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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호 Vol.350

고전의 가치, 연기로 증명하다

프리뷰1┃국립극장 NT Live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와 에드워드 올비. 그들의 걸작을 NT Live로 만날 기회가 왔다.

스크린을 강타하는 압도적인 연기와 뛰어난 연출로 유례없는 극찬을 받은 두 편의 작품을 미리 만나보자.

그 어떤 라이브 무대보다 더 강렬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 ★★★★☆
섹시함으로 중무장한 시에나 밀러와 잭 오코넬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는 미시시피주를 배경으로 결혼과 가족, 그리고 성을 다룬 테네시 윌리엄스의 1955년 걸작이다. 이 작품은 그동안 매우 다양하게 해석되고 연출됐지만, 이처럼 배우들이 거리낌 없이 옷을 벗어던지는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해석은 처음이다.


호주 출신 감독 베네딕트 앤드루스는 할리우드에서 급격히 몸값이 오르고 있는 잭 오코넬을 남자 주인공 브릭으로 발탁했고, 그는 섹시함 측정기를 고장 내려 작정이라도 한 듯 넘치는 관능미로 객석을 숨 막히게 했다. 그의 상대역 매기로 등장하는 시에나 밀러 역시 대담한 노출 연기로 웨스트엔드 극장가에 꽤나 오랜만에 파격적이고 과감한 클라이맥스를 선보였다.


불이 켜지고, 짙은 회색 카펫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오코넬 위로 샤워기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깁스를 한 오른쪽 다리를 제외하고는 온몸이 흠뻑 젖어 있다. 전직 풋볼 영웅인 브릭이 슬픔에 맞서기 위해 술을 마셔댄다. 그리고 브릭의 재력가 아버지인 빅 대디는 깊어가는 밤을 따라 아들의 슬픔을 천천히 이끌어낸다(빅 대디 역의 콤 미니는 가히 최고였다).


다만 매기 역의 시에나 밀러가 상의를 반쯤 벗고 무관심한 남편 브릭을 애태우려 시도하는 모습이나 베네딕트 앤드루스의 연출에서 볼 수 있는 몇몇 노출 장면이 윌리엄스의 원작을 더욱 섹시하게 만들지는 못한 듯하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이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배우들의 과한 노출은 성적으로 느껴지기보단 오히려 가늠하기 어려운 그들의 마음을 확대할 뿐이다. 세련된 금색 벽으로 둘러싸인 미니멀한 침실에서, 우리는 노출의 이면에 숨겨진 깊은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등 작품에 필요 이상으로 현대적인 요소가 스며들어 있는 듯해도 생각할 부분을 충분하게 제시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회적 의식은 정말 그렇게나 변한 걸까? 심지어 플라토닉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시에나 밀러는 이 작품을 통해 귀여운 고양이 얼굴을 한 매혹적인 금발의 배우 그 이상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녀가 연기한 매기는 눈물로 얼룩진 쓸쓸한 마음을 감추기 위해 용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인의 소름 끼칠 정도로 그럴듯한 초상화 같다. 어떤 때는 바로 앞에 있는 매기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듯,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는 브릭을 향해 네 발로 다가가기도 하고 갑자기 술잔을 날리는 등의 격렬한 상황조차도 잘 살려 연기했다.


나는 이 공연을 보기 전부터 한가한 여름 시즌을 메울 정도의 작품이라 평을 쓸 작정이었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났고, 연출 역시 훌륭했다. 열 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했다면 그중 아홉 마리쯤은 매우 마음에 든다고나 할까.

(텔레그래프, 2017년 7월 24일자)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 ★★★★★
이멜다 스톤턴, 놀랍도록 완벽하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늦은 밤 열리는 파티라는 단순한 상황을 전제로 현대 사회의 결혼 생활을 단테의 신곡 속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공포와 같은 수준으로 다룬 작품이다. 미국 고전문학 중에서도 가장 신랄한 재미와 불쾌함, 끊임없는 고뇌로 가득 찬 작품일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이토록 정곡을 찌르는 것도 처음이다.


이멜다 스톤턴이 연기하는 마사는 관객에게 한순간도 딴짓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의 전문 분야는 이렇게,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고통과 피해를 공감하게 하고 심지어는 동정심까지 끌어내는 것이다. 스톤턴은 이 불굴의 캐릭터에도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러벳이나 ‘집시’의 마마로즈에서 보여준 내공을 입혀낸다. 기관총처럼 웃음을 발사하건 슬픔으로 신음하건 한 음도 놓치는 법이 없다.


도입부에서 스톤턴은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 닉과 따분하지만 순종적이고 아름다운 그의 아내 허니라는 신선한 먹잇감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허풍스러운 파티광으로 등장한다. 불안하고 변덕스러우며 때로는 소녀 같은 그녀는 날카로운 눈매와 얇은 입술로 모욕적인 행동과 심술궂은 말을 마구 내뱉는다. 그녀는 잔뜩 상기된 동시에 기진맥진한 상태로 술기운을 빌려 말쑥한 생물학자에게 욕망을 드러내고 3시간에 거쳐 단계적으로 자제력을 잃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황량함이 가득한 결말을 맞는다. 모든 불순한 열정이 소진되고 부부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거짓말이 효력을 잃게 된 후 내뱉어진 “누가 크고 나쁜 늑대를 두려워할까?”라는 말장난에서 아이 없는 삶을 살았으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삶이 떠올라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들의 여정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이 얻어낸 알맹이 없는 풍요로움을 기리는 비문과도 같다.


스톤턴에게 보낸 아낌없는 찬사가 그녀가 조지 역의 콘레스 힐을 가린다는 뜻은 아니다. 그의 분노로 가득 찬 공처가 남편 연기는 전혀 상투적이지 않았다. 머리가 세어가는 한물간 이 남자는 비굴하지만 동시에 그가 얼마나 패배감에 젖어 있는지, 무엇이 진실이고 꾸며낸 것인지 혹은 무엇이 비밀스러운 음모인지 끊임없이 추측하게 한다.


만약 ‘최고의 음주연기상’이 있다면 겸손한 척하는 어리석은 허니를 연기해 극에 재미를 더한 이모겐 푸츠에게 돌아갈 법하다. 그녀는 톰 파이가 디자인한 넓지만 숨 막힐 듯 답답한 거실 한가운데의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을 때조차 눈길을 끈다. 닉을 연기한 루크 트레더웨이는 미국인들의 꿈과 희망을 상징하기에 딱 알맞은 정도의 광채를 발하고 있으며 나이 든 부부의 씁쓸한 성인식이 끝나감에 따라 그 빛이 사그라지는 모습을 멋지게 표현한다. 흠잡을 데 없는 작품? 올비가 보장했다.

(텔레그래프, 2017년 3월 10일자)

 

도미니크 캐번디시 | 번역 한송희
※ 본 기사는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래프The Telegraph’에 실린 기사를 번역·정리했습니다.

 

NT Live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날짜          2019년 3월14~17일 | 2019년 3월 21~24일
장소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관람료       전석 2만 원
관람연령    만 18세 이상 관람가(2000년 12월 31일 이전 출생자)
문의          국립극장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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