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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호 Vol. 418
목차 열기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좋아하게 될 국악.
<소소 음악회>가 그 첫 번째 불꽃을 피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왜 청소년 음악회인가
국악은 청소년에게 진입장벽이 높다. 대중음악은 공기처럼 청소년의 일상 곳곳에 있다. 어딜 가든, 뭘 보든, 그들의 귀와 마음에 착 붙어 있는 대중음악에 비하면, 국악은 그들의 일상과 동떨어진 이질적 존재다. 더구나 국악에 관한 일상의 기억도 그다지 친근하진 않다. 초·중·고교에 걸친 긴 학창 시절 동안 음악 시간에 배우는 국악기는 단소 정도인데, 제대로 소리 내는 게 쉽지 않은 데다, 수행평가를 목표로 어쩌다 간헐적으로 배우다 보니 즐거움보다는 어려웠던 경험으로 남는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같은 국악을 팝으로 재해석한 ‘조선팝’이나 ‘K-뮤직’을 표방한 퓨전국악이 국악을 대중화하는 대세로 각광받고 있지만, 우리 전통음악 본연의 소리와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고 듣는 경험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전통을 뿌리로 한 국악과 지금 이 순간의 정서적 공감을 좇는 대중. 이 둘의 거리감은 태생적으로 멀다. 그중에서도 청소년과는 더할 나위 없이 먼 음악일 수밖에. 서양의 클래식은 국악에 비하면 사정이 낫다. 동네 피아노 학원을 안 다녀 본 아이가 드물 정도로 한동안 피아노는 국민 악기였고, 학교마다 지역마다 오케스트라가 있어서 다양한 악기를 취미 삼아 배우고 연주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꽤 볼 수 있다. 또 부모의 취향과 취미를 자연스럽게 물려받아 어려서부터 방송이나 공연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접하다가 전문 음악가로 성장하는 경우가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불문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국악은 여전히 애호가와 전문가 중심으로 향유되고 있으며, 국악기는 박물관에 가야 만날 수 있는 특수 악기처럼 여겨지고 있다. 국내 최초 순수음악 전문 채널인 KBS 클래식FM 프로그램 편성에서도 이러한 쏠림 현상을 엿볼 수 있는데, 현재 이 채널에서 방송 중인 열세 개 음악 프로그램 중에서 국악 관련 프로그램은 두 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국악은 대중이 감상할 수 있는 경로도 매우 제한적이다.
그렇기에 현장도 고민이 깊은 듯하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이 깃든 음악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수해야 할 책임이 있는 국악계도, 음악 교과의 중요한 내용으로 잘 가르치고 소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교육계도, 어떻게 하면 국악의 저변을 넓히고 전통문화가 이어지게 할 수 있을까를 고심하며 영상물과 콘텐츠를 쏟아 낸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주 보고 들으며 익숙해지기. 그래서 아는 만큼 들리고, 들리는 만큼 좋아하게 되는 그 첫 번째 불꽃을 만드는 것 아닐까.
<소소 음악회>의 소소하지 않은 차별화
마음의 불꽃은 생생한 현장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른다. 그래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은 2021년, 소년 소녀에게 성큼 다가가기로 했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소소 음악회>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선보이는 청소년 맞춤형 콘서트로, 국악의 생활화와 세계화를 기치로 1995년에 창단된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그간 축적된 음악적 유연함과 동시대적 감각을 총동원해서 만든 웰메이드 국악 입문 공연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시작된 <소소 음악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회 공연부터 객석 점유율 97.2%에 달하는 뜨거운 호응을 받은 것은 현장의 갈증과 필요를 읽어 낸 남다른 기획력과 고민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곡과 국악기를 설명하는 지식 전달 위주의 음악회로는 교과서 밖의 청소년을 국악의 세계로 안내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소소 음악회>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음악회여야 할까.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찾은 답은 교육의 목적이 아닌 ‘공연 그 자체로 즐거운 음악회’였다. 이 음식이 얼마나 영양가가 있는지 설명하고 건강을 위해 먹어야 한다고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입 먹어 보니 맛있어서 음식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먹게 되는 그런 방식. 목적 없는 즐거운 맛을 지향하는 것이 국악 입문 맛집 <소소 음악회>의 흥행 비결이 된 것이다.
중요한 건 메뉴의 차별화였다. 우선 무대 위에 펼쳐진 70인조 국악기 오케스트라는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서양 오케스트라는 어느 정도 눈에 익숙한 청소년도 국악기로 편성된 관현악단을 직접 공연장에서 만날 기회가 흔치 않기에 그것만으로 새로운 풍경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나무·가죽·현·돌·쇠 등의 재료로 만든 각양각색 악기들이 고유의 음색과 존재감을 뽐내도록 작곡된 동시대 작곡가들의 재치 있는 관현악곡을 연주해, 자연스럽게 특정 악기에 대한 호기심과 물음표가 남게 한다.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영국 정부의 위촉으로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을 작곡해 음악이 연주될 때마다 오케스트라 악기를 배울 수 있는, 살아 있는 교과서를 후대에 남긴 것처럼 <소소 음악회>를 통해서 국악기에 입문할 수 있는 좋은 관현악곡이 탄생되고 대대손손 연주되는 클래식으로 남게 되면 좋겠다. 또한 게임 음악, K-팝 등 청소년의 플레이리스트 속 음악이 웅장한 국악관현악으로 변모하는 무대 또한 <소소 음악회>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이때 저 멀리 다른 차원에 있던 국악은 슬며시 소년 소녀가 있는 세계로 들어와 말을 건넨다. 여기에 더해 청소년의 일상과 현실을 소리꾼이 대변하는 신박한 창작곡이 연주될 때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감정이 수용되는 예술적 공감에 울고 웃는다. <소소 음악회>에서 청소년은 교육의 대상이자 주체가 된다. 스스로 경험하고 배우는 신나고 힙한 음악 시간.
다시 만날 국악
세계적 디자이너 필립 스타크는 칫솔 하나를 디자인할 때도 사람을 먼저 떠올린다고 했다. 칫솔을 사용할 사람의 일상과 사정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 디자인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청소년 음악회’에 정작 청소년을 고려하지 않은 음악회가 많다. <소소 음악회>는 어리고小少, 대수롭지 않은小小 것 같지만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환한炤炤 시절을 맞아 부산하고 시끄럽게騷騷 성장통을 치르기도 하는 보통의 ‘소소’한 소년 소녀들에게 보내는 친절한 초대장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국악을 기대하며.
음악학을 공부했고, KBS 클래식FM <KBS음악실> <생생클래식> 작가로 집필하면서 동시대 음악가와 창작의 행보를 기록하고 인터뷰했다. 현재 음악교육센터 꼬마들(CoMaDL)을 운영하며 음악 칼럼니스트·교육자·기획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