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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호 Vol. 418
목차 열기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이소연의 ‘적벽가’ 박봉술제
이야기꾼의 숙련된 솜씨
계절의 여왕 5월, <완창판소리>의 주인공은 국립창극단 창악부 부수석이자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 이수자 이소연이다.

스무 살에 확립한 정체성
이제 마흔의 문턱을 넘은 젊은 소리꾼이지만 소리를 해 온 시간은 어느덧 30년이 다 되었다. 이소연이 판소리를 접한 것은 11세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송순섭 명창을 만나면서다. 진도 출신의 아버지는 유난히 국악을 좋아하셨고, 판소리를 취미로 배울 만큼 열성적이었다. 어릴 적부터 노래도 잘하고 유난히 활달한 작은딸이 소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딸에게 판소리를 권했고, 그런 부친의 영향으로 이소연은 시쳇말로 뭣도 모르고 소리를 시작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녀는 관성적으로, 때론 진학을 위한 의무감으로 소리를 했지만, 이것이 운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학창 시절을 보낸 1990년대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 것으로서 국악을 알아야 한다는 당위는 있었지만,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국악을 즐기는 수요가 그리 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소연은 학창 시절 판소리는 고루하다고 여기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판소리하는 자신이 멋있다고 생각하진 못했다고 한다. 판소리의 매력에 눈뜨고 소리꾼으로 승부를 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다. 전남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연극에 빠져 지내던 때가 있었는데, 연기를 하면서 불현듯 그간 해 온 판소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땐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던 판소리 사설이 그 나름의 운율과 말맛이 살아 있는 재미있는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고, 판소리가 한 편의 연극으로 다가왔다. 그간 스승님이 어째서 어떤 대목에서 눈물을 훔치며 가르치셨는지, 왜 판소리는 인간사 희로애락은 물론 세상의 모든 만물을 표현하기에 ‘소리’라고 강조하셨는지 이해되었다. 판소리를 다시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학 3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숙선과 정회석 선생을 만나 음악으로서, 극으로서 판소리의 매력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연기 잘하는 소리꾼
이소연은 판소리 창자로도 훌륭한 기량을 가지고 있지만, 일반 대중에겐 창극 배우로 더 유명하다. 특히 <춘향 2010>(2010), <변강쇠 점 찍고 옹녀>(2014)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명실상부 창극인으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춘향과 옹녀는 고전 서사에서 열녀와 음녀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캐릭터다. 그러나 그녀가 참여한 작품에서 이 두 여성은 자신만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하는 당돌한 인물로 재탄생했다. 카리스마 있으면서도 당찬 이소연의 이미지는 이 캐릭터들을 소화하기에 충분했고, 그간 쌓아 온 연극적 감각과 소리 실력이 작품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이소연의 소리는 맑으면서도 높은 음역대를 특징으로 한다. 그녀가 뮤지컬 <아리랑> <서편제> 등에 참여해 좋은 성과를 낸 것도 타고난 음성과 잘 훈련된 연기가 한몫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소연은 자신의 길은 언제나 판소리,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된 창극이라고 말한다. 20대 초 잠시 연극 배우를 꿈꾸기도 했지만, 그녀는 ‘소리를 할 줄 아는 연극인’이 아닌 ‘연기를 잘하는 소리꾼’이 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그 뿌리가 되는 전통 판소리와 창극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말한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도 결국 그 뿌리가 단단해야 가능하고, 새로움은 언제나 그 바탕이 되는 무언가로부터 비롯되는 것 같다고. 그녀에게 전통 판소리와 창극은 그녀의 정체성을 담는 예술이자 새로운 도전을 위한 용기의 원천이기도 했다. 이소연은 판소리와 창극의 차이를 구현하는 캐릭터로 설명한다. 판소리는 다양한 인물의 옷을 입고 제각각 표현하는 매력이 있고, 창극은 하나의 인물에 집중해 그 인물의 감정을 오롯이 드러내는 매력이 있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도화지 같은 소리꾼, 무엇이든 잘 입혀질 수 있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고 한다. 단단한 소리를 바탕으로 하되, 이야기꾼으로 판소리의 서사를 재밌게, 실감 나게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능숙한 이야기꾼의 소리
이소연에게 이번 국립극장 무대는 생애 첫 완창 공연이다. 이소연은 송순섭 명창에게 스무 살 때부터 ‘적벽가’를 학습했고, 그간 ‘적벽가’의 중반부에 해당하는 ‘군사 설움’부터 ‘새타령’까지를 여러 차례 발표하기도 했다. 송순섭의 소리는 송흥록 명창의 음악을 표준으로 삼아 송광록-송우룡-박만순-송만갑-박봉술로 이어져 온 정통 동편제 소리다. 송순섭은 박봉술의 오랜 제자로 2002년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가 된 이후 많은 제자에게 ‘적벽가’는 물론 ‘흥보가’ ‘수궁가’를 전수하고 있다. 이소연 역시 소리를 시작한 이래로 송순섭 명창에게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를 차례로 학습했다. 동편제 ‘적벽가’는 호방하게 내지르는 통성, 사설과 장단이 잘 맞아떨어지는 대마디 대장단을 특색으로 한다. 무엇보다 오로지 남성 주인공만이 등장해 영웅호걸의 호연지기와 전쟁의 대의명분, 그 이면의 전쟁으로 인한 병사의 슬픔 등을 다루고 있어 남자 소리꾼에게 적합한 작품이라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소연은 오히려 이런 점에서 더 도전해 보고 싶었다. 여성 소리꾼도 얼마든지 ‘적벽가’를 잘 해낼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적벽가’의 눈대목은 유비가 공명을 찾아가는 ‘삼고초려’,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군사 설움’, 공명을 쫓는 주유를 향해 조자룡이 활을 쏘는 ‘조자룡 활 쏘는 대목’, 작품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하는 ‘적벽화전赤壁火戰’ 등이 있다. 더불어 빠뜨릴 수 없는 대목으로 적벽화전에서 죽은 조조의 군사들이 원조가 되어 조조를 원망하며 우는 ‘새타령’도 꼽을 수 있다. 중모리장단으로 짜인 이 대목은 초혼조·흉년새·삐죽새·꾀꼬리·까마귀·쑥국새·호반새 등 13종의 새소리를 묘사하며 억울한 죽음에 대한 군사들의 탄식과 조조에 대한 원망을 담아낸다. 판소리가 추구하는 자연의 소리를 잘 표현하면서도 일반 민중의 목소리를 호소력 있게 다루는, 매력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소연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따라서 다소 어려운 ‘적벽가’도 숙련된 솜씨로 관객에게 잘 전달할 것이다. 이번 완창은 동편제 ‘적벽가’ 전체를 그녀만의 힘 있고 깨끗한 음색으로 감상할 좋은 기회이자, 그녀의 예술 세계 역시 한층 더 깊어지는 무대가 될 것이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5월: 이소연의 적벽가 - 박봉술제
일정 2025-05-17 | 시간 토 15:00 | 장소 하늘극장 | 관람권 전석 2만 원 | 문의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