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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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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 Vol.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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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함으로 무장해제

달다 / 다시보기 2

국립극장 기획 무장애공연 <다정히 세상을 누리면>

다정함으로 무장해제

결국 이 공연이 말하고 싶은 것은 연대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함께하는 삶이다.





<창극 중심 세계 음악극 축제>의 참가작이자 2025-2026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기획공연 음악극 〈다정히 세상을 누리면〉(이하 〈다정히〉)이 초연되었다. 국립극장은 2020년부터 동행, 장벽 없는 극장 만들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우리읍내〉 〈합체〉 〈맥베스〉 등 무장애공연(Barrier-free)을 꾸준히 만들었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이 시설을 이용하는 데  장애가 되는 장벽을 없앤다는 말로, 건축·문화·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다. 극장 공연에 적용해 보면 휠체어 좌석이나 점자블록과 같은 극장 이용뿐만 아니라 수어 통역, 자막 및 해설 등 공연을 관람할 때의 장벽을 줄이는 것이다.
무장애공연에서 가장 생경한 장면은 바로 공연 직전 안내다. 점자와 문자가 공존하는 팸플릿을 받아 들고 객석에 앉으면 수어통역사와 안내자가 가장 큰 소리와 가장 작은 소리를 내주며 극장 환경에 대해 꼼꼼히 설명한다. 관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꼼짝없이 함께 보고 듣는다. 꽤 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누구든 경청하며 듣는 모습에서 관람에 임하는 비슷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정히〉에서는 개가 등장한다. 가족과 다름없는 반려견들과 주인의 친밀한 모습 사이로 극을 이끌어 가는, 그러니까 이야기의 화자인 개가 있다. 개의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기억들을 풀어내며 이야기는 홍경래의 난이 있었던 1811년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말더듬이 먹쇠는 그의 딸이 양반에게 천시를 당하자, 딸에게만큼은 차별 없는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결심으로 함께 도망친다. 딸에게 ‘누리’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고 홍경래 일행에 합류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으로 부푼 먹쇠, 산속에서 언어장애를 가진 순수한 소년을 만난 누리, 누리가 좋아 강아지처럼 따라나선 소년. 각자의 상처를 가진 세 인물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만나 서로 갈등하고 보듬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차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먼저 홍경래의 난이라는 역사적 사실 속 배경이 된 평안도의 지역 차별이 있다. 평안도는 예로부터 국경 지역에 있어 전쟁이 잦았고, ‘서북인에게는 높은 벼슬을 주지 마라’는 식의 차별도 심했기에 지역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신분 차별이 있다. 수령들의 수탈이 심해져 농민층이 분화되고 견고했던 신분제도에 균열이 갔다. 그렇게 뛰쳐나온 사람들이 홍경래의 무리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는 장애 차별이다. 먹쇠는 말을 더듬어 주변 사람들에게 차별을 당하고, 소년은 말을 못 해서 마을에서 함께 살지 못한다. 이렇게 다양한 차별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차별에 차별을 낳는 상황까지 닥친다.
〈다정히〉는 차별 속 차별을 드러내는 것에 몰두한다. 차별에 대한 통찰에 공감한다. 폭력은 가장 낮은 곳을 향해 흐른다고 했던가. 난에 참여한 사람들은 신분이나 지역 차별에 반대한 이들이다. 차별을 받는 사람임에도 장애를 가진 소년을 다시 차별한다. 먹쇠는 본인이 말을 더듬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차별당하지만, 딸을 위해 소년에게 떠나라 한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소년보다 우위에서 그 나름의 권력을 행사한 것이다. 소년은 그대로 물러난다.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그러나 결국 그 부녀를 구원하는 건 소년이었다.





숲을 표현하는 장면이나 개를 연기하는 배우의 아크로바틱한 장면은 민준호 연출의 〈거울공주 평강이야기〉와 같은 전작들을 연상하게 한다. 넷플릭스 같은 OTT가 가까운 요즘, 극장을 찾게 하는 요소는 배우의 몸과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경이로움 때문이다. 기예라기보다는 시간을 켜켜이 쌓아 만든 배우들의 어떤 합 같은 것.
여기에 무장애공연에서는 말과 손짓과 글자가 다른 방식으로 하나를 말한다. 배우 옆에서 말이 되어 준 손짓은 다섯 명의 수어통역사가 함께 했다. 그들의 노고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서서 말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인데 극의 흐름에 따라 생생한 표정을 짓고 몸을 단련하는 일을 해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배우 그리고 수어통역사의 바이브Vibe가 한 명의 관객으로서 감명 깊은 지점이었다.
〈다정히〉는 음악극이다. 음악적 요소는 창작 판소리와 뮤지컬 스타일의 노래가 될 텐데, 이는 배우의 음악적 기반과도 직결된다. 배우 정보권의 개 역할은 창극의 도창처럼 소리로 극의 중심을 잡았다. 이야기 전달력이 뛰어났고, 배우들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정보권은 소리와 연기의 결을 균형감 있게 맞추고 있어 연극 무대에서 활약할 것도 기대된다.
한편 판소리와 가장 멀게 느껴진 넘버가 홍경래의 테마다. 판소리로 탄탄하게 구축한 도입과 달리, 다른 재질의 노래가 나오니 튕겨 나가는 기분이다. 이는 배우의 발성과 음악적 요소에 원인이 있다. 판소리 배우가 극적 발성과 연기를 체화했듯, 이런 작품에서는 뮤지컬 배우도 국악을 체화하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 판소리의 전문성이 부담된다면 추성·퇴성과 같은 시김새를 활용하면 어떨까. 장애의 장벽을 허물 듯 음악극에서만큼은 장르의 장벽도 이제 서서히 무너뜨리길 기대해 본다.     





간곡히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다정히〉는 ‘차별하지 말자’는 대주제를 비장애인 관점에서 풀어낸다. 바꿔 말하면 장애인의 삶을 잘 모르거나 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자문 없이 상상 속에서 만든 것 같다. 결국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줄 것인지로 귀결되는데, 필자에게는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을 향한 교훈적 메시지로 읽힌다. 무장애공연, 장애 장벽 없이 보는 공연에서 말이다. 장애인 관객이 몇 명이나 <다정히>를 보았을까. 그들의 시선에서 이 공연은 어떻게 느껴질까.
결국 〈다정히〉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연대다.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함께하는 삶이다. 누리가 아버지와 소년, 그리고 개까지 연대하는 순수함은 판타지인가? 어쩌면 모티프가 되었을지 모를 브라이언 헤어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인류의 진화는 결국 다정함에서 왔다”고 말한다. 그 과학적 증거로 개의 생존 방식이 인간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었다. 나아가 『휴먼카인드』에서는 서로 연대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으며, 선함이 기반이라고 언급한다. 〈다정히〉의 유난히 착한 이야기는 결국 착한 창작자들의 인간 본성에서 나온 친절함이자 인간의 이상향일 것이다.



글. 구수정연예술 평론가, 음악치료사. 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글쓰기를 한다. 제4회 국립극장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 대상을 수상하며 평론가로 등단했다. 에세이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너에게』 『마음을 듣고 위로를 연주합니다』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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