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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호 Vol.366

실험과 도전의 시절

공연예술을 전시하다 | 명동 시대의 국악과 연극 공연



1960년대 예술계는 공연예술의 기반 구축을 위한 다양한 모색이 이뤄졌다. 전쟁 직후 어렵고 힘들었지만,  어느 때보다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다

국립극장의 서울 환도와 명동 시대 
1957년 국립극장은 대구에서 약 7년간의 피난 시절을 거치고 서울로 환도했다. 극장 설립 당시 사용했던 부민관은 이미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극장이 새롭게 자리 잡을 온전한 건물이 없자 명동에 위치한 시공관 건물을 서울시와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립극장의 명동 시대가 열렸다. 특히 1962년에는 국립창극단(당시 국립국극단)·국립무용단·국립오페라단까지 3개 단체가 새롭게 발족돼 창설 당시 전속단체였던 국립극단을 포함해 총 4개까지 전속단체가 확대됐다. 이로써 명동 국립극장 시대는 역사적인 의미를 더하게 됐다.              
공연예술박물관 상설전시실에는 명동 시절 당시 국악 공연 자료와 국립극단의 서울 환도 기념공연 등 사진 자료를 포함해 음반·공연 프로그램·극작가 하유상의 집필 노트와 같은 유물이 전시돼 있다.    


국악 진흥을 위한 새로운 시도와 완창판소리  
1962년 국립국악원에서 시작된 ‘신국악작품공모’를 통해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발표됐는데 이강덕·황병기·이성천·이상규 등에 의해 창작 국악이 활기를 띠며 전개됐다. 또 1965년에 국내 최초의 국악관현악 단체인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이 출범해 국악관현악 합주나 협주 등의 연주 형태가 생겨나 다양한 국악 공연이 열렸다.   
특히 이 시기 국악계에서 가장 주목할 사건은 고故 박동진 명창이 1968년 9월 30일 5시간 동안 판소리 ‘흥부가’로 최초의 완창 공연을 시도한 것이다. 
20세기 초 협률사와 같은 옥내 극장의 등장은 판소리 공연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실내 공연은 정해진 기간과 시간 동안 다양한 공연을 매번 새로운 관객에게 선보여야 했기 때문에 완창판소리처럼 오랜 시간 한 공연만 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짧은 시간 매번 다른 관객에게 반복적으로 소리를 들려줘야 했다. 예를 들면 ‘춘향가’의 ‘사랑가’와 같이 관객이 잘 알거나 좋아하는 부분을 한두 대목만 따로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판소리 공연 방식을 ‘토막소리’라고 불렀는데, 토막소리가 실내 공연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면서 20세기 초부터는 판소리의 대표적인 공연 방식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런데 1968년 박동진이 처음으로 완창판소리를 시도해 성공한 것이다. 이 공연은 유엔군 총사령부 방송국에서 그대로 녹음 방송했고 더 큰 화제를 낳았다. 박동진은 이어서 1969년 5월 20일 판소리 ‘춘향가’ 연창을 시도했고, 이 공연 프로그램 실물 자료가 상설전시실에 전시돼 있다. 이후 ‘심청가’ ‘변강쇠타령’ ‘적벽가’ ‘수궁가’ 등 여러 완창 기록을 세워 판소리계에 ‘완창판소리’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으며, 판소리 완창발표회라는 새로운 공연 방식을 탄생시켰다. 
명동 시대 대표적인 국악 전시 자료는 고故 황병기가 1965년 미국에서 처음 취입한 가야금곡 엘피LP음반 ‘뮤직 프롬 코리아:더 가야금MUSIC FROM KOREA Vol. 1: THE KAYAKEUM’이다. 이 음반은 상설전시실 개관 준비 당시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던 황병기가 직접 기증한 자료다. 1965년 황병기는 하와이대학교와 동서문화교류센터가 공동 주관한 ‘제9회 금세기 음악예술제’에 초청받아 본인의 창작곡 ‘숲’을 연주했다. 이 음악을 들은 주최 측이 갑자기 음반 녹음을 제안해 밤에 하와이대학교 강당에서 녹음을 하게 됐는데, 황병기가 비용을 받고 제작한 첫 국악 음반이다. 음반 녹음 당시 장구 반주자가 없어 황병기가 먼저 장구 장단을 녹음해 두고, 그 장단에 맞춰 다시 가야금을 연주해 완성했다. 1­면에는 가야금산조가, 2면에는 황병기의 창작곡인 ‘가을’ ‘석류집’ ‘숲’이 녹음돼 있다. 
이외에도 ‘제6회 중요무형문화재발표공연’ 프로그램북, 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신인 ‘국악사양성소준공기념연주회’ 프로그램북, 가야금 명인 고故 성금연의 ‘성금연 가야금 독주회’ 프로그램북 등이 함께 전시돼 있어 당시 국악 공연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연극 기반 구축을 위한 여러 활동  
국립극장은 환도 후에 국내 유일 공연 전문 극장으로서의 면모를 다지기 위해 전속단체인 국립극단을 새롭게 정비했다. 또한 창작극의 저변 확대를 위해 ‘희곡현상공모제’를 실시해 유능한 신인 극작가들을 발굴했다. 1957년 실시한 창작희곡 현상 모집에서 50여 편의 응모작 중 하유상의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와 이용찬의 ‘가족’이 가작으로 뽑혔다. 전시실에는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의 집필 노트가 전시돼 있어 작가의 생생한 필체를 볼 수 있다. 또한 1962년 국립극단은 차범석 작, 이진순 연출로 초연된 ‘산불’ 공연을 계기로 배우들에게 대사를 읽어주거나 동작을 지시하는 역할의 프롬프터prompter를 더는 두지 않았다.
이 공간에는 1957년 국립극장 환도 기념공연인 ‘신앙과 고향’ 대본과 사진 패널, 국립극단 초연 공연 ‘산불’ 대본과 사진 패널, 제1회 국립극장 희곡현상공모제 가작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 프로그램과 사진 패널, 국립극단이 국내 초연한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 사진 패널 등이 전시돼 있다. 

글 하을란 공연예술박물관 학예연구사

공연예술박물관
공연예술박물관은 약 28만 점의 공연예술 자료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공연예술 디지털아카이브 홈페이지(archive.ntok.go.kr)에서 누구나 쉽게 자료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며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면 더 많은 자료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공연예술을 전시하다’에서는 공연예술박물관 상설전시실 중 일부 공간을 골라 지면에 차례로 소개합니다. 
문의 공연예술자료실(방문 이용)
02-2280-5834
공연예술디지털아카이브(온라인 이용)
02-2280-5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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