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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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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 Vol.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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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Ⅱ <2025 작곡가 프로젝트>

창작의 온실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어떻게 열어젖힐 것인가’라는 질문을

국악관현악이라는 거대한 음향의 장에서 여덟 개의 씨앗으로 틔워 냈다.





소리의 발아

 

씨앗을 일정 기간 시설 내에서 관리하며 건강한 어린 식물로 키워 내는 과정을 육묘育苗라 한다. 이렇게 세심한 돌봄을 거친 개체는 노지에 직접 파종한 개체보다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불량한 환경에서도 초기 생육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다. 육묘는 개체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적의 환경을 디자인하는 기술인 셈이다.

이러한 육묘 기술은 최근 활발하게 운영되는 다양한 음악가 발굴 및 양성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올해부터 만 34세 이하 젠지Gen-Z 세대의 젊은 작곡가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지휘자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 국악관현악 레퍼토리 확대와 창작의 선순환 구조 확립을 위해 이번 프로젝트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2025 작곡가 프로젝트>는 정기 멘토링과 워크숍, 리딩 세션, 내부 시연회 등을 병행한다는 점에서 완성된 작품을 선발해 초연하는 일반적인 작곡 공모 프로그램과 차별화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 프로젝트’, 국립창극단의 ‘작창가 프로젝트’ 등 다양한 인큐베이팅 프로젝트가 진행됐지만, 국악관현악 작곡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는 결이 다르다. 국악관현악은 대규모 편성의 음악이기 때문에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선 많은 인력과 자원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작곡가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음악과 실제 연주 사이의 괴리를 좁히고 음향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선 극장과 악단이라는 인프라와 잘 갖춰진 협업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김지호와 양동륜을 제외한 작곡가 대부분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처음으로 국악관현악에 도전했다. 국악관현악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기성 작곡가가 아닌 만큼, 이들은 대극장이라는 낯선 음향 구조와 국악관현악이라는 연주 방식 속에서 자신만의 돌파구를 모색했을 것이다. 또한 연주자의 해석과 지휘자의 판단이 끊임없이 교차하는 가운데, 자신의 의도를 유지하면서도 유연하게 조율하는 방식을 고민했을 것이다. 낯설고 새로웠을 이번 여정은 작곡가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여덟 개의 씨앗

 

〈2025 작곡가 프로젝트>에서는 각기 다른 감각과 개성을 지닌 여덟 명의 작곡가가 10여 분 남짓의 작품을 차례로 선보였다. 20분 내외의 일반적인 국악관현악보다 짧은 구성으로, 음악의 기승전결을 압축적으로 구현해 작곡가들의 면면을 살펴보기에 무리가 없었다. 무대 위 작품들은 전통음악 선율을 재구성하거나, 국악기가 지닌 소리의 질감 혹은 주법을 확장하는 등 다양한 음악적 언어를 탐구하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했다.

공연 전반부에서는 각 작곡가가 작품의 출발점으로 삼은 아이디어의 다양한 출처와 영감의 경로를 엿볼 수 있었다. 김여진은 수심가토리와 메나리토리를 결합해 ‘수심메나리토리’라는 허구의 토리를 빚어내며 전통음악의 새로운 어휘를 확장하는 첫 장을 열었다. 서도민요와 동부민요의 미묘한 실루엣이 교차하며 하나의 음악적 서사를 형성하는 쾌감이 있었다. 이한빈은 훨씬 직관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모티프가 되는 주제 선율의 반복과 변주가 작품의 중심에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어 다양한 길의 형태를 드러내고자 하는 작곡가의 의도가 뚜렷하게 감지됐다. 서민재는 반짝반짝 일렁이고 때론 큰 충돌을 빚어내며 부서지는 물결의 이미지를 농음·농현·시김새 등과 같은 국악기가 지닌 소리의 운동성으로 정교하게 치환했다. 특히 국악기 고유의 주법과 음향적 효과가 국악관현악이라는 형식과 충돌하기보다 오히려 음악의 중심 요소로 기능하면서 재미를 한층 더 강화했다. 양동륜은 종묘제례악의 정대업지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국악관현악에 어울리는 장엄하고 숭고한 분위기로 무인의 삶과 정신을 그려 냈다.

후반부에서는 기억, 감정 등의 주제가 생생하게 감지되었다. 김지호는 이별가와 진도씻김굿의 선율과 장단을 차용해 이별과 상실의 정서를 위로와 치유, 기억과 추억의 서사로 재구성했다. 모티프 선율의 점진적 확장과 장단의 역동적 전개가 어우러지며 감정의 흐름을 극적으로 고조시키는 전략이 눈에 띄었다. 이후에 이어진 사적 감정이나 경험, 사유로부터 시작된 작품들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떠다니는 소리의 모음집’이라는 뜻의 ‘유음집’을 선보인 조성윤은 일상에서 자신에게 의미화되는 소리를 작품으로 소환했고, 하준영은 시작의 두려움과 설렘, 시행착오와 혼란, 해방감과 새로운 출발이라는 삶의 순환 구조를 음악으로 옮겼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전다빈은 선율의 점진적인 확장으로 에너지가 응축되고 폭발하는 과정, 타악기가 침범하며 긴장과 이완을 교차시키는 장면을 통해 음악적 드라마를 구현하며 ‘순간’에 대한 그 나름의 해석을 내놓았다.

여덟 명의 작곡가는 전통음악의 어휘를 빌리되 서로 다른 상상력을 동원하며 익숙한 형식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듯 보였다. 이번 무대가 단순한 작품 나열이 아닌, 각 작곡가가 자신의 언어로 음악적 사유를 펼치는 자리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여덟 개의 작품은 ‘자신의 음악적 세계를 어떻게 열어젖힐 것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되었다.






예술과 토양

 

사실 젊은 예술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제도적 장치는 ‘미래’를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특수한 긴장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수직적인 멘토링과 구조화된 인큐베이팅 시스템은 창작의 효율성과 안전망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제도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할 위험도 존재한다. 창작이 인정과 승인을 기반으로 한 관리 속에서만 작동할 때, 예술이 지닌 무모함이나 불확실성의 영역이 적절하게 길들여지거나 축소될 수 있다. 예술가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핵심은 효율이나 성과의 극대화가 아니라, 그 안에 잠재한 위계와 고착의 가능성을 인식하며 긴장을 지속하는 데 있다.

작곡가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누군가는 어떤 이론적 교육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실질적 자산을 획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실패가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실패는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게 하는 경험의 지표가 된다. 〈2025 작곡가 프로젝트〉는 실험과 실패가 공존할 수 있는 열린 장으로 작동할 때 의미 있는 토대가 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가능성을 점치는 과정이었으며, 그 성과와 한계는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드러날 것이다.

 

 

글. 성혜인 음악평론가. 음악비평동인 『헤테로포니』 필진, 비평지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편집위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다. 음악과 공연예술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문화적 실천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강의, 방송, 자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노승환, 안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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