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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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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 Vol.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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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최용석

맺다 / 예술가의 초상

국립창극단 최용석


몇 명의 심사위원을 만족시키는 사람보다

몇 천 명의 관객을 만족시키는 사람






연기는 일종의 창조적 약속, 삶의 변주를 만드는 형식주의다. 이를 위해선 기본기가 전제돼야 하는데, 국립창극단 단원 최용석은 이 방면에서 선수다. 하지만 국립창극단에서 벌써 10년을 보낸 최용석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극장 생활의 블록을 하나하나 쌓아서 10층을 만들었는데, 다시 내려가 볼 수 없는 고층”이라는 이유에서다. 보통 사람들이 과거를 아쉬워하는 이유는 ‘그때 더 잘할걸’ 하는 마음으로 수렴된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최용석은 좀 다르다. “좀 더 다양하게 연기해 볼걸”이라고 돌아본다. 인간 본연의 솔직한 감성이 드러나는 장면에 기계적으로 연기하지는 않았는지 회한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약속대로 실행하는 연기는 항상 납득할 수 있는 범주 안에 들어와, 연출가들이 1순위로 칭찬하는 배우가 최용석이기는 하다. 하지만 “확 풀어지는 다양성에 대한 아쉬움”은 항상 남는다. 그러나 그가 회차마다 최상의 연기를 보여 준 것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완벽주의자인 최용석은 항상 극한으로 달려도 아쉬움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닐 것이다.


전북 남원이 고향인 최용석은 어릴 때 예쁘다는 소리를 귀에 달고 다녔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얼굴”이라고 미소 지었다. 미취학 아동일 때 전주시청 앞에 생긴 대형 연기학원에 등록한 최용석은 사건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데뷔했다. 학원 연기 실장은 배우로 성공하려면 연기뿐만 아니라 노래, 춤 같은 재주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추가로 익힐 재주 항목을 그에게 나열했는데, 그중 관심을 끈 것이 있었다. ‘판소리’였다. 당시 연기학원에서 소리를 가르쳐 주는 이는 무려 당대를 주름잡던 조상현 명창이었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최용석의 부친은 소리에 심취한 아들을 보고 큰 결심으로 “소리를 해 보겠느냐”고 물었다.

어릴 때부터 울면 옆집에서 소리 한번 우렁차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목청이 컸던 최용석에게 마음껏 소리 지를 수 있는 판소리는 제격이었다. 예술중 수석 졸업, 예술고 수석 입학, 예술대 장학생 그리고 군악대까지 ‘하이패스’로 관통했다.

특히 창극엔 일찌감치 도가 텄다. 고등학교 때 국립창극단 출신 남상일에게 배우며 소리는 물론 연기력도 갖췄다. 창극에 특화됐던 김성녀 전 국립창극단 감독이 이끈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연희예술학부 음악극과에서 날아다녔던 이유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주요 배역인 황후가 된 심청의 남편 임금을 맡았던 최용석은 ‘몇 명의 심사위원을 만족시키는 사람보다 몇 천 명의 관객을 만족시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병환을 얻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제대 후 학교를 중퇴할 마음을 먹었다. “구김은 우리가 당할 테니 너는 구겨지지 마라”며 아들을 응원한 부모를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었다.

그런데 그사이 국립창극단에 인턴 제도가 생겼다. 일종의 취업이니, 돈을 벌면서 아버지를 돌볼 기회가 생긴 셈이다. 국립창극단 입단을 막연한 꿈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그는 2014년 5월 국립창극단 인턴 공모에 합격했다. 이듬해 인턴 단원임에도 재일동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의 창극 데뷔작 <코카서스의 백묵원>의 주역 중 하나인 ‘시몬’ 역에 발탁됐다. 정단원이 된 이후인 2017년 이 작품이 재공연되면서 최용석은 전환점을 맞았다.

“인턴 때는 ‘실수해도 예뻐해 주시겠지’ 하는 보험 같은 생각이 있었는데 정단원은 다르잖아요. 무엇보다 저랑 같이 시험 봤던 창극단 도전자들이 생각났어요. 그 사람들이 이 자리를 계속 바라보고 나를 예의 주시할 텐데 ‘더 잘 해내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긴 거죠.”


아울러 초연 당시 상대 배우이자 학교 선배 그리고 창극단 입단 동기인 조유아를 배려하지 않고 안하무인 격으로 연기한 것에 자책감을 느껴, 그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최용석이 연기한 시몬은, 조유아가 맡은 ‘그루셰’가 극을 끌고 가면 중요한 대목마다 그녀 앞에 다리를 놓아 주는 캐릭터였다. 등장할 때마다 그루셰를 뒤흔들면 극의 리듬이 깨지는데, 존재감이 강한 최용석은 그녀를 한껏 뒤흔들어 놓았다. 조유아는 “배려가 부족했다”며 진심으로 고개 숙인 최용석의 사과를 특유의 재담으로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제 연기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았던 거죠. 제 쾌감만 느끼느라, 협동심과 시너지를 생각하지 못했던 거예요. 그때가 국립창극단 생활의 중요한 분기점이 됐습니다.”

이후 최용석은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의 변학도, <패왕별희>의 한신, <리어> 콘월 역을 맡으며 탁월한 균형감각을 보여 주었다. 그는 이를 두고 “레벨링Leveling(평평하게 땅을 고름)”이라고 표현했다.

“누구 하나 잘나서 박수 받는 게 아니라, 상향평준화를 목표로 달려 나가는 게 우리 국립창극단의 힘입니다.”


최근 국악계 인재들에 대한 대중문화계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재주 많기로 이미 소문난 최용석도 온갖 유혹을 받았다. 국립창극단 입단 전엔 관련 업계 거물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짧게 경험하기도 했다. 갇혀 있는 삶이 답답해 스스로 나온 최용석은 우선 국립창극단 생활을 경험하는 게 우선이라고 여기며, 다른 업계의 여러 제안을 단호하게 물리쳤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유혹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이곳에서 자리를 잡았고, 무엇보다 더 깊은 애정이 생겼다. 특히 국립창극단 단원으로서, 예술가 개인으로서도 목표가 뚜렷하다. 우선 “창극이란 장르가 데이트 코스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바람이다.

“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 제 공연을 보러 오라고 하면 처음엔 부담을 느꼈어요. 한복 입고 갓 쓰고 하는 공연이 아니냐는 거죠. 창극에 대한 인식이 구식인 게 싫어요. 뮤지컬처럼 연인끼리 가족끼리 볼 수 있는 장르가 됐으면 합니다. 국립극장이 ‘천국도’가 되기를 정말 바라요.”

개인적으로는 자녀들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무엇보다 자식한테 본이 되는 예술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가장 일상적인 모습을 보는 건 가족이잖아요. 그래서 자녀가 부모를 존경한다는 건 부모에게 정말 큰 결실이죠.”



글. 이재훈 『뉴시스』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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