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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호 Vol.352

사랑과 낭만을 노래하며 풍파를 이겨낸 거리의 악사

전통 예술 기행┃멕시코의 국민 음악 마리아치

식당과 거리, 광장과 극장. 일상이 머무는 공간에 살며시 들어와 낭만을 선사하는 마리아치.

비록 이 음악이 지나온 시간은 순탄치 않았지만, 삶을 관통하는 여러 순간을 노래하고 연주하며

멕시코의 역사와 전통음악을 아름답게 지켜냈다.

 

집 떠난 지 60일 만에 도착한 멕시코의 작은 도시 과나후아토(Guanajuato)의 풍경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파스텔 색조의 벽으로 가득한 골목길은 꼬불꼬불했고, 가파른 언덕 위로 빼곡히 들어선 중세풍의 집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16세기 스페인에서 날아온 듯했다. 축제와 마리아치(Mariachi)의 연주로 유명한 과나후아토는 멕시코와 쿠바 그리고 과테말라를 오간 70일간의 여행에서 만난 곳 중 단연 최고의 도시였다. 귀국 후에 본 영화 ‘코코’에서 과나후아토와 똑같은 풍경이 나와 깜짝 놀라기도 했다. 스토리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감동적이었지만, 마치 두 번째 여행을 떠난 듯 영화 속에서 그리운 멕시코의 풍경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낭만과 흥취로 가득한 도시
과나후아토에 도착한 날 저녁 마리아치와 만났다. 은광으로 부유했던 이곳엔 도시 규모에 비해 큰 면적을 차지하는 후아레스 극장이 있다. 내부는 금으로 도배됐고, 외관은 유럽의 큰 극장과 견주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화려함을 자랑하며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극장 앞에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 있는데 창문을 활짝 열어 극장의 화려한 야경을 감상하며 식사할 수 있다. 마침 열려 있는 레스토랑의 창문 너머 한 쌍의 청춘 남녀가 식사 중이었고, 홀연히 나타난 마리아치 한 팀이 창밖에서 로맨틱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미리 계획된 연출인지 혹은 지나가던 마리아치의 즉흥 공연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코코’의 주인공 미구엘과 마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멕시코는 음악을 사랑하는 나라다. 거리 곳곳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흥이 넘친다. 특히 과나후아토 골목에선 거리의 악사 마리아치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도시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는 바로 마리아치와 함께하는 워킹 투어다. 약 1시간 동안 관객들과 거리를 걸으며 진행되는데, 과나후아토 대학교 학생들이 멕시코의 문화를 알리는 취지로 시작했다고 한다. 멋진 의상을 입은 마리아치의 워킹 투어 공연은 후아레스 극장 옆 자그마한 광장에서 출발한다. 과나후아토의 아름다운 밤 골목을 따라 이동하며 낭만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과나후아토의 명소에 관해 설명해준다.
멕시코 여행의 마지막 도시는 마리아치의 발상지 과달라하라(Guadalajara)였다. 과달라하라는 국제 마리아치 페스티벌이 열리는 도시다. 매해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전 세계 마리아치 전문가들이 모이는 예술 문화행사가 열리는데, 특히 일요일에는 축제의 백미인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데고야도 극장(Teatro Degollado)과 중앙광장에서는 수많은 마리아치 공연을 볼 수 있다. 마리아치 광장(Plaza de los Mariachis)에서는 축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다채로운 마리아치 공연을 만날 수 있다.


과달라하라에는 음악가들이 상주하는 전문 레스토랑이 있지만, 다른 도시에선 광장이나 레스토랑을 오가며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마리아치를 만날 수 있다. 광장에 앉아 누군가 그들을 고용할 때까지 기다리는 풍경도 자주 목격된다. 광장이나 식당에서 마리아치 연주를 부탁할 경우 요청하는 곡 수에 맞춰 일정 금액을 내면 되는데, 보통은 한 곡당 50~100페소(한국 돈 3천~6천 원) 정도다. 만약 생일이거나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싶다면 ‘라스 마냐니타스(Las Mananitas)’를 청하면 되고 ‘하라베 타파티오(Jarabe Tapatio)’나 ‘엘 손 데 라 네그라(El Son de la Negra)’와 같은 빠른 템포의 곡도 추천할 만하다. 로맨틱한 곡을 듣고 싶다면 ‘라 말라게냐(La Malaguena)’ ‘세레나타 우아스테카(Serenata Huasteca)’ 혹은 ‘사보르 아 미(Sabor a Mi)’도 좋다. 어느새 멕시코인들에게 일상의 한 부분이 된 마리아치는 2011년에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마리아치는 현악기와 관악기로 구성된 멕시코의 전통음악과 악단을 지칭하는 말이다. 18세기 멕시코 서부에 위치한 할리스코(Jalisco) 주 코쿨라(Cocula)에서 생겨나 멕시코 중부 지역에서 기반을 형성했고, 1910년에 일어난 멕시코 혁명과 함께 멕시코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스페인 정복자가 유입되기 전 멕시코 원주민은 관악기와 타악기 등의 악기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전통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스페인이 유럽의 현악기를 들여와 멕시코에 전파하면서 멕시코의 토속음악이 재탄생하게 됐다. 마리아치의 어원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는데 그중 프랑스어로 결혼을 뜻하는 마리아주(Mariage)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꽤 유력하다. 프랑스가 멕시코를 침략해 막시밀리아노를 황제(1864~1867)로 봉한 당시, 프랑스인들의 결혼식에서 현지 악사들을 불러서 연주하게 했는데, 이들을 마리아치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1852년 코스메 산타 아나(Cosme Santa Ana) 신부가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리아치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 알려지면서, 이 단어의 사용이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이설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어원을 찾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마리아치 음악이 멕시코 전역에 넓게 퍼져 있고, 역사의 굴곡에 따라서 삶의 애환을 같이하며 멕시코를 대표하는 음악이 됐다는 점이다.


마리아치의 음악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계승되며, 스페인어와 멕시코 서부의 여러 원주민 언어로 이뤄져 있다. 쿠바와 브라질이 백인음악과 흑인음악을 접목해 살사나 삼바 같은 생동감 넘치는 리듬을 만들었다면, 흑인음악의 영향이 비교적 적은 멕시코는 매혹적인 라틴 기타의 선율과 흥취가 어우러진 마리아치 음악을 만들어냈다. 쿠바와 브라질의 음악이 라틴의 정열을 대변한다면, 멕시코의 마리아치는 라틴의 낭만을 노래한다.

 

 

 

종교와 혁명에서 사랑과 이별의 노래로
마리아치 음악은 스페인에서 온 사제들이 가톨릭을 전파하기 위해 시작됐다. 기타·바이올린 등의 악기로 종교 음악을 연주하다 멕시코 토속 음악이 가미돼 성모를 예찬하는 노래로 완성됐다고 한다. 처음 세속적인 마리아치 음악은 하라베(Jarabe) 같은 춤과 더불어 지방 축제에서 자주 연주됐다. 그러다 왈츠와 폴카, 마주르카 등의 음악을 받아들였고 근대에 들어오면서 발라드·볼레로·란체라(Ranchera)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며 영역을 넓혔다.


전통 마리아치 앙상블은 규모가 작다. 초기의 마리아치들은 북을 치고 간단한 관악기를 불며 휘파람을 덧붙여 노래를 부르는 조촐한 연주 형태를 구성했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나서야 기타·하프·바이올린 등의 현악기 위주로 연주하게 됐다. 비우엘라(Vihuela)라고 불리는 여섯 현의 현악기와 기타론(Guitarron)이라는 기타 모양의 베이스는 마리아치 밴드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적인 악기로 자리 잡았고, 최소 두 대의 바이올린에 트럼펫이 추가되며 지금의 마리아치 밴드가 완성됐다. 오늘날 마리아치 앙상블은 20명 남짓 되는 대규모 편성도 쉽게 볼 수 있는데, 대부분의 마리아치는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도 곁들여 부른다.


 

 

마리아치는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 솜브레로(Sombrero)를 쓰고, 금·은색 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재킷과 바지를 입은 채 주로 규모 있는 행사나 야외 파티에서 흥을 돋우거나 연인을 위한 세레나데를 부르며 연주한다. 멕시코 전통 승마복이 변형된 이 의상은 허리까지 오는 재킷과 은으로 장식된 몸에 달라붙는 바지가 특징이다.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스웨이드, 자수로 장식한 바지와 함께 발목 높이의 부츠를 착용하고, 장신구로 자수 벨트와 큰 나비넥타이를 매는 등 남성다움과 우아함이 겸비된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멕시코 독립 초기 시절엔 흰색 면 셔츠와 바지를 입고, 가죽 샌들에 밀짚모자를 썼다. 1900년대 초기에 들어서 지금과 같은 의상을 입게 됐으며 이내 지방마다 독특한 형태로 발전해 각 주의 전통의상으로 정착했다.


멕시코 혁명을 거치면서 마리아치의 노래는 시대와 사회 흐름에 따라서 민감하게 변화해왔다. 많은 마리아치가 혁명군을 따라다니며 군악대 활동을 했고, 후글라르(Juglar 음유시인)가 돼 혁명 영웅들을 예찬하기도 했다. 혁명을 통해 마리아치는 멕시코 전역으로 넓게 퍼져나갔고, 멕시코의 전통음악으로 정착하게 되면서 각 지역의 토속문화와 민중의 영혼을 노래했다. 마리아치의 노래는 지역성과 국가 의식을 고양하는 노래 외에도 매혹적인 기타의 음률과 더불어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곡이 상당히 많다. 사랑·배신·정치·죽음·혁명·애국심 등 인간사와 관련한 모든 주제에 대해 노래한다. 영화와 방송 매체의 발달에 힘입어 마리아치 음악은 멕시코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정착하게 됐고, 유명한 마리아치로는 비센테 페르난데스(Vicente Fernandez)·페드로 인판테(Pedro Infante) 등이 있다.


70일간 중미 지역을 여행하며 극장에서 만난 음악을 더듬어봤다. 과달라하라의 데고야도 극장에서는 하이든과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음악을 만났고, 멕시코시티의 예술궁전에서는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오악사카(Oaxaca)와 과나후아토에서는 교향악단의 음악회를 감상했다. 멕시코 여행을 마무리하던 어느 날 멕시코까지 와서 서양음악을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현듯 세계 음악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다, 이슬람권 몇 나라를 제외하곤 서양 고전음악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청중을 매료한 뛰어난 음악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어쩌면 하나의 권력이 작용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보니,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외래 음악의 홍수 속에서도 아름답게 꽃피운 멕시코의 마리아치 음악과 멕시코 문화가 참으로 대단하고 경쟁력 있는 예술로 다가왔다.


현경채 음악인류학 박사이자 영남대학교 겸임 교수. 여행하며 현지 음악을 탐닉하는 것을 좋아하며 방학 때마다 긴 여행을 떠나고 있다. 저서로 여행 중에 만난 음악 이야기를 담은 ‘배낭 속에 담아 온 음악’ ‘매혹의 땅, 코카서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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