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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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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 Vol. 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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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곡 다른 느낌, ‘국악기다움’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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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Ⅰ <어쿠스틱>
같은 곡 다른 느낌, ‘국악기다움’을 찾아서 

이 무대는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첫 출발이자,
오랜 고민에 대한 정면 승부다.





해오름극장 로비 LED 패널에 관객들의 리뷰가 떴다.

“기존 배치에선 가야금, 거문고 소리가 거의 안 들렸는데 새로운 배치에선 두 악기 소리가 정말 잘 들렸다. 그렇다고 다른 악기 소리가 묻히는 것은 아니었다.”

“대금끼리, 피리끼리 모여 있으니 소리가 더 풍부하게 나고, 태평소는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가야금과 거문고는 뒤로 가니 소리가 덜 들렸지만, 아쟁 소리를 듣는 재미가 있었다. 타악기 소리가 1부보다 확실히 커졌고, 모든 악기 소리가 풍부하게 공간을 꽉 채웠다.”

1층 B구역 18열 16번 관객은 1부를 마친 후 “악기들의 배치가 아치형이고, 거문고와 가야금처럼 넓은 악기들이 앞단에 있어 전체적으로 보기에 안정감이 있었다. 소리의 구분이 쉽고 잘 들렸다”는 리뷰를 남겼다. 2부는 또 달랐다. “1부 대비 각 악기의 소리가 더 또렷하고 풍성하게 들렸다. 해금과 피리, 대금 소리가 좋았고, 거문고와 콘트라베이스 소리의 울림이 풍성하게 느껴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같은 곡, 다른 느낌’이다. 같은 공간(국립극장 해오름)에서 다른 악기 배치로 같은 곡을 연주하자, 음악의 표정이 달라졌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관현악시리즈Ⅰ <어쿠스틱>이 시도한 음향 실험이다. 이날 연주회는 국악관현악이 오랜 시간 던져 온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마련한 무대였다. 






‘변종’ 국악관현악의 본질을 찾아서…오랜 질문에 대한 답 찾기


‘국악기다움은 무엇인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울려야 국악기의 본질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국악관현악엔 풀리지 않는 난제가 긴 세월 내내 따라다녔다. 서양 오케스트라를 모방해 태어난 국악관현악이 국악기의 특성과 국악기의 섬세한 소리를 모두 구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국악관현악의 존재 방식은 오래도록 생경했다. 서양식 프로시니엄 무대에 대규모 편성의 전통악기를 조합한 음악. 애초 우리 악기는 적은 숫자로 방 안에 둘러앉아 연주된 방중악(조선시대 실내에서 연주하던 연례 음악이나 풍류 음악) 형태이거나, 마당을 비롯한 탁 트인 공간에서 연주됐다.
국악관현악은 일종의 변종인 셈이다. 이 장르는 태생부터 한계를 안고 있었다. 악기가 가지고 있는 음량과 음역의 한계를 뛰어넘고, 악기 구성이 지향하는 경계를 허물어야 하는 책무를 안고 출발한 음악이어서다.
‘관현악’은 관악기와 현악기를 중심으로 여러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대규모 기악 합주를 통해 감동을 전하는 음악인 만큼, 국악관현악도 그 길을 부지런히 따랐다. 국악관현악이 세상에 나오자 전통음악의 세계에서도 새로운 음악 양식이 자리하게 됐다. 더 많은 작곡가와 지휘자, 연주자도 필요하게 됐다. 없던 장르가 생겨나 음악적 측면, 인재 육성 차원에선 풍성해졌으나, 업계에선 내내 이물감에 시달린 것으로 보인다.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더 잘 들리도록’ 음향 장비를 활용, 3층 객석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음악을 만들어 온 데에 대한 의문이 피어난 것이다. 기술 발전을 통해 음향기기의 활용은 쉬워졌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 안에서 악기 하나하나의 존재감은 흐려졌다. 대신 뭉뚱그려져 다소 밋밋해진 ‘집단의 소리’가 국악관현악을 대표했다. 물론 그럴지라도 이 안에서 꽃피운 정교한 예술성까지 침해될 순 없었다.
<어쿠스틱> 무대는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첫 출발이자, 오랜 고민에 대한 정면 승부였다. 그토록 찾아 헤맨 국악관현악의 ‘자연음향’을 구현해 국악기의 본질과 존재 이유를 찾는 작업이었다. 



배치 따라 어울리는 곡 달라…입체적 생동감 vs 웅장한 조화미


고단하고 두려운 실험이었다. 2부로 구성한 무대에선 각기 다른 악기 배치로 같은 곡을 연주했다. 무대에 오른 두 곡은 2017-2018 시즌 초연한 메나리토리에 의한 국악관현악 ‘감정의 집’(작곡 최지혜)과 신작 ‘시선’(위촉 작곡 박명훈). 새로운 악기 배치로 두 곡을 1부에서 선보인 뒤 기존 악기 배치로 다시 두 곡을 연이어 연주했다. 30분의 인터미션과 공연을 마친 이후엔 관객들에게 실시간 리뷰를 받아 모두에게 공유했다. 작곡가, 지휘자, 단원과 극장 관계자에서 시작된 음향 실험의 목적지를 정하는 마지막 열쇠가 바로 관객인 셈이다.

공연은 제목에서부터 자연음향을 향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간 너무도 익숙해진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고, 국악기 본연의 소리와 특성을 고스란히 표현하고자 했다. 전통음악의 미덕으로 여겨진 여백과 여운, 시김새를 통한 멋을 살리고자 하는 실험이었다. 오로지 악기 배치만으로 변화를 준, 같은 곡은 완전히 다른 음악 경험을 불러왔다.

새로운 악기 배치의 가장 큰 특징은 제일 앞줄에 현을 뜯어 소리를 내는 발현악기인 가야금과 거문고를 좌우로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 뒤로 한 단을 높여 찰현악기를 배치했고, 그런 다음 관악기를 피리, 대금 순서로 일렬로 자리하게 했다. 가장 뒷줄에 타악기를 뒀다. <어쿠스틱>의 새로운 악기 배치에는 세계적인 톤마이스터 최진, KBS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 박상후, 작곡가 임준희, 서울대학교 교수 김승근, 제천문화재단 상임이사 김호성이 참여했다. 기존의 악기 배치는 지휘자 왼쪽으로 해금, 오른쪽으로 아쟁을 둔 뒤 그 뒤로 가야금과 거문고를 좌우로 뒀다. 그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고수해 온 배치로 악단의 공연을 찾는 관객에게도 익숙하고, 오랜 시간 경험한 배치인 만큼 연주자들도 딱히 적응이랄 것이 필요치 않은 형태다.

두 악기 배치는 음악의 인상을 바꿨다. 1부의 새로운 악기 배치가 ‘생생한 입체감’을 만들었다면, 기존 배치는 ‘웅장한 조화로움’을 줬다. 흥미로운 것은 곡마다 어울리는 악기 배치가 따로 있었다는 점이다.

연주된 곡들은 악기 배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기존에도 꾸준히 연주된 최지혜의 ‘감정의 집’은 새로운 악기 배치를 만나자 입체적 사운드의 향연이 펼쳐졌다. 일렬로 배치된 악기들이 층층이 레이어를 쌓아 공간감을 만들었고, 상대적으로 소리가 작은 가야금과 거문고가 앞줄로 나온 덕에 섬세한 현의 소리도 구분할 수 있었다. 음량과 음폭의 차이가 두드러진 국악기를 한데 모으면서 나타난 아쉬움은, 각각의 악기 소리가 공평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데에 있었다. 새로운 악기 배치에선 그동안 국악관현악에서 강력한 지분을 행사했던 해금·피리·태평소 사운드가 잦아들며 평소 들을 수 없었던 작고 섬세한 악기 소리가 균형 있게 드러났다. 특히 태평소 앞에 차음판을 설치하고 후면 반사판을 개방해 타악기 소리를 분산한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새로운 시도의 여운은 2부 마지막 곡으로 ‘감정의 집’이 다시 연주되며 사라졌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옛말이 절로 나온 배치였다. 각각의 구역에 자리한 악기군은 파트마다 선명한 음색을 자랑했다. 각 악기가 시원시원한 ‘떼창’을 내지르자, 때때로 서라운드 음향효과도 있었다. 어그러짐 없이 조화로운 음악은 안정감을 줬고, 풍성하고 웅장한 음향은 국악관현악의 매력을 극대화했다. 꽉 닫힌 반사판은 하나로 응집돼 나오는 소리의 폭발력을 끌어냈다.

작곡가 박명훈의 신작 ‘시선’은 모든 악기 소리를 하나하나 채집해 펼친 음악으로 새로운 악기 배치에 안성맞춤인 곡이었다. 끊임없이 불협을 만드는 피리, 재치 있는 리듬감을 품은 타악, 퉁겼다가 쓸어내는 다채로운 현악기 소리가 시시각각 들려왔다. 단 하나의 소리도 파묻히지 않고, 생동하는 악기들을 눈과 귀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확성이라는 편리한 방식 안에 파묻혔던 악기들이 존재 이유를 찾고, 국악기 본연의 소리를 꺼내 오는 시도였다. 마침내 사라졌던 소리가 ‘존재감’을 찾는 순간이었다.

그토록 생생하던 소리는 기존 악기 배치로 연주되자, 낯빛이 변했다. 미쳐 날뛰듯 생동감 있던 음악에 난데없는 조화로움이 내려앉았다. 악기의 정체성 대신 하나로 통일된 응집력이 향상됐다. 해금과 태평소가 강력한 지배력으로 권세를 휘둘렀다. 가야금과 거문고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소리의 융합은 조화미를 이루었다.


아무리 전문가들이 소리의 근원을 찾는다 해도, 관객에게 사운드는 사실 ‘개인의 취향’에 가깝다. 악기와 음질의 선호, 악기 소리에 대한 호오好惡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이번 실험을 통해 확인한 것은 국악관현악이 고민한 ‘음향의 근원’은 하나의 변화로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험은 또 다른 질문과 고민을 낳았다. 작곡가가 만들어 내는 음악의 시작점, 그 음악의 방향성을 쥔 지휘자의 요리법, 익숙함을 벗어난 연주자의 변화 의지가 새로운 국악관현악 음향의 출발이다. 그런 면에서도 <어쿠스틱> 무대는 그간 꾸준히 ‘실험 용광로’ 역할을 해온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세운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됐다.



글. 고승희 『헤럴드경제』 문화부 기자.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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