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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 Vol. 423
목차 열기국립극장 <완창판소리> 지선화의 ‘심청가’ 동초제
묵묵히 다져 온 30년, 그리고 첫 완창
지선화는 완벽을 기다리는 대신, 세월 속에 차곡차곡 쌓아 온 소리를 관객과 나누려 한다.

말수 적은 아이의 묵묵한 소리 길
가을이 완연한 10월, 국립극장에서 선보일 <완창판소리> 무대는 국립남도국악원 정단원 지선화 명창이 꾸민다. 지선화는 올해 43세의 젊은 소리꾼이다. 그러나 소리를 한 세월은 결코 짧지 않다. 열 살 무렵 큰고모의 권유로 전주도립국악원에서 판소리를 시작했으니, 소리꾼으로 산 지 어느덧 30년이 넘었다. 전주도립국악원에서 이일주 명창의 눈에 띈 지선화는 이 명창의 집에서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본 장단으로 시작해 판소리 단가와 ‘심청가’ 그리고 ‘춘향가’ ‘흥보가’ 등을 익혔다.
지선화는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쏙쏙 배웠고, 판소리를 접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KBS <전국 어린이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수상하며 ‘어린이 명창’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판소리는 어려웠지만 그는 스승의 가르침에 묵묵히 소리를 했다. 타고난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공부하는 그를 이일주는 무척 예뻐했다. 호랑이 스승으로 정평이 난 이일주 명창이건만, 지선화에게 스승은 언제나 다정하면서도 든든하고 마냥 고마운 분이었다.
지선화는 오랜 시간 동초제 ‘심청가’를 다졌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심청가’를 익히며 “꾀목을 쓰지 말고 오로지 통성으로 소리를 내야 한다” “야무지게 타루*를 쳐야 한다”는 스승의 말을 끊임없이 되새겼다. 충실한 연습과 꾸준한 공부로 2015년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대제전> 종합 최우수상, 2018년 공주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으며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완성을 향한 노력으로 다다른 첫 완창
이번 공연은 지선화의 생애 첫 완창 무대다. 사실 그간 완창에 도전해 볼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1970년대 말에 시작된 <완창판소리>는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전성기를 맞이해, 1990년대에는 이른바 바탕소리 하나를 다 완성했다면, 소리 공부를 제법 했다고 여겨 완창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하지만 당시 지선화의 생각은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탕소리를 할 수 있는 것과 그것을 완벽히 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고, 그저 실수 없이 작품 전체를 내보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완성은 더 어렵게 느껴졌다. 완벽의 길은 요원해 보이기만 했다. ‘나는 언제 완벽해지지? 아니, 어쩌면 판소리에서 완성은 없는 게 아닐까?’ 지선화는 완창에 대한 생각을 달리했다. 어차피 판소리에서 ‘완벽’은 이루기 어려운 경지이고, 그저 이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면,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을 잘 정리해 선보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이다.
이번 무대는 바로 그 깨달음의 결실이다. 지선화는 이제 완벽을 기다리는 대신, 세월 속에 차곡차곡 쌓아 온 소리를 관객과 나누려 한다. 그래서 그의 첫 완창은 단순한 도전을 넘어 성실함이 빚어낸 깊은 소리와 그 울림을 함께 나누는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다.
정확한 사설과 연극성 지닌 동초제
이번 완창에서 지선화가 선보일 소리는 동초 김연수(1907~1974)가 정립해 오정숙·이일주를 거쳐 오늘날까지 전승되는 동초제 ‘심청가’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명창 가운데 한 사람인 김연수는 고향 고흥 지역에서 14세까지 한학을 공부하고, 21세가 되던 해에 판소리에 입문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한 판소리였지만 유성준·송만갑·정정렬·정응민 등 당대 최고 명창들에게 다섯 바탕을 모두 배웠고, 타고난 영리함과 근성으로 소리에 매진해 일가를 이루었다. 김연수는 일제강점기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하는 것은 물론 1940년대 전시 체제가 확대되는 속에서도 창극단을 조직해 경향 각지에서 창극 순회공연을 했다. 광복 이후에도 활발하게 창극단을 이끌어, 1962년에는 국립국극단(현 국립창극단)의 초대 단장에 취임해 12년간 수많은 작품의 작창과 연출을 맡았다.
김연수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이 짠 판소리를 정리해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했는데, 사설의 오자를 다듬고 오랜 창극 무대의 경험을 녹여 연극성이 강한 판소리를 확립했다. 동초제 판소리에는 대화체가 풍부하고 너름새를 할 여지를 둔 구체적 표현도 많다. 일례로 곽씨부인이 심청을 낳은 후 심봉사에게 남녀 간에 무엇이냐고 묻는 대목에서 심봉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만있거라. 이것은 명뼈고 이것은 배꼽이고, 인제 이 밑에 가서 일이 있는디. 앗차, 내 손에 아무 거침새 없이 미끈허고 지내가는 것이, 아마도 마누라 같은 사람 낳았나 보오.” 다른 판소리 사설에서 “딸을 낳았구나” “아기삿을 만져보니 손이 나룻배 지나가듯 거침없이 지나가는 것이 아마도 아들 반대되는 것을 낳았나 보오” 혹은 “심봉사가 아이를 더듬어 보더니 웃으며 하는 말이 부인과 같은 일생이올시다” 등으로 표현되는 것과 사뭇 다르다. 동초제 ‘심청가’를 부르는 소리꾼들은 이 대목에서 부채를 아이 대신 뉘어 놓고 심봉사의 말투로 부채를 더듬는 시늉을 하며 이 대사를 하는데, 관객의 웃음을 절로 자아낸다. 이처럼 동초제는 소리 못지않게 이야기의 재미를 충실히 전달하는 매력이 있다. 지선화는 본래 자신은 내성적인 성격이라 능청스러운 연기를 어려워하는데, 동초제를 해내기 위해서는 대사와 연기를 그럴듯하게 해야 해서 이 부분에 많은 연습을 했다고 한다.
지선화는 이번 무대에서 약 다섯 시간에 걸친 동초제 ‘심청가’ 전체를 충실히 들려줄 예정이다. 그는 타고난 목구성이 좋다. 다른 소리꾼보다 청이 높고 막힘이 없을뿐더러, 사설의 정확한 표현과 전달력도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다. 관객은 다섯 시간의 긴 여정 속에서 ‘심청가’의 비극과 웃음, 그리고 판소리만이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극적 체험의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만남이 지선화 명창의 다음 소리 길을 더욱 깊고 단단하게 열어 줄 출발점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참고자료
최동현 주해, 『동초 김연수 바디 오정숙 창 오가전집』 , 민속원, 2001.
* 기교를 나타내는 판소리 용어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10월: 지선화의 심청가 – 동초제
일정 2025-10-11 | 시간 토 15:00 | 장소 달오름극장 | 관람권 전석 2만 원 | 문의 02-2280-4114