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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7월호 Vol.366

네 개의 세계, 하나의 섬광

깊이보기 둘 | 포박사실


ⓒ김시훈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달려온 네 개의 세계가 하나의 무대에서 충돌한다. 그 순간 생성하고 소멸할 아름다운 것들은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매년 여우락은 우리에게 대담하고 호기로운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음악가들을 한 무대로 불러들일 때 발견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장면은 무엇인가. 물론 이 질문에는 다소 거칠고 선언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각각의 음악가들이 서로에게 실험을 추동하는 대상이 돼 자신의 세계를 조각내고 다른 세계를 접붙이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매혹적이다. 여우락의 모든 무대는 호명한 음악가들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전제하며, 이들 사이에서 생성될 섬광의 색과 모양을 질문함으로써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이러한 전략은 올해도 유효하다.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전방위로 활약 중인 네 명의 솔리스트 박우재·박지하·박순아·박경소가 ‘포박사실’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무대를 마련한다. 박우재는 자신의 출발지인 ‘국악’이라는 진원을 자유롭게 이탈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우회하는 음악가다. 거문고의 새로운 주법과 음향을 실험하며 타 장르 예술가들과 견고한 협업을 시도하고 있다. 박지하는 피리·생황·양금의 소리와 질감에 누구보다 깊이 천착한다. 주로 미니멀리즘의 문법에 기대어 반복적 패시지, 사운드의 점진적 변화와 소멸을 유려하게 조형하는 작업을 선보이는데, 악기에 최적화된 음정과 주법 등을 파기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순간에 돌출하는 낯선 감각이 인상적이다. 남과 북을 가로지르며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한 박순아의 음악 세계는 독보적이다. 그의 연주에서 두드러지는 생경하면서도 압도적인 테크닉은 그가 끊임없이 확장해 온 음악적 영토를 가늠하게 만든다. 박경소는 작고 소박한 일상의 감정에 밀착한 음악을 선보여 왔다. 가야금으로 표현되는 특유의 낙천성과 솔직함은 박경소의 탁월한 무기다. 
이들이 마련한 공연 ‘포박사실’은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다. ‘포박’은 ‘네 명의 박 씨(Four Park)’를 지칭하기도 하고, 문자 그대로 ‘포박捕縛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사실’은 ‘실제 혹은 현재에 있는 일’을 뜻한다. 다시 말해 ‘포박사실’은 ‘음악가 네 명에게 일어난 현재의 일’ ‘사실을 포박하다’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공연의 콘셉트는 간단하다. 음악가 네 명은 네 개로 분할된 사적인 공간에서 각자의 음악을 선보인다. 이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과 그 질문을 음악으로 구축하는 방식은 무대의 내용이 될 것이다. 마침내 주조된 네 개의 세계는 서로를 어떠한 방식으로 독려하거나 침범하며 하나가 되는가. 이 과정에서 돌출하거나 숨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박우재·박지하·박순아·박경소가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를 다져온 음악가들이라는 진술은 이제 더는 새삼스럽지 않다. 이들의 만남은 우리의 기대에 정면으로 부응하거나 예측을 명민하게 배반할 것이다. 충돌은 세계와 세계가 마찰할 때 두 세계 모두 필연적인 손실을 겪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네 명의 음악가는 교란과 협상, 끝없이 유보되는 평형상태의 가능성을 믿고 돌진하는 사람들이다. ‘포박사실’은 네 세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할 하나의 섬광이다.

성혜인 음악평론가. 전통예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다.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의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의 웹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우재X박지하X박순아X박경소
포박사실
7월 21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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