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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 Vol. 423
목차 열기코스⑧ 장충단공원에서 한남대교까지
(장충단공원→국립극장 하늘극장→북한남삼거리→한남오거리→한남대교 전망 카페)
가을의 문턱, 남산에서 한강까지
맑고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늦여름의 기운이 가시고 가을이 완연해지는 10월은 걷기 좋은 계절이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과 살랑이는 바람은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만든다.

이번 코스는 남산 아래 장충단공원에서 시작해 한강의 품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숲과 도시, 자연과 문명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울의 다채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국립극장의 낭만이 깃든 하늘극장부터 활기 넘치는 한남동 대로를 지나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 파노라마까지!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특별한 산책이 시작된다.
숲의 끝, 도시의 시작
장충단공원의 아침, 서늘한 공기가 뺨을 스친다. 사각 정자 장충정에는 이른 시간부터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머리 위로는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이 펼쳐지고, 간간이 나는 잠자리가 가을이 오고 있다고 알려 준다. 발걸음을 옮겨 수표교水標橋를 지난다. 대로 옆 공원의 한적한 오솔길, 고요한 풍경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한옥 카페 옆 작은 실개천에는 벌써 붉은 단풍이 군데군데 들었다.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국립극장 하늘쉼터에 들러 잠시 숨을 고른다. 이곳은 남산의 품을 벗어나기 전 마지막 휴식처다. 바로 옆 해오름극장 앞 광장은 넓고 편안하다. 공연 준비로 분주했던 여름의 활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서늘한 바람이 계속 불어왔지만, 막상 걸으니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목을 축이자 살 것 같았다. 해오름극장 앞으로는 분수대에서 물이 하늘 위로 콸콸 솟구친다. 시원한 물줄기를 보니 더위가 다시 가신다. 나무숲으로 들어서면 쌀쌀하고, 그늘이 사라지면 햇볕이 뜨거워진다. 변덕스러운 날씨다.
남산을 오른편에 두고 곧장 걷는다. 사거리를 지나 한남동 방향으로 한참 걷다 보면 ‘안녕히 가십시오. Goodbye.’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중구中區와 용산구龍山區의 경계를 넘어섰다. 정겹고도 아쉬운 인사를 뒤로하고 이제 용산구로 들어선다. 남산 자락을 등지고 걷는 길. 숲의 끝과 도시의 시작이 만나는 경계,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듯했다.
구에서 구를 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산 안부를 따라 산봉우리를 타고 넘나드는 일을 종주縱走라고 한다. 오늘은 중구에서 용산구로 넘어가며 서울의 과거와 현재, 자연과 도시가 교차하는 종주를 하는 셈이다.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숲속의 고요함에서 도시의 소음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8차선 대로 위, 북한남삼거리
숲길이 끝나자 거대한 8차선 대로가 눈앞에 펼쳐졌다. 귓가를 맴돌던 새소리 대신, 쌩쌩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가득하다. 낯선 풍경이었지만 걷는 재미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왼편에는 매봉산 공원이 길게 이어져 도시의 번잡함과 자연의 여유가 한데 어우러진다. 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갤러리와 문화공간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대로는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도로가 꼭 하늘로 날아가는 것처럼 군데군데 휘어져 있었다. 8차선 대로를 달리는 차들은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는지, 쌩쌩 달렸다. 그러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우뚝 솟은 N서울타워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꼭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응원해 주는 든든한 지원군 같았다.
북한남삼거리에 도착하자 뮤지컬 <위키드>의 포스터가 붙은 블루스퀘어가 가장 먼저 보였다. 이곳은 한남동의 랜드마크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한낮인데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그 사람들 틈에 섞여 걷다 보면, 어느새 한남오거리에 다다른다. 이태원과 한남동의 경계에 있는 이곳은 젊고 활기찬 분위기가 넘친다. 숨은 맛집과 개성 있는 상점들이 즐비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서울을 여행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니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생명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한남오거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맛집이 곳곳에 숨어 있다. 버스나 지하철로 이곳에 온 적은 많지만, 이렇게 두 발로 걸어온 건 처음이었다. 직접 걸어 보니 길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남동 감자탕 본점은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서울에서 먹어 본 뭉티기 중 가장 맛있었던 방울과 꼬막 포장마차, 그리고 이자카야 한남타츠의 야키토리도 일품이다. 이 코스를 해 질 녘에 걸었더라면 아마도 한남대교까지 가지 못하고 이 오거리에서 멈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남대교 파노라마
한남오거리를 지나면 드디어 저 멀리 한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 한남대교를 건널 차례였다. 다리 위에서 뒤돌아보니 푸른 남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옆으로는 관악산의 능선이 고요하게 펼쳐졌다. 시선을 돌려 한강 건너편을 바라보니 롯데타워가 빼꼼 보인다. 그 모습이 마치 죽순 같았다. 낮게 깔린 구름 아래로 펼쳐진 도시의 풍경은 그 자체로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작품명은 ‘한남대교 파노라마’ 정도가 될 것만 같았다.
한남대교 가운데에 서서 한강을 바라보았다. 바로 앞 동호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야경 중 가장 좋아하는 풍경을 연출하는 동호대교는 밤이면 주황빛을 띤다. 그 정경을 가장 잘 조망하려면 멀리서 보아야 하듯, 남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려면 남산 밖으로 한 걸음 나와야 함을 깨달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을 가장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거리가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대교를 건너 도착한 한남대교 전망 카페. 식물이 가득한 인테리어와 끝내주는 경치가 걸어 온 피로를 싹 씻어 주었다. 창밖으로 시원하게 흐르는 한강과 그 너머의 풍경은 걷는 동안 흘린 땀방울을 모두 보상해 주는 듯했다. 전망 카페 바로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한남대교를 걸으며 서울 풍경을 만끽하고, 버스를 타고 한 번 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낮에는 활기찬 도시의 모습이, 밤에는 반짝이는 불빛이 만드는 환상적인 야경이 기다린다.
걷는 이들에게 서울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이 길의 끝에서, 잠시 멈춰 서서 가을의 낭만과 도시 풍경을 마음껏 누려 본다. 전망 카페에 앉아 시원한 차 한 잔을 마시면 늦더위에 흘린 땀과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린다.
걷는 즐거움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길, 도시의 풍경과 자연의 조화,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행복이 이 코스의 백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