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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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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호 Vol.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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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도, 수식도 없는 모두의 무대를 향해

무대, 돌아보다 | 다시보기 3

국립극장 기획 <2026 함께, 봄>

설명도, 수식도 없는 모두의 무대를 향해


이번 공연을 통해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솔리스트 그리고 단원으로서 국립극장 무대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값진 수확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그리는 이상을 기대하게 하는 <함께, 봄>이다.






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함께, 봄>과 맺은 소중한 인연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2024년 4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금난새 지휘자와 함께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는 영광을 누렸다. 첫 전 악장 협연이라, 설렘과 긴장을 안고 오랫동안 준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26년, 다시 국립극장 무대에 섰다. 이번에는 솔리스트가 아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국립극장의 철저한 준비 절차는 이번에도 변함없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무대 리허설에서는 음악적 완성도를 넘어 무대 위에서의 안전은 물론 세부적인 환경까지 꼼꼼히 살피는 주최 측의 세심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2년 전 협연 때도 세 차례 리허설을 통해 무대 울림과 오케스트라와의 밸런스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기에 실전에서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었는데, 그 체계가 여전히 잘 지켜지고 있어 반가웠다.
본공연에서는 사회자가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해 무대 상황과 세부 내용을 그림 그리듯 상세히 설명해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더 많은 시각장애인 친구들에게 미리 알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였다.




<2024 함께, 봄>



 주장하는 음악, 함께하는 음악 


이번 공연을 통해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솔리스트로 섰던 이전 협연은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무대를 오롯이 내 것으로 쓸 수 있었고, 그만큼 음악적 표현도 자유로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케스트라 서곡 외 다섯 곡의 반주를 맡으면서, 작품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를 깊이 느꼈다.
솔리스트로서 연주는 자신의 해석을 온전히 펼쳐내는 일이라면, 앙상블의 일원이 되는 것은 전체의 거대한 사운드 속에서 내 악기가 기여해야 할 정확한 위치와 균형을 찾아가는 작업이었다. 이는 솔리스트의 프레이징과 호흡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더욱 섬세한 귀와 유연한 감각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앙상블 안에서 자기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조율하는 연주자로서의 자세를 새삼 되돌아보게 되었다. 솔리스트가 무대 위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날 수 있도록 견고하고 깊이 있는 음악적 캔버스가 되어 주는 것, 그리고 수십 명의 단원과 호흡을 맞추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경험은 독주와는 또 다른 차원의 음악적 희열이었다.
평소 TV에서만 보던 훌륭한 연주자들과 같은 무대에서 이런 방식으로 소통하게 된 경험 자체도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이번 공연에서 느낀 또 다른 기쁨이었다. 주장하는 음악과 함께하는 음악이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 두 가지를 국립극장에서 모두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값진 수확이었다. 






 이름에서 보는 두 가지 다른 의미 


이렇게 감사함을 이야기하면서도, 한 가지 솔직한 마음을 꺼내 놓지 않을 수 없겠다. 장애 예술인 당사자로서 오랫동안 품어 온 생각이기에 조심스럽지만 이 지면을 빌려 전하고 싶다.
이번에 참여한 공연 <2026 함께, 봄>은 그 이름부터 참 아름답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Spring과 다양한 계층의 경계를 허물고 함께 본다See는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기획자의 고심과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이름이다.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로서는 이것이 또 다른 장벽을 상징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배리어프리’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배리어프리 특별 회차’ 등의 사용은 보통의 것과 구분 짓는 효과를 지니기도 한다. 영화관에서 화면 해설로 영화를 보는 것이 이제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일상이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배리어프리 운동의 의미를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이후 국제사회에서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싸워 온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렇게 내가 국립극장 무대에 서고, 관객으로서도 공연장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유엔에서 장애인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고, 미국장애인법ADA이 만들어지고,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가 명시되기까지, 그 과정 하나하나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문화생활에서 배제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서 공연장의 편의 제공이 의무가 된 것은 분명 큰 진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이런 바람을 가진다. 이제는 ‘배리어프리’라는 이름표를 붙일 때만 접근성이 보장되는 상태를 넘어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배리어프리가 걸어온 길, 그 너머를 향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은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내한 독주회 포스터에는 ‘Itzhak Perlman 독주회’라고만 적혀 있다. 장애를 암시하는 수식어는 찾아볼 수 없다. 관객들은 그 앞에서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하다’가 아니라, ‘이 시대 최고의 연주자’이기에 감동받는다. 그것이 예술가를 대우하는 진정한 자세가 아닐까.
그런데 최근에는 그 말 속에 숨은 또 다른 층위도 같이 떠오르고 있다. ‘최고의 연주자’ ‘실력 있는 연주자’라는 말에서, 그 ‘최고’와 ‘실력’이란 기준 자체가 비장애인 등 사회적 주류의 몸과 환경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담론이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말하는 완벽한 자세, 완벽한 소리, 완벽한 무대매너는 아직까지 어떤 특정한 몸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 기준을 나 혹은 우리가 기어이 맞추는 순간, 사람들은 박수를 쳐 준다.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것이 의도치 않게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될 수도 있다. 결국 그 기준에 맞출 수 없는 수많은 몸과 감각은 바깥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를 염두에 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실력이란 말을 더 폭넓게 쓸 순 없을까?’ 시각장애 연주자로서 내가 쌓아 온 청각적 집중이나, 동료와 호흡을 통해 만들어 내는 독특한 앙상블의 감각도 하나의 영역이고,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들어 내는 새로운 리듬과 균형도, 기존 기준에는 없던 또 다른 탁월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함께, 봄>은 새로운 앙상블이자 또 다른 탁월함을 선보이는 장이 되고 있다. 결국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은 “우리도 비장애인만큼 잘한다”라는 증명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의 방식으로도 예술은 깊어질 수 있다”는 자리까지 함께 가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능력주의적 기준이 조금씩 헐거워지고, 더 많은 몸과 감각이 예술의 한가운데 설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더 넓어질 예술의 지평을 꿈꾸며 


이런 날을 꿈꾼다. 국립극장의 시즌 프로그램에 <함께, 봄> 대신 그저 ‘낭만에 대하여’ 같은 보편적인 제목이 걸리고, 그 안에 한빛예술단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는 모습. 포스터 어딘가에 “모든 회차에 화면 해설과 수어 통역이 제공됩니다”라고 굳이 적지 않아도, 누구나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날. 그리고 무대에 선 나에게 때로는 환호가, 때로는 냉정한 비판이 돌아오는 날.
국립극장 기획 <2026 함께, 봄> 무대에 한빛예술단의 단원으로 동료들과 함께 설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선물이었다. 2년만에 돌아와 다시 무대에서 인사했을 때, 여전히 나를 기억해 주신 분들이 있다는 사실도 큰 힘이 되었다. 또 다른 무대에서 뵐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언젠가 ‘시각장애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 대신 그저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으로 소개될 날을 꿈꾸며.



. 김지선 한빛예술단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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