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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호 Vol. 418
목차 열기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 30주년 기념 관현악시리즈Ⅲ <베스트 컬렉션>
음악으로 풀어낸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역사적 행보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생활 속에 함께하는 국악, 세계 음악과 나란히 할 수 있는 국악’을
기치로 내세우며 창단한 세월이 어느새 30년이 되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 “나이 서른에 자립했다三十而立”라고 썼다. 학문의 세계가 확고해져 스스로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삼십이란 나이가 그런 것이다. 이립而立을 넘어 불혹不惑을 향한 노정에 들어서는 2025년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창단 30주년 기념 관현악시리즈III <베스트 컬렉션>은 그 30년 세월의 역사적 행보를 어떻게 한눈에 펼쳐낼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뚜렷하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Edward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번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과거에 연주한 곡들을 그저 나열하는 무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곡들이 ‘지금 여기’의 우리와 어떻게 새롭게 조우할 것인지, 그리고 미래에 펼쳐질 국악관현악과 어떤 방식으로 만날 것인지 탐색하는, 과거와 현재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대화로서 펼쳐진 것이라 생각한다. 국립국악관현악단 30년 세월을 보여 주는 음악 무대는 어떻게 펼쳐졌나.
무언가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
1995년 창단 이래 현재까지 30여 년 동안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이 땅에 ‘국악관현악’을 어떻게 단단하게 뿌리내리도록 할 것인지 고민해 왔다. 그 흔적은 역대 단장과 예술감독들이 그간 펼친 무대에서 여실히 보인다. 이번 무대에서는 초대 단장 박범훈, 2대 단장 한상일, 3대 예술감독 최상화, 4대 예술감독 황병기, 5대 예술감독 원일, 6대 예술감독 임재원, 7대 예술감독 김성진, 그리고 8대 예술감독 겸 단장 채치성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개성 있는 기획으로 도출해 낸 여러 성과 가운데 몇 곡을 선정하고, 2025년의 새로운 초연곡(원일 작곡 ‘흥’ 길군악) 하나를 더하였다. 한상일·김재영(1999년 상임지휘자)·박범훈 3인이 지휘도 나눠 맡았다. 이번 무대에서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연주된 곡들의 면면을 보자.
1부의 첫 곡은 1996년 국립국악관현악단 제3회 정기연주회 <봄노래 잔치>에 초연된 박범훈의 곡 ‘춘무春舞’이다. 이 곡은 10년 전인 2015년 창단 20주년 기념 <베스트 컬렉션> 무대에도 오른 바 있다. 당시 단원들이 선정한 최고의 다섯 곡 중 하나로,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창단한 박범훈이 봄이 오는 길목을 진진하게 그린 작품이다. 풀피리 소리가 들리는 등 봄의 다양한 느낌을 전해 주어 객석에 마치 선물처럼 다가간 곡이다. 새봄맞이에 적합한 따사로운 곡이었다.
2대 단장 한상일이 재직 중에 기획한 <겨레의 노래뎐> 무대에 올랐던 음악인으로서, 당시 최다 출연자라는 기록을 남긴 가수 장사익이 두 번째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장사익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와 함께 그의 히트곡 ‘역’ ‘꽃구경’ ‘봄날은 간다’와 앙코르로 ‘아리랑’까지 총 네 곡을 불렀다. 오랜 기간 대중 앞에 서 온 가수이니만큼 이번 무대에서도 큰 박수로 객석의 환호를 받았다. 이번 무대가 그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여 온 ‘대중 친화’의 일환으로 기획된 무대라면, 그 기획에 걸맞은 선곡이라 할 것이다.
2부에는 김재영의 지휘로 세 곡이 무대에 올랐다. 4대 예술감독 황병기의 음악을 기리며 연주한 임준희 작곡의 ‘심향心香’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2018 마스터피스-황병기> 공연 무대에서 황병기 가야금 독주곡 ‘침향무’를 오마주해 위촉 초연했던 음악이다. 당시 작곡가 임준희는 ‘침향무’가 머금고 있는 빛깔과 섬세한 향기, 곡의 영성 등이 ‘마음의 향기心香’가 되어 퍼질 수 있도록 곡을 구사했다. 올해의 ‘심향’은 초연 때의 버전으로 연주했다는데 음향이 한결 시원하게 들렸다. 최지혜 작곡의 메나리토리에 의한 국악관현악 ‘감정의 집’은 최지혜가 2017-2018시즌 상주작곡가로 활동하던 시절 완성한 작품이다. 국악관현악이 낯선 이들도 쉽게 이해하도록 만든 곡으로, 이번 무대를 장식했다.

올해의 초연곡으로 무대에 오른 음악은 5대 예술감독으로 활동한 원일 작곡의 ‘흥’ 길군악이다. 제목 그대로 듣는 이에게 ‘흥’의 한복판을 걷게 했다. 작곡자 원일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축복하는 마음을 담아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음악적으로 표현되는 내용과 작곡가의 의도, 그리고 객석의 수용까지 이 곡만큼은 그 3자가 일체 되는, 삼위일체의 무대로서 흥과 신명을 다하는 무대가 아니었나 한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박범훈 작곡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뱃노래’는 초연 이후에도 여러 국악관현악단에 의해 연주된 인기곡으로, 이번 <베스트 컬렉션>에 선곡하기 적합한 음악이었다. 특별히 작곡가이자 초대 단장인 박범훈이 지휘봉을 잡아 마지막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옛 거장의 모습은 창단 이래 흘러온 세월의 무게를 더해 객석에 특별한 흥을 선물했다. 특히 이 곡을 연주할 때는 1995년 창단 이후 2024년까지, 국립국악관현악단을 거쳐 간 여러 연주자가 한 무대에 올랐다. 권용미·이용구·문형희·박영기·이용탁·오세진·이석주·차영수·김성미·김영길·정화영·김규형·박천지 등 역대 단원을 거친 이들은 현 단원들의 환영 속에 무대에 올라 훈훈한 시간을 마련했다.
원일 작곡의 초연곡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러 차례 연주된 곡들로 이번 무대가 꾸며졌다. 초연 당시의 음악과 2025년 사이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특별히 <베스트 컬렉션>에서 다시 무대에 오른 곡이 음악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 이번 무대에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시원해진 음향과 세련된 연주를 보여 주고자 한 것이라면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오래되어 아름다운 나무
사실 한 무대에 30년 역사의 행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번 무대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선보인 〈베스트 컬렉션〉이 지닌 의미는 곱씹어볼 만하다. 문학작품에서 ‘베스트셀러’가 가장 우수한 작품과 동의어는 아니듯이 <베스트 컬렉션>은 무엇을 ‘베스트’라 상정한 것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베스트’라는 이름에 가려져 ‘베스트가 아닌’ 곡으로 숨겨진 여러 곡, 영원히 빛을 못 보게 될지 모를 소외된 곡이 만들어지는 자리가 아닌지 함께 고민해 볼 일이다.
이번 연주 무대에 오른 54명의 단원 가운데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한 1995년에 입단한 단원 18명이 포함되어 있다. 창단 멤버로 여전히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이들은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함께 30년 세월을 지내 왔다. 늘 그 자리에서 세월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 온 오래된 나무처럼 굳건한 이들로, 악장 오경자를 포함해 거문고 연주자 손성용·이현경, 가야금 연주자 김미경·송희선·최용희·임현·서희선·한향희, 대금 연주자 이재원, 해금 연주자 서은희·김영미·안수련·장재경·노연화, 아쟁 연주자 허유성·정재은·박기영 등이다. 이번 무대는 이들이 현역으로 참여하는 마지막 기념 공연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이들 18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2024년에 입단한 4인(박병재·오경준·김다인·최휘선)을 비롯한 여타 단원들이 앞으로 다가올 30년을 단단하게 지켜 낼 순간을 함께하며 장자의 ‘오래되어 아름다운 나무’와도 같은 이들의 모습을 기억하고자 한다.
음악학자. 사람과 학문의 건강한 소통을 모색한다. 국악방송에서 <송지원의 국악산책>을 진행하며 음악의 인문학적 지평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왕실의 음악문화』 『정조의 음악정책』 『한국음악의 거장들』 『조선의 오케스트라 우주의 선율을 연주하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