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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 Vol. 424
목차 열기국립현대무용단 <더블 빌: 김성용 & 윌리엄 포사이스>
프로세서들은 움직임을 바탕으로 교류하며 움직임을 발전시켜 나가고,
다시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간직한 채 함께하며 변주를 이뤄 나간다.

국립현대무용단 <더블 빌: 김성용 & 윌리엄 포사이스> ‘크롤’ 연습 사진 ⓒ황승택
‘본다’는 행위는 무엇일까? 본다는 행위는 우리 눈에 주어지는 가시적 대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미소 짓는 사람의 얼굴을 볼 때, 우리는 양옆으로 올라간 입꼬리와 초생달처럼 가늘어진 눈매를 본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저 사람이 웃고 있다’고 인식한다. 때로는 더 나아가 행복이나 사랑의 감정을 미소에서 본다고도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개념인 감정이 보일 리 없건만, 우리는 사랑을 본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도, 보는 주체에 따라서도 우리가 보는 것은 달라진다.
예술감독 김성용과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의 <더블 빌> 무대는 바로 이 ‘본다’는 행위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을 예견한다. 김성용은 그가 개발한 움직임 방법론인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을 바탕으로 그간 각각 두 버전의 <정글>과 <인잇>을 선보인 바 있다. 무용수 각자의 ‘감각과 반응’에 집중하는 무브먼트 리서치인 ‘프로세스 인잇’은 그 자체로 두 작품의 중심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프로세스 인잇’의 의의는 안무가가 만들어 낸 움직임을 무용수가 수행하는 것이 아닌, 프로세서로서 안무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각자의 고유성이 담긴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는 데 있다. 신작 <크롤(Crawl)> 역시 ‘프로세스 인잇’을 바탕으로 춤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다.
윌리엄 포사이스는 고전발레를 21세기의 예술 형식으로 전환한 안무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안무의 근본적인 조직원리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독창적 안무 방법을 제시해 왔다. 그는 안무와 춤이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한다. 안무는 춤추고자 하는 욕망의 통로 역할을 해 왔지만, 안무라는 단어 자체가 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안무를 신체로부터 분리한 ‘안무적 오브제’ 같은 개념 또한 이런 관점을 반영한다. 이번 더블 빌 무대에서 선보이는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One Flat Thing, reproduced)> 또한 안무와 춤의 관계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김성용이 중동지역을 방문했던 기억에서 비롯된 작품명인 <크롤>은 ‘천천히’ ‘느린 움직임’을 뜻한다. 강한 햇살과 더위를 피하려면 몸을 최대한 웅크린 채 기어가듯 천천히 움직이게 된다. 느린 속도는 당장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 주지는 않지만, 멈추지 않는 움직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퇴적된다.
그는 <크롤>을 준비하면서 하늘의 구름을 자주 관찰한다고 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은 종종 정지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름을 계속 응시하고 있으면 구름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한 대기 상태에 따라 구름의 모양도 변한다. 구름은 매우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 결정이 높은 하늘의 공기 중에 무리 지어 떠 있는 것이다. <크롤>은 구름을 닮아 있다. 작은 움직임이 천천히 변화를 이끌어 낸다. 때로는 거센 바람에 밀려가듯 빠르게 움직이며 변해 가기도 한다. 프로세서들은 구름의 물방울처럼 흩어지기도 하고 커다란 구름을 형성하기도 한다.
타고난 특성부터 살아온 삶의 여정에 따라 각기 다른 경험이 쌓인 개인들은 자신 몸의 고유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각자 다른 프로세서의 몸(In)은 같은 키워드(It)를 제공받지만, 자신만의 고유성을 드러내며 다른 움직임을 이끌어 낸다. 프로세서들은 이 움직임을 바탕으로 교류하며 움직임을 발전시켜 나가고, 다시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각자의 고유성을 간직한 채 함께하며 변주를 이뤄 나간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은 음악의 대위법적 구조를 안무 방법에 적용한 작품이다. 대위법은 두 개 이상의 독립된 선율을 조화롭게 배치해 진행시키는 작곡 방식이다. 화음의 겹침과 연결로 수직적 구조를 다루는 화성법에 대비되는 대위법은 여러 성부가 동시에 연주될 때 선율의 수평적 움직임을 다룬다. 또한 대위법의 중요한 기법의 하나는 한 성부의 멜로디를 다른 성부가 따라 하게 하는 다양한 형태의 ‘모방’이다.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은 대위법을 시각화해서 보여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위법은 그 자체로 음악은 아니다. 마치 무용 작품의 안무와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것은 안무일까? 춤일까?
김성용이 <크롤>을 통해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면, 윌리엄 포사이스는 <하나의 편평한 것, 복제된>에서 ‘무엇을’ 보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더블 빌: 김성용 & 윌리엄 포사이스>
일정 2025-11-08 ~ 2025-11-09 | 시간 토 15:00, 19:00 일 15:00 | 장소 해오름극장
관람권 R석 6만 원, S석 4만 원, A석 2만 원 | 문의 02-3472-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