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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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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호 Vol.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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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집는 ‘K-히어로’가 온다

내다 / 스페셜 1
국립극장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 프리뷰
세상을 뒤집는 ‘K-히어로’가 온다

“사회가 하도 답답해, 이제야말로 홍길동을 불러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K-히어로’ 홍길동이 국립극장에 나타났다, 드디어.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는 문턱 높게만 여겨지던 국립극장을 서민 냄새 물씬 나는 마당놀이 판으로 뒤바꿔 놓은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4년 동안 공연을 쉬었던 한국 특유의 마당놀이 장르가 극장식 마당놀이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물론 세대를 아우르는 해학과 풍자의 위엄이 젊은 세대도 흥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 ‘공연계의 사건’이었다.
“두 시간이 어떻게 그렇게 후딱 지나갔는지 모르겠더라고!” 당시 한 여성 관객이 동행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던 모습을 여전히 기억한다. 풍물놀이패를 앞세운 배우 수십 명이 신명 나는 국악기 연주와 창唱으로 혼을 빼놓더니, 춤과 재담과 아크로바틱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것이 바로 해학諧謔’이라고 선언하듯 배우들의 익살과 재담은 관객의 배꼽을 잠시라도 가만두지 않았다.
마당놀이는 명품이 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연이었다. 연출 손진책, 음악 박범훈, 안무 국수호, 연희감독 김성녀, 무대디자인 박동우라니! ‘가장 한국적인 무대’라고 할 때 바로 떠오르는 거장들이 스태프로 한자리에 모였다.
부활한 마당놀이는 보란 듯 성공했고, 연말마다 국립극장을 장식하는 대표적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2015년 <춘향이 온다>를 거쳐 2016년 <놀보가 온다>에서는 다음 시즌을 예고하는 인물이 잠깐 등장했다.
“요즘 세상엔 나 같은 사람이 바쁘다”며 눙치는 인물. 바로 홍길동이었다.
국립극장 마당놀이의 인물들은 그저 옛 고전 속 캐릭터에 머무르지 않고, 공연 시점과 단 1초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살아 숨 쉰다는 점이 관객을 열광하게 한다. 굴지의 항공사 임원이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사건이 일어났던 2014년, <심청이 온다>에선 심봉사가 밥상을 차려 온 심청에게 “땅콩은 접시에 담아 왔느냐”는 대사를 날렸고, 2016년 최순실 게이트 당시 공연된 <놀보가 온다>에선 흥보 아들이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외쳤다. 아, 그런데 홍길동이라니.

우리 고전 중에서 ‘홍길동전’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신분 차별 폐지, 탐관오리 징치懲治, 나아가 이상사회 건설이라는 주제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은 1933년 국문학자 김태준의 『조선소설사』 이래 정설이 됐다. 주인공이 결국 체제에 순응했으므로 이것은 사회 혁명적 소설로 볼 수 없다는 최근의 시각도 있지만, 중요한 점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숱한 사람이 ‘홍길동전’을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체제를 뒤집어엎는’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다. 적서 차별의 한을 품고 집을 나선 홍길동은 무리를 규합해 부정부패에 빠진 관료들을 징벌하고 가난한 백성을 구제한다. 민중에게 널리 읽히기 위한 한글소설이 그들이 속한 나라 자체를 전복하는 상상력으로 가기 직전에 율도국이라는 바다 밖 가상의 공간으로 이야기를 돌렸을 뿐이다. 그러니 마당놀이로 표현하기엔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만큼 기대도 컸다. 그런데 그 후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예상과 달리 ‘홍길동’은 국립극장 마당놀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

“왜 이제서야?” 연출가 손진책에게 물었다. 물론 코로나 기간도 있었고, 공중활공·분신술·마술 같은 현란한 볼거리의 구현이 쉽지 않았다는 기술적 한계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 문제 아닌가? 재차 질문하니, 이렇게 털어놨다. “사회가 하도 답답해 이제야말로 홍길동을 불러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홍길동을 소환시킨 마당놀이가 세상사에 지친 관객을 통쾌하고 속 시원하게 해 줄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얘기다. <홍길동이 온다> 서두에서 꼭두쇠는 이런 대사를 읊는다.

“금년 세상 참 요란하게 돌아갑디다. 개혁에, 개방에, 개정에, 개발에, 계좌에, 계엄에, 계산에, 계계계계, 아주 개운하게 돌아가더니, 휴우~ 주식, 부동산 들쑥날쑥, 관세, 탈세 삐죽빼죽.”






그리하여 공정公正의 상징이 되는 인물을 모셔 보고자 했는데, 그가 바로 홍길동이라는 얘기다. 공연까지 어떤 대사가 더 추가될지 알 수 없지만, 미리 나온 대본에는 직접적인 현실 비판은 다소 자제된 모양새다. 연출가 손진책은 “관객의 정치적 성향이 서로 달라, 지금은 전두환 정부 때보다도 언로言路가 막힌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도 풍자의 ‘매운맛’은 얼얼한데, ‘가짜 홍길동 식별법’을 말하는 극 중 인물 자바리는 위선적인 정치인을 사정없이 풍자한다.

“서민 물가라면서 국밥 한 그릇에 3만 원 한다고 우기는 눔, 기저귓값, 분윳값도 모르면서 출산 장려 운동하는 눔, 지하철 기본요금 물어보면 비서부터 찾는 눔, 비 오는 날 대중교통 타 본 적 없는 눔, 관내 마차 타고 골프 치러 다니는 눔.”

과연 무대에선 폭소와 환호가 터질 만하다. ‘누구’라고 콕 집어 말하지 않았을 뿐, 재치 있는 입담, 시원한 풍자, 배꼽 잡는 해학이라는 국립극장 마당놀이의 특징이 오히려 더 강화됐다고 할 수 있겠다. 탐관오리를 혼내 주는 장면과 더불어 상당히 긴 분량으로 이어지는 ‘팔도 홍길동 마당’엔 또 이런 자바리의 대사가 나온다.

“권력 있는 사람들은 무죄, 힘없고 가난한 서민은 유죄, 죄지은 놈들이 거꾸로 큰소리치며 몽둥이 들고 설치는 적반하장. 나라 곳간 빼내 길 낸다, 뭐 짓는다며 요리조리 빼먹기. 권력기관에 붙어 곡학아세하는 학자라는 자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위선자들.”

결말에서 홍길동은 임금에게 “죄지은 자가 큰소리치는 적반하장엔 엄벌을 내리시고 돈 없고 약한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살펴 주소서”라고 고한다. 그리고 율도국으로 떠난다. 과연 그는 거기서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

<홍길동이 온다>는 대본에 적힌 장면이 무대 위에선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할 정도로 마술과 특수효과가 필요한 대목이 많다는 점에서도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출연진 역시 눈을 비비고 볼 만하다. 홍길동 역을 맡은 국립창극단 간판스타 이소연과 국악그룹 우리소리 바라지의 김율희, 자바리 역의 김학용과 추현종, 꼭두쇠 역의 정준태, 삼충 역의 조유아·홍승희는 모두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들이다.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배우들로부터 엿을 사고 돼지머리에 지폐를 꽂고 모두 함께 춤을 추는 뒤풀이까지, 마당놀이에서만 볼 수 있는 관객 참여도 계속된다. 올 한 해가 유난히 답답했다면,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야말로 잔칫집 같은 분위기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온몸으로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유석재 『조선일보』 역사문화 전문기자. 2010년대 중반 『조선일보』 공연 담당 기자로, 국립극장 마당놀이 <심청이 온다> <춘향이 온다> <놀보가 온다>를 취재했다.



국립극장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

일정 2025-11-28 ~ 2026-01-31 | 시간 화·수·목·토·일 15:00 금 19:30 | 장소 하늘극장 | 관람권 전석 7만 원 | 문의 02-2280-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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