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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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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호 Vol.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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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김우정

맺다 / 예술가의 초상
국립창극단 김

그의 성격, 태도를 모두 수집한다고 김우정이 되는 게 아니다.

그만큼 그는 무궁무진하다.






우정은 창극 배우의 정반합을 보여 준다. 정반합은 헤겔의 변증법辨證法을 도식화한 논리다. 변증법은 모순 또는 대립을 근본원리로, 사물의 운동을 설명한다. 역사는 기존 질서의 모순을 지적하고 반대하면서 발전해 나가는데, 이를 헤겔식으로 정의한 것이 정반합이다. 기존의 구도를 정이라고 할 때 시간이 흐른 뒤 이것과 상반되는 반이 만들어진다. 이 정과 반이 갈등을 겪으면서 합으로 초월한다는 논지다.


김우정은 소리꾼으로서의 자질과 스타성을 아우르며 정명제, 반명제 등 선배들의 장점을 골고루 흡수해 종합명제에 다다른 배우다. 미학, 정서적 측면 등 창극 배우로서 갖춘 요소들의 우열 관계가 균형을 이루며 차세대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


국립창극단 입단 전인 2020년 객원 단원으로서 창극 <춘향>의 타이틀롤을 맡았던 일은 그의 예술 인생에 전환점이 됐다. 오디션장에 들어올 때부터 ‘21세기 춘향’이라는 감탄을 얻은 그는 실제 무대에서도 기대에 부응했다. 그런데 이듬해 국립창극단에 다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단원으로 발탁된 뒤엔 이전에 갖고 있던 패기가 싹 사라졌다. 2022년 <춘향> 타이틀롤을 다시 연기했는데, 2년 전 맡았을 당시의 설렘과 즐거움, 자신감은 증발해 버리고 막막함이 밀려왔다. 처음 춘향을 연기했을 때처럼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던지고, 즐길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표가 계속 생겨났다.

“확실히 해내야 된다는 부담감이 커서인지 몰라도 몸에 힘이 되게 많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르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객원 단원일 때는 아무것도 몰라 과감했는데, 창극단에 들어온 뒤엔 무대가 무서워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이후 김우정 대 김우정의 싸움이 시작됐다. 호흡을 비롯해 기본적인 것부터 다지기 시작했다. 자만했다고 반성하며 정신력도 다졌다. 게임 캐릭터가 레벨업을 하듯 차근차근 창극 배우로서 김우정의 능력치도 올라갔다. 그는 창극단에 들어와서 무엇보다 노련해졌다. 처음 춘향에 풍덩 빠졌을 때처럼 연기하면, 몸과 마음이 망가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예술가 김우정, 인간 김우정을 분리하는 ‘객관화’를 하게 된 이유다. 그제야 프로 김우정이 무대 위에 섰다.

“무대에 올라가면 캐릭터에 몰입하고 극이 끝나면 원래 제 모습대로 돌아와야 하는데 이전엔 그게 잘 안 됐어요. 매 순간 긴장하느라 피곤한 삶을 살았어요. 몸의 힘을 뺀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완급 조절이 가능해졌다고 느낀 건, 지난해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서 타이틀롤을 연기했을 때다. 지난한 세상에 초연한 이 캐릭터의 완숙함을 김우정이 제대로 입었다는 평이 나왔을 만큼, 그의 연기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든 작품이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에서의 명연은 힘을 뺀 결과다. 옹녀 연기에 앞서 같은 해 창극 <만신: 페이퍼 샤먼>에서 무녀 역을 맡아 모든 걸 쏟아 낸 뒤 한껏 비워 낸 상태였다. 주로 예쁜 역할만 맡던 그가 무대에서 재지 않고 소리 지르며 자신을 내던졌다. 폭발적 에너지를 가진 캐릭터를 맡고 난 뒤 자신 안에 있던 모든 걸 토해 낸 느낌이 들었다. 그 안에 응축돼 있던 무엇이 터진 것이다.

“‘그냥 해.’ 예전에 무엇을 할 때마다 되새기는 말이었어요. 지금은 무념무상 상태로 힘이 진짜 쫙 빠진 상태예요.”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김우정이 창극단에 관심을 갖게 만든 첫 작품이기도 하다.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에 입학한 해에 이 작품 초연을 본 것. 당시 창극계 안팎으로 센세이셔널한 열풍을 가져온 이 작품을 보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이거다’ 하는 생각과 함께 국립창극단 입단을 가슴에 품었고, 본인은 마침내 옹녀가 됐다.

국립창극단에선 옹녀, 무녀 역을 비롯해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동명 웹툰이 원작인 <정년이>의 ‘권부용’도 그중 하나다. 작품의 타이틀롤인 정년이의 첫 번째 팬으로, 퀴어 캐릭터다. 내내 속앓이를 하는 역할인데, 시원시원하게 할 말을 다해야 하는 김우정과는 정반대의 인물이었지만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어 재미를 느꼈다.


김우정의 어릴 적 꿈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고 따라 하는 그를 보면서 모친은 ‘쟤 보통은 아니다’ 생각했단다. 주소연 명창이 “얘는 소리를 시켜야 한다”고 해서 소리에 입문했다. 김우정은 주 명창이 ‘심청가’ 완창 무대를 창극으로 선보인 공연에서 아낙 역할을 맡아 행복을 느꼈다. 당시가 열한 살 무렵이었는데, 그때 맛본 희열을 여전히 잊지 못하다가 같은 희열을 느낀 순간이 처음 ‘춘향’을 맡았을 때였다.

무대에서 훨훨 더 날고 싶은 그였지만 환경이 마음과 같을 수 있으랴. 중고등학교 시절 답답함을 느끼다 대학에 입학한 뒤 바라던 커리큘럼을 만나게 됐고, 각각의 학생들을 존중해 주는 문화에 힘입어 다양한 경험을 시도했다. 퓨전국악 앙상블 밴드 ‘조선블루스’ 프런트 퍼슨을 맡게 된 이유다. 2017년 대한민국 대학국악제에서 동상을 받으며 데뷔해 ‘작야’ 같은 히트곡을 낸 이 팀은 젊은 세대의 공감을 샀다. 김우정과 그의 친구인 작곡가가 나눈 사담에서 출발한 곡들은 지금 청년들의 또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들의 노래 영상이 온라인에 널리 퍼졌다. 덕분에 김우정은 2019년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너목보)> 시즌6에 ‘국악 심청이’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김우정이 계획한 게 아니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다 보니 술술 풀렸다. 그렇다고 김우정에게 간절함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국립창극단 입단은 절박함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다른 걸 도전하면 내가 이만큼의 에너지를 쏟아 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어요. ‘소리꾼이 되고 싶다’ ‘창극단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했죠.”


김우정은 천성이 밝고 잘 웃으며 털털하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오해를 종종 받는다. 모진 일을 겪지 않고 온실 속 화초로만 자랐을 것 같다는 편견이다. 하지만 스타성을 갖춘 새로운 유형의 전천후 창극 배우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 땀, 눈물을 흘렸을지는 그가 무대에서 보여 준 것들로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후 자신을 증명해야 했던 순간들도 녹록하지 않았다. 그 힘겨운 과정을 거친 뒤엔 이곳이 자신을 가감 없이 녹여낼 수 있는 울타리가 됐다. 김우정은 자신이 복어&에우리디케를 연기하기도 했던 고선웅 연출의 창극 <귀토>의 한 대목을 인용하며, 단체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삶의 터전에서 바람을 피할 것이 아니라, 바람 속에서 흔들리며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내 터전이 제일이야.”


터전은 왜 우리에게 보금자리가 필요한지 알려 주기 위해 그곳에 있다. 쉽게 해석되지 않는 얼굴을 품고 있는 캐릭터로, 인생을 스치는 표정들을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하게 보여 주는 김우정은 긍정 속에서도 예술 앞에 겸손할 줄 안다. 그의 성격, 태도를 모두 수집한다고 김우정이 되는 게 아니다. 그만큼 그는 무궁무진하다. 터전에 박힌 뿌리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서다. 신진 창극 스타의 진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글.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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