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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6월호 Vol.365

충忠을 예술로 승화하다

미리보기 둘 |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김수연의 수궁가-미산제’

국립극장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수도권 지역 공공시설 운영 중단 결정에 따라 공연을 취소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www.ntok.go.kr/Community/BoardNotice/Details?articleId=194837


수려하면서도 애원성 그득하며,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 김수연 명창. 충과 지혜를 전하는 ‘수궁가’를 그의 기품 있는 소리로 누려본다

 

판소리 ‘수궁가’는 인간 세상을 동물 세계에 비유해 왕과 신하 간의 충忠, 토끼와 자라의 지략과 지혜를 주제로 삼고 있다. 충은 역사적으로 볼 때, 임금 또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변함없이 꿋꿋이 지켜나가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논어’에서 충은 ‘믿을 신信’과 ‘용서할 서恕’ 자를 함께 들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충의 한자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을 풀이해 충에는 인간의 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성실한 마음誠心이 있고, 그것에 따라 남을 이해하는 서恕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충은 또한 사람이 국가와 민족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심誠心과 자신의 참된 마음을 다해 남을 헤아리는 충서忠恕, 그리고 믿음과 의리로써 끝까지 지조와 절개를 지키는 신의信義의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둔 우리나라는 군왕을 성심으로 받들고, 부모를 지성으로 모시는 충효를 지극히 중요시 여겼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 충성과 효도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키고 행해야 할 도리요, 모든 행위의 최고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충과 효를 판소리 예술로 승화시킨 ‘수궁가’와 ‘심청가’는 우리에게 의미가 조금 남다르다.
예컨대 ‘심청가’가 아버지와 딸의 관계 속에서 눈 어두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팔려 간 지극한 효를 판소리 예술로 표현한 효 사상의 최고봉이라면, ‘수궁가’는 용왕과 자라의 군신 관계에서 나타나는 충과 토끼와 자라의 지략을 우화적으로 표현한 판소리 예술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궁가’는 통치자와 피지배자란 설정 속에서 수궁과 육지라는 공간을 왕래하며 인간이 꿈꾸는 욕망과 이기심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외에도 ‘수궁가’의 이야기 전개는 수궁과 육지, 강자와 약자라는 대립 구조 속에서 문제 해결과 소통에 따른 해학과 풍자가 우화적이고 교훈적이란 점에서 시선을 끈다. 또한 ‘수궁가’에 약성가나 토끼화상 대목 등 여러 눈대목 중에서도 누가 뭐래도 가장 음악적으로 짜임새 있게 두드러진 부분은 두 번째 수궁 무대가 아닌가 하는데, 바로 수중 동물인 자라가 인간 세상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수궁으로 데리고 간 토끼가 용왕을 속이고 육지로 유유히 탈출하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토끼가 자라에게 속은 배신감을 도리어 덩실거리는 리듬과 밝고 화려한 경드름, 다른 말로 경조京調라는 음악 어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는 “즐거우면서도 무절제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은” 감정 표현, 곧 ‘낙이불류樂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한 우리 선조들의 삶의 정서가 그대로 묻어나는 것만 같다.
‘수궁가’를 잘 부른 명창들은 저마다 창본을 가지고 있다. ‘수궁가’ 창본으로 비교적 단단한 사설 구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선유 창본과 동편소리 박봉술 창본, 이른바 근대 5명창으로 송만갑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한 유성준 창본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임방울 창본·김연수 창본·정광수 창본·박초월 창본·박동진 창본·정권진 창본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정광수 창본은 그가 1974년 국가무형문화재 ‘수궁가’ 기예능 보유자로 재인정받으면서 오늘날 ‘수궁가’ 전승 체계를 갖추고 있는데, 이는 송흥록-송광록-송우룡-유성준으로 이어지는 동편소리 바디에 속한다. 따라서 ‘수궁가’는 전승 계보에 따라 사설 구성이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띤다. 예컨대 정광수 창본에는 신재효 개작본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나타나 폭군의 모습을 띤 호랑이가 미화됐다. 따라서 지배층에 대한 대결 의식은 희석되고 문제의식은 사라진 반면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면이 강화돼 있고, 임방울 창본은 토끼가 육지에 도착하는 것으로 작품이 종결된다. 이러한 점은 박동진 창본이 아니리가 상당히 부연돼 있다는 점에서 각각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김연수 창본은 여타 창본에 비해 사설의 확장이 두드러진데, 이는 정광수 창본의 사설을 중심으로 하면서 신재효에 의해 개작된 사설 또한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강산제에 속하는 정권진 창본은 작품의 말미에 용왕이 산신에게 이문을 보내 다시 토끼를 잡아와 토끼의 간을 먹고 병이 낫는다는 내용이 첨가돼 있다. 그러나 이외의 대목에서는 유성준제 수궁가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현존하는 ‘수궁가’는 몇 갈래로 나뉘어 창자마다 서로 다른 사설과 창법, 시김새로 음악을 전승하고 있다. 이 중에서 미산 박초월 명창의 ‘수궁가’에서는 또 다른 멋과 아름다움이 흐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성 명창으로 ‘흥부가’와 ‘수궁가’에 능했던 미산 박초월 명창 하면 흔히들 계면조의 애원성과 쉰 듯하면서도 걸걸한 수리성에, 마치 방울이 굴러가듯 둥글둥글 굴려서 소리를 내는 방울 목을 떠올린다.
판소리를 가리켜 ‘수리성의 미학’이라 하듯이, 6월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특유의 수리성과 방울 목으로 세인을 울리고 웃긴 미산 박초월 명창의 ‘수궁가’를 회상하며 감상하는 좋은 자리가 될 것 같다. “꿈을 이루는 건 언제나 땀이다”라는 말처럼, 이번에 미산 박초월제 ‘수궁가’를 들려줄 김수연 명창에게 박수를 보내며, 어렵고 힘든 세월 속에서 야심만만한 노력과 굵은 땀방울로 일궈낸 소리에서 느껴지는 설렘 또한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으로 기대한다.

 

김세종 한국음악학 박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한국음악 전공 책임교수로 있다. 현 다산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김수연의 수궁가-미산제’
2020년 6월 20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전석 2만 원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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