독이 취임 후 선보이는 두 번째 안무작으로, 첫 신작 무대에 집중됐던 주목과 중압감으로부터 한발 벗어나 자신의 고유한 작가성에 몰입함으로써 그간 쌓아 온 예술적 지향점을 국립무용단의 무대 위에 집약해 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김종덕 예술감독의 삶을 보면 부모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 오랜 창작의 자양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작 중 <아낌없이 주는 나무>(2002), <꼭두의 눈물>(2008), <아빠의 청춘>(2009)으로 이어진 부모님에 대한 흠모의 연대기는 이번 무대를 통해 비로소 거대한 보편성을 획득한다. 또한 <면죄부>(1997)부터 <그리움의 가속도>(2002), <흔들림의 미학>(2015)까지 시인 김성옥의 문학적 서사를 한국춤의 호흡으로 녹여 온 그의 오랜 시무용詩舞踊 작업 역시 이번 신작에서 한층 완숙한 형태의 결합을 이뤄 냈다.
<귀향>의 무대는 미장센을 통해 서사를 입체적으로 시각화했다. 상부 3면을 채운 스크린과 그 아래로 펼쳐지는 춤의 공간은 균형감을 주는 분할이다. 이 구조 안에서 영상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서사의 상징이자 무대의 중요한 볼거리로 작동했다.
1장은 고요한 대나무 숲 영상과 함께한 장중한 군무로 시작해, 한삼으로 동선을 확장하며 무대를 장식했다. 2장에 접어들면 어머니를 두고 떠나온 아들에게 이내 차가운 흑백의 세상이 펼쳐진다. 검은 슈트를 입은 군상 사이에서 고달픈 세월을 견디며 홀로 고뇌하는 아들의 대조적인 움직임은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감각적으로 전했다. 이때 한국 전통 타악의 묵직한 타격음과 서양악기의 애잔한 선율이 정교하게 어우러진 음악은 무대의 정서를 밀도 있게 지탱하며 강렬하고 비장한 인상을 더했다. 특히 무대 바닥 둘레를 선명하게 긋는 빨갛고 가는 조명 선은, 안무가가 자신의 낙관落款처럼 오랫동안 사용해 온 고유한 무대미술 기법의 일환으로 등장했다.

<귀향>의 완성에는 무용수들의 표현력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노모를 연기한 장현수 단원은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헛헛한 마음을 몸짓으로 쏟아 내는데, 이 장면은 흡사 영화 <마더>의 엔딩 크레디트 속 김혜자의 춤을 연상시켰다. 슬픔의 밑바닥에서 피어나는 역설적 흥, 그리고 이미 지나가 버린 덧없는 청춘의 정서가 한 몸 안에서 부딪혔다. 부조화스러운 감정이 공존하는 이 모순적인 춤은 푸른 바다 영상을 배경으로 삼아 장현수 단원의 연륜에 힘입어 무대 전체를 가득 채우는 압도적인 장면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 젊은 날의 어머니 역을 맡은 장윤나는 어느새 성숙해진 주역으로서의 무게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특유의 깔끔한 춤 선을 각인시켰다. 아들 역의 이석준 역시 깊이 있는 배역 해석을 보여 주었다. 어머니와 마주할 때 담담했던 연기에서 뒤돌아 슬픔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표현까지 무심한 아들의 내적 갈등을 적절히 구현했다. 그의 굵직한 춤집은 과묵한 아들의 모습이 되어 먹먹한 잔상을 남겼다. 이 주역들을 뒷받침하는 국립무용단의 안정적인 군무 역시 돋보였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대나무 숲과 같은 자연이 되었다가 도시의 차가운 군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기억의 아지랑이자 이 세상 모든 어미와 자식을 대변하는 존재로서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하며 작품을 완성했다.
3장 ‘꿈이런가’로 나아가면 역동적인 대형 군무가 휘몰아치며 춤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제의적 인상마저 풍기는 이 대규모 군무는 처음의 대나무 숲 영상으로 회귀하지만, 초반 무대와 달리 냉혹했던 숲에 따스한 색이 입혀지고 꽃잎이 돋아나는 시각적 변이를 보여 주었다. 뒤이어 눈 내리는 숲은 켜켜이 쌓인 세월의 깊이를 상징했다. 눈을 맞이하는 장윤나의 머리 위로 하얀 세월이 내려앉고, 마침내 두 손을 모은 채 먼 하늘을 바라보는 노모 장현수의 깊은 기도로 <귀향>의 서사는 마침표를 찍었다. 관객에게 커튼콜 인사를 건넨 후, 다시 자연스럽게 군무를 이어 가며 여운을 확장한 연출은 김종덕 예술감독이 시도한 새로운 무대 변화로 다가왔다.

이번 신작 <귀향>의 무대는 분명한 성취와 함께 국립무용단이 나아갈 또 다른 방향성을 동시에 시사한다. 우선 보편적인 소재와 익숙한 미적 상징, 그리고 안정적인 한국춤의 문법을 선택함으로써 관객이 쉽게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숲, 눈, 빛, 꽃잎, 기억의 프레임 같은 시각적 장치와 한국춤의 절제된 호흡이 조화를 이루며, 서정적 정서를 시적인 온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관객은 난해한 해석으로 인한 피로감 없이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며 작품이 건네는 따스한 위로와 정서적 충만함을 즉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보편적 소재와 아름다운 춤, 그리고 세련된 연출로 감상을 편안하게 하고 공감을 직관적으로 이끌어 냈다는 측면에서 이는 분명 가치 있는 성취다.
그러나 한국춤의 미학적 지평을 넓혀야 하는 국립무용단 고유의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본다면 안정성에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춤의 동시대적 창작’이라는 국립무용단의 미션 측면에서 과감한 시도나 실험 의도가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움직임 어휘, 주제의 해석, 미장센의 전복 등에서 전통의 구조를 새롭게 하기보다, 그동안 확보된 한국춤의 미학을 정직하게 담아냈다. 내일을 향한 선도적 시도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소극적으로 느껴졌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감독에게 작가적 고유성이 존재하고, 그것을 임기 동안 국립무용단을 통해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은 소중한 결실이다. 이로써 국립무용단은 또 하나의 작품색을 흡수하며 한층 더 진화하게 되었다. 김종덕 예술감독은 한국춤이 가진 고유의 서정적 호흡 위에 극무용의 표현력과 추상적 현대춤의 세련된 요소를 결합해 냈다. 관객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기보다 따뜻한 정서로 감싸안는 선택을 한 <귀향>은, 동시대적 창작의 혁신성이라는 과제를 남겼을지언정 대중적 정서와 미학적 안정감 사이의 긴밀한 균형을 증명해 낸 유의미한 궤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