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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 Vol. 424
목차 열기국립국악관현악단 <정오의 음악회>
시는 음악을 통해 소리를 얻고, 음악은 시를 통해 의미를 얻는다.
관객은 그 길 위에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꺼내 보게 될 것이다.

가을의 끝자락, 11월. 낙엽은 마지막 빛을 띠며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고, 마음은 어느새 고요한 감성에 물든다. 이런 계절에 <정오의 음악회>는 시를 닮은 다섯 개의 풍경으로 채워진다. 마치 시와 음악이 서로를 비추며, 감정의 결을 따라 흐르는 듯하다. 국민 시인들의 시구와 함께 국악관현악이 그려 내는 다섯 장면은 마치 한 편의 서정시처럼 관객의 마음을 조용히 물들일 것이다. 2009년 시작된 이래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정오의 음악회>는 변함없는 스테디셀러지만, 그 안의 구성은 언제나 새롭고 다채롭다.
정오의 시작 – 김소월의 「진달래꽃」
김성국 작곡의 ‘쾌지나 칭칭’으로 공연의 문이 활짝 열린다. 경쾌하고 흥겨운 가락이 특징인 민요 ‘쾌지나 칭칭나네’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이 곡은, 자진모리장단을 더욱 빠른 휘모리장단으로 변주해 흥을 한층 끌어올린다. 그 흥겨운 리듬 위에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겹쳐진다. 떠남을 노래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정서의 결은 민요의 리듬과 닮아 있다. ‘쾌지나 칭칭’은 떠나는 이의 발걸음을 춤으로 바꾸고, 시는 그 발걸음에 마음을 얹는다. 마치 시가 음악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듯, 이 무대는 떠남의 풍경을 흥겨움으로 배웅한다.
정오의 협연 – 윤동주의 「서시」
‘정오의 협연’에서는 2024년 국립국악관현악단에 선발된 대금 신입 단원 박병재가 임교민 작곡의 대금협주곡 ‘담론’을 선보인다. ‘담론談論’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2024년 안산시립국악단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대금 독주와 관현악이 서로 질문하고 응답하는 형식으로,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흐름 속에서 윤동주의 「서시」가 떠오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대금의 숨결은 사유의 공간을 열어 주고, 음악은 질문을 던진다. 시는 그 질문에 침묵으로 답한다. 신입 단원의 첫 협연은 고요한 결의로 빛나며, 음악은 말이 아닌 마음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정오의 리퀘스트 - 나태주의 「풀꽃」
관객의 사연과 신청곡을 소개하는 ‘정오의 리퀘스트’에서는 <정오의 음악회>를 통해 마음을 치유했다는 관객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신청곡은 돈 맥클린(Don Mclean)이 부른 ‘빈센트(Vincent)’다. 동명의 인상파 화가 고흐가 그린 작품 ‘별이 빛나는 밤’처럼, 음악은 상처를 감싸는 빛이 된다. 그 곁에 나태주의 「풀꽃」이 조용히 서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음악은 자세히 들을수록 깊어지고, 시는 오래 읽을수록 따듯해진다. 이 무대는 음악과 시가 함께 건네는 작은 위로다.
정오의 스타 -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대중가요·판소리·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 스타들이 꾸며 주는 ‘정오의 스타’, 이번 달은 뮤지컬 배우 임규형이 무대에 오른다. 2019년 뮤지컬 <아랑가>로 데뷔한 그는 다양한 뮤지컬 무대에서 활약하며, 2023년 JTBC <팬텀싱어4> 결승에 진출해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 ‘크레즐’로 최종 3위에 올랐다. 그가 선보일 곡은 팝송 ‘You Raise Me Up’,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의 넘버와, ‘아름다운 나라’이다. 국악관현악으로 편곡된 이 곡들은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흔들림 속에서 피어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삶의 무게를 견디며 피어난 노래들은 시처럼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정오의 거상 - 정호승의 「수선화에게」
마지막 무대 ‘정오의 거상’에서는 2024-2025 레퍼토리시즌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에서 연주된 곡을 다시 선보인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온라인 게임 ‘천하제일상 거상’이 협업한 이 공연은 게임 음악과 국악의 새로운 접점을 보여준 무대였다. 이번에는 인도 필드 테마, 홍민웅 작곡 ‘신화의 숨결’이 연주된다. 힌두 신화 속 라바나·비슈누·시바 세 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신성한 존재들이 세상의 균형과 질서를 지켜 온 과정을 그린다. 그 이야기 위에 정호승의 「수선화에게」가 화답한다.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신들은 세상을 지키고, 사람은 외로움을 견딘다. 음악은 신화의 숨결을 따라 흐르고, 시는 인간의 숨결을 따라 울린다. 이 무대는 신성과 인간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11월의 <정오의 음악회>는 시와 음악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나란히 걷는 산책길이다. 시는 음악을 통해 소리를 얻고, 음악은 시를 통해 의미를 얻는다. 관객은 그 길 위에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꺼내 보게 될 것이다.
2025 <정오의 음악회> 11월
일정 2025-11-13 | 시간 목 11:00 | 장소 해오름극장 | 관람권 R석 3만 원, S석 2만 원 | 문의 02-2280-4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