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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호 Vol.352

창극과 경극의 조화로운 상생

VIEW┃리뷰2 국립창극단 '패왕별희'

소리 하나로 온 세상을 표현하는 창극과 손끝 하나로 온 세상을 표현하는 경극이 만났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게 들리는 듯한 특별한 경험에 판소리의 깊은 울림은 팽창했고, 중국의 오래된 이야기는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2019년 4월 5~14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몇 년 전 운 좋게도 소리꾼 조아라의 놀라운 공연을 보는 행운을 누렸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마지막 부분을 판소리로 각색해 부르는 자리였다. 청중은 고전 그리스어 교수들과 학생들이었다. 조아라의 판소리가 보여준 보편적인 정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혀 위화감 없이 전달했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패왕별희’는 한층 더 놀라웠다. 이 작품은 그리스 서사극의 스타일을 지니고 있었지만, 나로서는 셰익스피어의 위대한 역사·신화극이 더 많이 생각났다. 예컨대 ‘리어왕’이나, 특히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뇌리를 스쳤다. 대단히 다채롭고 강렬한 작품이었으며, 이날 저녁 공연을 보며 극장에서 보낸 시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판소리를 무척 좋아하는 팬이지만, 한국어는 거의 못한다. 따라서 이 리뷰는 내가 영문 자막의 도움을 받아 공연을 보면서 받은 시각적 인상에 주로 기초하고 있음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하지만 내가 원작인 경극 ‘패왕별희’ 역시 친숙하게 잘 알고 있다는 사실도 말해둔다.


국립창극단의 창극 ‘패왕별희’는 원작 경극과는 꽤 차이가 있지만, 원작의 경이롭고 섬세한 특징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실 경극 ‘패왕별희’가 항우의 흥망성쇠를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순간들과 항우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우희의 희생에 집중하고 있다면, 창극 ‘패왕별희’는 이들을 둘러싼 역사와 그 안에 자리한 많은 인물을 충실하게 보여주며 열정적이고 긴박하게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창극 ‘패왕별희’의 극작가 린슈웨이는 항우와 우희의 이야기가 지닌 고결함과 세속성을 모두 극본 안에 담아냈고, 이 극본은 인간의 깊은 내면을 표현하는 판소리에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연출 우싱궈는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해, 배우들에게 경극 스타일의 양식화된 연기 관습만을 요구하기보단 마음에서 우러나는 판소리를 부를 수 있도록 탁월하게 연출했다. 하지만 동시에, 경극에서 어떻게 짧은 막대 하나와 마부 한 명만으로 말 한 마리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는지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이자람의 아름다운 음악은 연출과 배우들의 열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고 증폭시키면서, 극본이 지닌 힘과 긴박성을 놀라울 만큼 끌어올린다.

 

훌륭하지 않은 이가 단 한 명도 없다
배우들에 대해 말하자면, 우희 역의 김준수와 항우 역의 정보권은 이 어렵고 까다로운 역할을 걸출하게 연기해냈다. 우희를 맡은 김준수의 단(旦, 경극의 여자 역할) 연기는 경극 고유의 전통 연기 스타일뿐 아니라 우미인의 삶과도 연관된 섬세함과 우아함을 감동적으로 표현했고, 판소리에 담긴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감정 또한 충만하게 보여줬다. 또한 관객이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희가 항우를 위해 춤을 추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특히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우희가 춤을 추고 난 뒤, 항우가 탈출할 수 있도록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임을 이미 알기에. 김준수는 우희가 항우에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가슴 아프도록 애절하게 연기했는데, 따라서 관객은 우희가 비극이 곧 닥쳐옴을 분명히 느끼는 순간 두 배로 감동받게 된다.

 

 


정보권은 비범했다. 그는 경극의 장수를 떠올리게 하는 한편(이 점은 전통 경극의 스텝과 동작을 알려준 연출의 도움이 컸을 것이다.) 더없이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도 더없이 끔찍한 불행을 겪어야 했던 한 개인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 또한 절절하게 보여줬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우희가 자결하는 장면과 더불어 최고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항우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정보권을 보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사실 무대에 오른 연기자들 모두가 크나큰 감동을 선사했다. 훌륭하지 않은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소리나 열정, 관객들이 머리와 가슴으로 동시에 공연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성심성의를 다하는 태도, 그 어떤 부분도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경극 ‘패왕별희’에는 없는 인물도 몇 있었지만, 그들 역시 내러티브에 아주 잘 들어맞았다. 아마 내가 다음번에 이 이야기의 경극 버전을 볼 때는 그 인물들이 그리워질 것 같다.

 

 

창극과 경극, 두 전통이 빚은 새로운 무대
고전극과 고전 스타일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은, 고전적인 이야기나 고전극의 방법론을 현대적으로 각색해 동시대의 이야기를 전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우려하곤 한다. 고전적 전통이 원래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질을 훼손할 위험이 있어서다.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드라마투르그로서 나 또한 이러한 우려에 공감한다. 종종 현대적으로 각색된 공연을 보면서 셰익스피어의 원본 희곡이 지닌 독창적인 주제와 아름다움이 손상됐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국립대만희곡학원의 경극학과 객원교수로서(나는 거기서도 셰익스피어를 가르친다.) 현대화와 각색, 문화적 융합 같은 문제들이 실로 논쟁적인 사안임을 잘 알고 있다.


이 작품의 협력연출 정종임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창극 ‘패왕별희’를 가리켜 “서양의 고전을 동양의 예술로 풀어냄이 아닌, 동양의 고전을 동양의 문화로 풀어내는 창극”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은 물론 옳으며, 의미심장한 지적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정종임이 ‘각색’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문화로 풀어내는 해석’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창극 ‘패왕별희’는 오래된 이야기를 새롭게 들려주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 몬머스의 제프리가 기록한 리어왕의 역사를 새롭게 쓴 이야기이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플루타르코스의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다시 쓴 새로운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창극 ‘패왕별희’가 판소리 다섯바탕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판소리라는 장르에 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관객을 판소리의 세계로 끌어들일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확실히 단언하건대, 창극 ‘패왕별희’는 어떤 면에서도 경극 ‘패왕별희’의 대체물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전통 경극의 양식화된 형식에 친숙하지 않은 관객이 원작 경극을 풍부하고 감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리라 믿는다.


창극 ‘패왕별희’는 새로운 양식의 작품이며, 판소리는 이 작품에 활기를 불어넣어 흥미진진하고 강렬한 재미를 주는 매개체로서, 작품의 표현 방식과 스타일에 주목하게 만드는 수단이다. 나는 창극 ‘패왕별희’가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아남는 작품이 되리라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워드 블래닝(Howard Blanning) 오하이오 마이애미 대학교 명예교수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국립대만희곡학원의 객원교수로 활동 중이다.
번역 김은아

사진 전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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