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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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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여름호 Vol.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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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국악의 얼굴, 생동의 순간을 만나다

무대, 돌아보다 | 다시보기 2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III <2025 상주 작곡가: 손다혜·홍민웅>

변화하는 국악의 얼굴, 생동의 순간을 만나다


두 작곡가가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완성한 신작들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국악의 현재를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오늘날 클래식 음악에서 불변의 상수로 꼽히는 고전 작품은 대부분 1710년에서 1930년쯤 사이에 쓰였다.” 미국 지휘자이자 예일대 교수 출신의 음악 교육자·저술가인 존 마우체리는 저서 『전쟁과 음악』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20세기 초 이후 새로운 곡이 꾸준히 발표되었음에도, 클래식 연주회장에선 낭만파 시대 이전의 유명한 레퍼토리만 반복되고 있다.

국악계는 좀 다르다. 종주국으로서의 책임, 혹은 생존 본능은 국악계에 끊임없는 진화를 요구하고 있다. 1960년대 국악 분야에 서양식 오케스트라같이 음역별 악기 편성, 지휘자 등을 갖춘 관현악단이 생긴 게 대표적인 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상주 작곡가 손다혜·홍민웅을 임명하고 직접 새로운 레퍼토리 확장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둘은 서양음악 단체까지 통틀어 국내에 몇 없는 상주 작곡가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지난 2016~2018년 국악관현악 분야 최초로 상주 작곡가 제도를 운영했고, 지난해엔 창단 30주년을 맞아 이 제도를 다시 부활, 두 사람을 선발했다.


지난 3월 20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손다혜·홍민웅은 1년간 꾸준히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소통하며 쓴 신작 ‘대적’ ‘귀로’를 발표했다. 작품에 대해 “주제와 형식부터 기보법, 악기 배치, 연주법 등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논의를 거쳐 완성한 곡”이라 소개했다.

이날 연주는 약 2시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무대에 오른 4곡 모두 한국 설화 등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라 극적인 흐름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두 작곡가 모두 음악이 클라이맥스에 달했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특히 관·타악기를 적재적소에 사용해 서사적 연출을 극대화해 긴장과 해소가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탁월한 완급 조절을 보여 주었다.






가장 먼저 연주된 곡은 손다혜의 ‘흐르는 바다처럼’. 부산 청사포의 ‘망부송’ 전설을 음악으로 펼친 곡이다. 망부송은 남편을 기다리며 바다만 바라보던 아내의 간절함이 깃든 소나무다. 곡은 강렬한 타악기의 ‘외침’ 직후 이어지는 해금의 애절한 선율로 문을 연다. 남편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이 해금과 가야금 등 현악기로 표현됐다면, 남편을 데려간 야속한 바다의 거친 물결은 다양한 타악기와 불규칙한 장단의 혼합으로 나타났다. 곡 절정에서는 꽹과리, 장구 등 타악기 주자 5명과 관현악단이 총주에 나서는데, 작곡가가 차용했다고 밝힌 동해안 별신굿의 즉흥적·원시적 사운드가 잘 발현된 부분이었다.


두 번째 곡은 홍민웅이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 ‘쇄루우’였다. 쇄루우는 ‘눈물 흘리는 비’라는 뜻인데, 또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견우-직녀가 이별하는 순간의 감정을 표현한 단어다. 곡의 제목에서 드러난 물의 심상은 가야금 소리로 끊임없이 표현됐다.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종소리 등 각종 타악기와 특수 주법을 사용해 음향적 입체감을 더한 것도 특징적이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는 서양음악에서 자주 쓰이는 반음계적 화성 전개로 긴 음악극의 대미를 장식했다.


두 작곡가의 기존 작품이 연주된 1부와 달리 2부에서는 상주 작곡가로 선정된 후 둘의 음악적 역량이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는 신작들이 발표됐다. 두 작품 모두 20분 내외의 대작이었다.

이번엔 홍민웅의 ‘귀로’가 먼저 연주됐다. ‘귀로’는 홍민웅 특유의 대중적 감각과 다양한 악기, 다양한 화성을 사용한 극적 다채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곡이었다. 바리데기의 삶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바리데기는 버려진 아기를 뜻하는 말이다. 전설에 따르면, 불라국의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난 바리데기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지지만, 훗날 아버지 오구대왕을 살릴 수 있는 불사약을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향한다. 이후 바리데기는 저승을 지배하는 신이 된다.

홍민웅은 바리데기의 테마를 여러 번 변주, 반복하면서도 앞서 전작에서 등장한 반음계적 화성 흐름은 좀 더 과감하게 등장시켜 극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생황 등 전작에서 눈에 띄지 않던 특이한 음색의 관악기들도 다양하게 활용했다. 모든 원망을 씻어 내고 새로운 질서 속으로 귀환하는 영웅 바리데기의 모습을 묘사하는 마지막 부분은 홍민웅의 특기인 클라이맥스 표현이 극대화되며 관객의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또 다른 손다혜의 신작 ‘대적’은 조선왕조 궁궐의 다양한 면모를 조망한 작품이다. 조선 전기 권력의 중심이었던 경복궁, 조선 후기의 창덕궁, 격변하던 시기의 덕수궁 등 3개의 다른 궁궐 이미지를 모티프로 삼았다. 손다혜의 전작 ‘하나의 노래, 애국가’와 비슷한 구성이다. ‘하나의…’는 1902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세 가지 애국가를 재구성해 한민족의 역사를 음악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역사·사회·서사의 층위를 깊게 파고들어 음악을 하나의 드라마처럼 세우는”(송현민 음악평론가) 손다혜의 감각이 또 한 번 발현됐다.

‘대적’은 직전에 연주된 ‘흐르는 바다처럼’에 비해 화성적 측면에서 복잡성을 띤 게 특징적이었다. 특히 1악장 ‘개벽’에서는 불협화음의 긴장과 해소가 반복되며 악기나 화성의 흐름이 점층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음악적 흐름이, ‘크게 쌓아 간다’는 뜻의 작품 전체 제목과 잘 맞아떨어졌다. 2악장 ‘후원의 바람’에서는 장조도 단조도 아닌 묘한 음계를 활용했는데, 이것이 국악기의 신비로운 음색과 잘 어우러져 후원의 정취, 봄바람의 물결 등 신비로움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근대와 전통이 공존하며 격변하는 시기의 긴장감과 충돌을 나타낸 3악장 ‘격동’은 우드블록, 래칫Ratchet, 탬버린 등 다양한 서양 타악기가 쓰였다. 다채로운 음악 요소가 스토리텔링과 융화된 수작이었다.


작곡가들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런 결과물을 발표할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작곡가 개인의 역량이 바탕이 됐겠지만,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레퍼토리 확장을 위해 상주 작곡가들과 노력한 점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날 단원들이 보여 준 훌륭한 연주 기량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신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노련한 완급 조절과 표현력을 보여 줬다. 작곡가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작곡가들의 눈에 띄는 성장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조화가 돋보인 무대였다.



. 최민지 『중앙일보』 기자. 음악과 공연 예술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을 취재하는 문화부에 소속돼 있다. 부산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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