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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호 Vol.369

삶은 어떻게 그녀를 망가뜨렸나

미리보기 둘 | NT Live ‘예르마’

ⓒJohan Persson

아이를 갖지 못해 절망하고, 결국 비극에 이르는 과정이 100분으로 압축됐다. 단지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그녀her들의 문제로도 읽을 수 있다

30대 초반까진 모든 게 순조로웠다. 젊은 나이에 유명 신문의 편집자가 돼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지적인 대화가 가능한 남편과 원만한 부부관계로 가정적으로도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제 막 런던 교외에 뒤뜰이 딸린 집으로 이사한 터였다. 여기에 아이만 있다면, 완벽한 영국 중산층 가족의 모습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아이를 갖자고 제안한다. NT Live ‘예르마’의 시작이다. 

억압받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NT Live ‘예르마’는 서른여덟에 요절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1934년 발표하고 초연한 동명의 비극을 원작으로 한다. 이념적으로 좌파였으며 성적으로는 동성애자였던, 무엇보다 그 어디에도 속하길 거부했던 자유주의자 로르카. 결국 그는 이 모든 이유로 인해 1936년 파시스트들에게 살해당했다. 이후 스페인의 민족시인으로 추앙받게 됐지만, 정작 그 자신은 시인보다 극작가로 불리길 원했다. 여담이나 그는 시인으로서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은 후에도 대학생들과 함께 극단 라 바라카를 창단해 전국 순회공연을 했다.
살아생전 그가 쓴 작품 중에서도 특히 ‘피의 결혼’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세 편은 로르카의 비극 3부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세 편의 공통점이 하나 더 있다. 여성을 주요 인물로 한다는 점이다. 모두 보수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존재인데, 로르카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관습적인 여성성에 대해 묻는다. 이는 그의 대부분 희곡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예르마’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예르마는 스페인어로 불모·불임·황무지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원작에서 예르마는 결혼 3년 차로 아이를 원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부부관계에 무관심한 남편 탓인데, 사실 남편은 ‘예르마(불임)’다. 결국 좌절과 분노에 휩싸인 예르마가 남편을 살해하게 된다. 이번에 상연되는 NT Live는 2018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올랐던 것으로, 예르마 배역인 빌리 파이퍼의 신경쇠약에 걸린 연기가 압권이었다. 

ⓒJohan Persson

고전의 재해석, 오늘의 이야기
NT Live의 연출을 맡은 사이먼 스톤에겐 처음부터 스페인 농촌을 재현할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그는 원작의 배경 대신 21세기 런던의 풍경을 묘사하고자 했고, 배우들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던지,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빌리 파이퍼는 연습을 시작하고서도 한참 동안 연출가가 쪽대본만 들고 나타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새롭게 각색된 작품에서 시적인 독백들은 사변적인 대화로 대체됐다. 그리고 주인공은 스페인의 시골 농가의 아낙이 아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으로 바뀌었다. 
아무 문제 없던 부부의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건 임신 때문이다. 피임하지 않으면 언제든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막연했다. 희망은 열망으로 변한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병원을 찾아다니며 임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아이를 원치 않던 언니는 임신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열망은 절망으로 변한다. 어쩌면 열망이 절망의 다른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절망적으로 열망하고, 점점 파괴돼 간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기록한다. 임신한 언니에 대한 질투와 임신에 무관심한 남편에 대한 불만을 고스란히 온라인에 전시한 것이다. 그의 글은 인기를 끌고, 그는 자극적인 글로 블로그를 채우기 시작한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대부분 자극 안에는 폭력성이 묻어 있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바뀌는 무대 디자인
연극은 관객을 공범으로 연루시킨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리지 클래천은 모니터를 통해 타인의 소셜 미디어를 보듯, 4면이 막힌 유리벽 안에 주인공들을 집어넣어 그녀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파탄 나는 모습을 관객이 바라보게 만든다. 이때 관객은 단지 바라보기만 하는 방관자가 아니다. 그녀의 욕망을 추동하고 견인하는 존재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인물의 내면을 상징하고 이를 관객과 연결하는, 무엇보다 기술적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마술 같은 무대 디자인 역시 관전 포인트다. 무대는 계절의 순환으로 그녀의 상태를 암시하는 듯하다. 연극 초반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자라는 봄, 혹은 여름의 풍경은 그녀의 절망과 함께 가을로 변한다. 점점 생명력 없이 바싹 말라가는 나무는 마치 그의 불임과 함께 그녀의 황폐한 내면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렇게 그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무대 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삶은 어떻게 나를 망가뜨렸나.” 이는 극 중에서 예르마가 언니와 대화를 나눌 때, 삶을 망치지 말라는 언니의 말에 대한 예르마의 대답이기도 하다. 기형도의 시를 빗대면 이럴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었지만 / 벗어둔 외투 곁에서 나 흐느꼈네 / 어떤 조롱도 무거운 마음 일으키지 못했네’ 연출자 사이먼 스톤은 그것이 단지 예르마만의 문제가 아닌 많은 여성의 문제라고 확장하고자 했던 듯싶다. 마지막 크레딧에 빌리 파이퍼의 이름 앞에는 ‘예르마’가 아닌 ‘그녀her’라는 배역이 쓰여 있다.

NT Live ‘예르마’
2020년 10월 16~1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전석 2만 원
02-2280-4114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월간지 ‘씬플레이빌’ 편집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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