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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호 Vol. 418
목차 열기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
삶의 정수 담긴 ‘기다림과 풍자의 미학’
도대체 ‘고도’는 누구이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무슨 의미란 말인가.

“‘부조리극이라면서 부조리하지 않다.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는 리뷰를 많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이 하시니 그렇지요.”
세 번째 시즌에 들어선 ‘신구, 박근형의 〈고도를 기다리며〉 THE FINAL’ 연습으로 한창 바쁜 4월 중순, 잠시 시간을 낸 오경택 연출가와 짧게 통화했다. 그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신드롬은 모두 신구·박근형·박정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선생님들’에게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했다.
세 번째 시즌에 다다르기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2023년 12월 첫 시즌 개막 이후 2024년 5월 두 번째 시즌까지 102회 전 회차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80대 배우들과 다양한 지역을 순회하며 기간 대비 최대 회차를 기록한, 한국 연극사를 새로 쓴 행보다. 말 그대로 <고도를 기다리며> 신드롬이다. 같은 해 가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한 극작가 데이브 핸슨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가 대학로에서 3개월 장기 공연하기에 이른다. 역시 매진 행렬을 이어 갔다. ‘선생님들’의 맏형인 90세 이순재 배우가 출연해 더욱 큰 화제를 낳았다.
2023년 12월 개막한 첫 번째 시즌은 신구·박근형·박정자가 각기 에스트라공·블라디미르·럭키로 분했다. 연기 경력 60년 이상인 세 배우의 평균연령은 80대 중반. 국내외 전례 없는 초고령 캐스팅이다. 500석 넘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인터미션 포함 러닝타임 150분으로 개막한 첫 주, 공연을 관람하며 손에 땀을 쥐었다. 임영웅 연출의 산울림 소극장 버전과 달리 달오름극장 버전은 동선이 훨씬 길다. 소극장과 중대극장의 공간 차이가 커서 ‘선생님들’의 체력 소모가 많아 보였다. 원 캐스트로 예정된 두 달 장기 공연을 무사히 잘 해내길 기도했다. 80대 중반에 들어서면 보통 사람들은 가만히 앉거나 서 있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엄청난 분량의 대사와 원작자 베케트가 지시한 상징적 액팅, 동선을 소화하고 더불어 그들만의 해석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선생님들’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적이었다. 어렵게 예약한 시즌1의 막공. 더 깊어진 해석과 더 강력해진 에너지에 혀를 내둘렀다. ‘선생님들’은 일반인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두 번째 시즌인 같은 해 5월. 전국 투어 이후 다시 서울에서 개막한 <고도를 기다리며>는 박정자 럭키 대신 조달환 럭키가 투입되었다. 저작권자인 베케트재단에서 여성 배우의 출연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원작자인 사뮈엘 베케트는 생전에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연출 가이드라인을 권고한 바 있다. 바로 남성 배우들만으로 구성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에 대한 논쟁은 매우 복잡하니 이 지면에서는 다루지 않기로 한다. 여하튼 그로 인해 젠더와 해석의 경계를 넘나든 박정자 럭키와 김리안 소년의 오묘함은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신구 에스트라공과 박근형 블라디미르, 김학철 포조에 이어 조달환 럭키와 이시목 소년이 새로 합류했다. 시즌2 역시 폭발적 인기였다. 그리고 올해 5월 세 번째 시즌에 이르게 되었다.
더해진 깊이감, 관계의 체온이 더해진 ‘함께 기다리기’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기호학적 연구도 많을 정도로 장면마다 상징적 액팅과 동선이 특징적이다. 원작자이며 연출가인 사뮈엘 베케트의 촘촘한 가이드라인의 영향이다. 1969년 한국 초연한 임영웅 연출의 수학적 디렉션이 잘 자리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확실한 시대, 실존주의와 존재론에 의지한 베케트에게 이런 장치들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냉전시대로 이어진 1950년대를 살아간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 사뮈엘 베케트가 영어가 아닌 불어로 극작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혼돈의 시대에 천착하는 것이 아닌, 낯설게 거리 두기를 하며 혼돈을 직시하고 존재에 대해 낯선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이기 때문이다. 베케트는 이 작품이 편하게, 감각적으로 수용되길 원하지 않았다. 1953년 파리 초연 당시 “고도가 누구(무엇)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대한 “고도가 누구인지 알면 내가 이 희곡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답변은 베케트의 문제의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대표적 부조리극不條理劇, Theatre of the Absurd <고도를 기다리며>는 ‘맥락에 맞지 않는’ 극이므로 기승전결이 없다. 앞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집중할수록 더 어렵다. 극이 전개될수록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게 ‘올바른 관극’ 팁이라 할 수 있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상황, 대사를 그때그때 받아들이면서 순간의 느낌과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무언가 의구심만 가득한 채 극장을 나서게 되는 게 부조리극의 매력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주위를 환기하는 열정이야말로 이 작품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배우 처지에서도 매 회차 새롭게 인식하는 작품 속 현재와 실존에 집중해야 한다. 따라서 베케트가 의도한 작품 전체를 통으로 외우고 나서야 본격적 연습이 시작된다. 배우의 통찰과 해석이 대사와 동작의 틈새에 쌓이면서 형태 없는 형태가 완성돼 간다. <고도를 기다리며> 신드롬을 견인 중인 ‘선생님들’은 연기 경력 60년이 넘은 베테랑으로서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를 처음 마주했다. 덕분에 한국 관객은 사회의 멘토이자 연기 장인들이 성찰을 거듭한 후 재해석하는, 세계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고도를 기다리며>를 직관하는 행운(럭키)을 누리고 있다.

역동의 근현대를 아우르며 서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선생님들’의 삶이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에 스며든다. 관객들은 구순이 다 되어서도 무대 위에서 복잡한 동선을 일상인 양 소화하며 현학적 대사를 그들만의 톤으로 주고받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와 보름달이 전부인 간결한 무대가 연륜과 통찰로 가득 채워지는 것을 실감한다. 선문답을 주고받으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는 ‘관계의 체온’을 나누기 때문이다. 사뮈엘 베케트가 직접 보았다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을 법한 한국적 재해석, 아니 ‘선생님들’의 통찰이다.

2025년 5월, 1년 만에 돌아온 <고도를 기다리며> 세 번째 시즌 ‘더 파이널’은 한층 더 깊어졌다. 오경택 연출가는 매일 대본의 행간을 새로이 해석하는 신구 에스트라공과 박근형 블라디미르의 에너지에 감탄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성찰을 거듭하며 통찰에 이르는 ‘선생님들’의 깊이감은 김학철 포조와 조달환 럭키, 이시목 소년에게 전이되고 있다. 세 번째 시즌인 ‘더 파이널’이 ‘절정’으로 와닿는 이유다. 본받을 만한 사회적 멘토가 매일 사라져 가는 혼돈의 시대, 절정에 이른 <고도를 기다리며>는 현재의 절망과 부끄러움은 새벽이 오기 직전 가장 어두운 시기일 뿐임을 강조한다. ‘선생님들’의 <고도를 기다리며> ‘더 파이널’은 깊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함께 찾기 위해 함께 기다리는 동행의 과정이다.
사진. ㈜파크컴퍼니
파크컴퍼니 <고도를 기다리며> THE FINAL
일정 2025-05-09 ~ 2025-05-25 | 시간 화·목·금 19:30, 수 15:00, 토·일 14:00 | 장소 달오름극장
관람권 R석 8.8만 원, S석 6.6만 원, 발코니석 4.4만 원 | 문의 02-6925-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